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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개발자, 게임 캐릭터, 그리고 귀신.


아, 하나 빼먹었다.


윗선의 OK 사인.


한 줄 요약

경쾌하게 허무하기




독갤의 아웃풋 김쿠만의 장편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이다. 사실 김쿠만 작품은 던전에서도 몇 편 읽었었고, 2022 한국과학문학상에서도 읽었었기에 그 스타일이 어떤지는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김쿠만 작가는 결코 무거운 작가는 아니다. 무거운 척하는 작가도 아니다. 하지만 경박한 작가도 아니고, 솔직하지 않은 작가도 아니다. 경쾌한 작품이다. 가독성 하나는 내가 여태 읽은 겉절이 중에서 원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가독성은 가벼움에서 비롯된 것이니, 괜스레 있는 척 무거운 척 메시지를 던지려는 겉절이들에 비하면 빠르고 쉽고 재미나게 읽히는 것이야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책이 재밌게 읽힌다는 것, 160페이지가 가볍고 빠르게 읽힌다는 건 개인적으로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누구에게라도 가볍게 추천하기 좋은 책이라는 뜻이니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뒷맛도 남는 것 없이 깔끔하다. 설정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내용이 불친절한 것조차 아니다. 마치 독서를 입문시키려는 책처럼, 이 책은 가볍고 경쾌하다.


내용도 간단하다. 주인공 대호의 게임회사 취업 썰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 게임회사는 어디 잘난 대형 게임회사도 아니고, 확고한 비전과 체계가 잡힌 곳도 아니며, 본부장의 변덕에 따라 게임 개발 방향이 마음대로 바뀌는 게 문제다. 그렇다. 이 책은 2033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게임 캐릭터를 3D 프린터로 인쇄해서 그 캐릭터와 대화하며 설정의 빈 구멍을 채운 뒤 다시 게임에 반영한다는 재밌는 SF적 설정을 지니고 있지만,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


게임회사의 직장 생활에 더 주안점이 맞춰져있다. 그래서 SF임에도 불구하고 SF적인 재미는 사실 그다지 잘 없다. 실망하면 실망했지,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쪽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책의 튜토리얼(작가의 말)에서 작가가 취업 체험담이라고 일찍이 밝힌 바가 있으니 감안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야 이전 작품을 읽어봤으니 대강 느낌을 아니까 실망은 안 했지만.


달리 목차 구분이 없지만, 목차 구분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내용은 간단하다. 프로젝트 G라는 게임을 개발하고, 거기서 구조조정으로 짤리기까지 있었던 해프닝들의 연속이다. 그 과정에서 직장인, 게임 캐릭터, 그리고 귀신이 등장하는데, 이 셋은 처음엔 잘 구분되는 듯하다가, 나중 가서는 누가 게임 캐릭터고, 누가 귀신이고, 누가 직장인인지 영 헷갈리게 된다. 경계가 점차 불분명해지다가 나중에 가선 아예 다르지 않다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독백은 지나치게 담담해서 으레 그런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의 색채를 표현하라고 하면 낮은 채도라고 할 것이다. 완전히 색이 빠져버린 무채색은 아니다. 하지만 일희일비하지 않는 탁한 채도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도 처음엔 가상현실에서 귀신을 볼 때 리액션 맛집이었지만 나중 가선 익숙해지듯, 회사 다니며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림도 없었다는 걸 깨닫듯, 이 소설에 어떤 기대감과 호기심을 품던 독자들의 마음을 빼가듯, 이 소설은 160페이지에 걸쳐서 색채를 빼버린다. 그러나 완전히 빼진 않는다.


그저 헷갈릴 정도로 뺄 뿐이다. 누가 게임 캐릭터고, 누가 귀신이고, 누가 또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는 직장인인지.


내용만 걸러보면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고, 시종일관 우울할 것 같은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담담함, 가벼운 문장, 경쾌한 진행...... 160페이지는 1시간 반으로 치환되고, 1시간 반은 작중에서 1년이란 시간으로 치환된다. 1시간 반만에 2033년은 2034년이 되고, 주인공은 취업했다가 구조조정을 당하고, 게임은 만들어졌으나 폭망하고, 주인공에게 남은 건 망한 게임의 개발자라는 이력서 한 줄이다. 그 모든 걸 1시간 반만에 독파한 독자의 심경은 어떠한가.


나는 직장인이 아니라서 그렇게 씁쓸한 맛은 못 느꼈다. 검색해보니 어느 기자는 이 소설이 픽션이 아니게 되는 순간 소름이 끼친다고 했는데, 과연 업계에 몸을 담아본 사람일수록 이 소설의 '담담함'은 매우 쓴 맛으로 다가올 게 분명했다. 담담한 독백, 진술, 묘사는 유난 떨지 않는다. 이 해프닝들이 특별하다고 외치지 않는다. 유별나다고 어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으레 그렇다는 듯, 익숙하다는 듯,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다는 듯 말한다.


바로 그 점이 독자에게 오히려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것 아닐까? 대다수의 삶이라는 건 결국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늘 그런 삶이고, 늘 그런 것들로 가득하니 말이다. 그 속에서 어떤 차이를 발견하고 경계를 만들어 구분짓는 일이야말로 오히려 유별난 것이 되고 이질적인 것이 된다. 우리는 구분하지 않는다. 굿 비용 2천만원이 개발비로 책정되는 걸 두고 이상하다고 느낄지언정, 결국 그건 으레 그런 일이 되어버린다. 이상한 일들이 자연스러운 일이 될 때, 블랙코미디로서도, 암울한 미래로서도, 그리고 독자가 느낄 보편성으로서도 완성되는 것 아닐까?


이 글의 재미는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라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2시간 안에 한 번에 읽었다면 재밌게 읽은 거야. 네가 그렇게 느꼈든 느끼지 않았든.


왜냐면 이 소설이 재미가 없다면 목차 구분도 없고 해프닝의 연속만 쭉 이어지는 160페이지짜리 소설을 2시간 만에 독파할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다만 2시간 만에 독파하고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다. 그건 이 소설이 남기는 경쾌한 허무함이 우리에게 쓴 맛조차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게임 회사 직장인들은 이렇게 살아가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거기에 어떤 인상이 남을 순 있어도, 그게 뒷맛을 개운치 못하게 하거나, 혹은 사색에 잠기게 하진 않는다.


텔레비전 너머 비극을 희극처럼 소비하는 것과 비슷하다. 웃지 못할 이야기인데, 피식피식 웃으며 읽게 되는 것. 그게 이 소설이 유도하는 경쾌한 허무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상의 의도와 목적이 없기에, 그 점을 들어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어떤 메시지조차 던질 깜냥이 없다고 스스로 자조하는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주제파악을 해버린 소설이랄까. 주인공 대호와 같은 소설이었다. 읽으면서 걸리는 점도 없었고, 책장을 덮고도 찝찝하지 않았으니 내가 욕할 이유도 없는 것 역시 있다.


한 가지 좋았던 점이라면, 겉절이에서 종종 실제 존재하는 무언가를 언급할 때 에둘러 표현하거나 아예 상호명을 바꿔서 부를 때가 있는데, 여기선 그런 거 없이 노빠꾸로 다 언급해서 좋았다. 유독 박서련 생각나기도 하고?


근데 단점이 하나 있다면 가격이 별로 안 경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