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상의 날개를 읽고 감상을 쓴 바 있다.
그런데 하루만에 생각이 바뀌었는데 이전의 글이 조금 부끄러우면서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는 말하고싶기도 하다.
날개꺽인 자아인 '나'가 다시 날고자하지만 아마 그것은 현실이라는 벽 앞에 부딪혀 재차 실패할 것이다.
날개짓이 성공하여 비상하리라는 상상을 하기가 어렵고 부질없는 몸부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비상에 대한 개연성과 설득력의 부족에 나는 날개라는 작품을 다소 박하게 평하였다.
그런데 다시 날아오르고자 하는 '나'의 날개짓이 실패로 끝난다고 해서 그 날개짓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
날고자 날개짓하는 몸부림 그 자체가 작가 이상의 자아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날개짓이 현실의 벽에 부딪힐 것이기에 날아오르기를 갈망하는 자아는 오히려 영속성을 얻게된다.
이상의 날개의 끝부분은 카뮈의 시지프신화를 떠오르게 만든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다.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하지않을 수 없다."
날개짓은 날아오르지 못해도 그 자체로서 존재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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