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신라의 시인 최치원(崔致遠)이 말한 걸 보면 "우리 나라에서 처음 생긴 이 풍류(風流)라는 생각은 인도의 석가모니의 불교와 중국의 노자의 도교와 공자의 유교를 아주 잘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고, 또 얼마 전에 세상을 뜬 최남선(崔南善)의 해석으론 "하늘의 밝음을 뜻하는 우리 옛말 '부루'의 소리에 맞추어 그 두 한문 글자를 붙인 것이다"는 것인데, 그 말씀들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서, 거리의 밤 뒷골목의 구석진 방의 한많은 노기(老妓)들이 헐수할수 없이 되면 손가락 끝으로 줄을 짚어 퉁기고 앉았는 가야금의 그 풍류 가락이나 잘 들어 보노라면, 아리숭 아리숭 머언 먼 억만 리 아지랑이 넘어 고향 일처럼 아른 아른 아른 아른거려 오는 것이 있기는 있지. 이조 백자나 고려 청자 아조 썩 좋은 항아리나 하나 사알사알 만져 보면서 이것을 두고 두고 생각해 보자면…….
-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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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는 여러 면에서 『신라초』의 세계가 확장된 시집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종호의 지적대로 신라 시편이 '만들어진 전통'을 창제함으로써 이상적 세계로서의 신라를 그린 것이라면,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에서는 그 범위를 한국사 전체로 넓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업에서 시인이 신라를 넘어서는 한국사 전 시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제시된 것이 바로 '풍류'였다. 서문에서 서정주가 정의한 '풍류'란 '언제 어느 경우에도 절망은 하는 일이 없던, 어느 역경에서도 웃을 힘을 가진' 마음을 가리킨다. '이 정신이 우리 국사 속엔 늘 이어 살아 있어, 이걸로 우리는 한 긍지 있는 민족으로 참고 견디어 왔던 걸로 보인다.'고도 말하고 있다.
'만들어진 전통'의 한계라 하겠지만, 시집 속에서 '풍류'라는 말은 여러 편에서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는 데 비해 그 논리는 다소 억지스럽게 여겨지는 바가 없지 않다. '풍류'라는 말의 어원에 의지한 위의 시는 그래도 한결 덜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 시를 해석하기 위해 실제로 최치원의 풍류 개념이 어떠한 것인지를 고증해서 분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인의 풍류에 대한 인식이 '만들어진 전통'일진대, 텍스트 속의 개념 설정이 곧 그의 풍류에 대한 정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풍류 정신이 유, 불, 선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그냥 보편적인 도덕 의식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보면 그만이다. 풍류가 '하늘의 밝음'을 의미하리라는 것은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삶을 천명으로 여긴다는 종교적인 측면으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인이 '풍류'의 의미를 현재의 어감대로 예술을 즐기는 일에서 찾아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원전의 역사적 권위에 현재적인 의미를 결합시킴으로써 시인은 즐겁게 사는 삶의 태도를 한국적 정체성의 정수로 보는 논리 구조를 성립시킨 셈이다.
외부를 인용하는 듯 하면서도 텍스트 내부에서 폐쇄적으로 풍류를 정의하는 게 재밌긴 하지만 시적인 몬가몬가는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