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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향한 빌헬름의 긴 여정이 끝났다. 꿈을 좇아 오래 멀리 헤매던 빌헬름은 이제 가정을 이루어 정착하게 됐다.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 가벼운 인연으로 끝날 줄 알았던 만남들이 얽히고설켰다. 복잡한 로맨스를 머릿속으로 다 따라가기에 벅찬 감은 있었지만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관계도를 그려가며 추적하는 재미도 있었다. 빌헬름의 성장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말할 것도 없다.
빌헬름은 연극인이 되기 위해 방황했지만, 빌헬름의 종착지는 연극인이 아닌 사회인이었다. 언뜻 보면 꿈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나도 이 점이 굉장히 아쉽다. 하지만 빌헬름의 변화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빌헬름이 행복을 목표가 아니라 '목표로 향하는 여정'에서 찾게 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배움의 길을 없애고 앎의 즐거움을 무시한 채 최종 목적만을 제시하는 교육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빌헬름은 연극인을 꿈꿨지만, 예술에 관한 가치관이 너무 뚜렷한 나머지 동료들과 잘 융화하지 못했다. 세상의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한 채 자신의 길을 관철하는 것은 독단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빌헬름이 모두에게 자신의 독단을 강요할 만큼 재능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빌헬름의 인생에서 연극은 주제가 아니라 소재였다. 연극인의 꿈을 따르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이 분명 많았다. 연극인의 꿈을 접은 것이 아쉬울지는 몰라도, 빌헬름은 그 길에서 더 소중한 것들을 찾았다. 방황은 끝났고, 사랑하는 가족이 생겼다. 이것만으로 빌헬름은 정상 궤도에 오른 셈이다. "방황하면서도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은 자력으로 또는 남의 인도를 받아 올바른 길을, 즉 타고난 본성에 어울리는 길을 찾아내기만 하면 다시는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빌헬름의 목표는 이제 연극이 아니라 가정의 행복이다. 빌헬름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빌헬름의 새 출발은 결코 절망적인 것이 아니므로, 앞으로 성숙한 태도로 삶에 임하면 좋은 일이 펼쳐지리라 기대할만하다.
한편 민음사 판본의 해설은 빌헬름의 선택을 '조화'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해설에 따르면 '통일'과 '조화'는 괴테의 철학에서 핵심적인 개념이라고 한다. 빌헬름이 꿈을 포기한 것은 자아를 버린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분명 꿈을 버린 것은 뼈아픈 상실이다. 하지만 그 덕에 빌헬름이 늦게나마 사회에 융화했다. 괴테는 세상 자체를 연극으로 보았던 것 같다. 각자가 맡은 배역이 있지만, 결국 그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아름다운 연극이 된다. "모든 사람이 다 모여야 인류가 되고, 모든 힘이 다 모여야 세계가 된다. 온갖 힘은 서로 자주 충돌하면서 다른 힘을 파괴하려 하지만, 자연은 그런 힘들을 하나로 모아 다시금 새로운 힘을 낳는다. 많은 것들이 우리 인간 내부에 깃들어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은 한 사람의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내부에서 모아진다. 인간의 재능은 모두 다 중요하고 필요하며, 그러므로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힘써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움만을 키우고, 또 어떤 사람은 가치만을 키우는데, 이 둘이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한 인간이 완성된다." 종반부에 다소 억지로 삽입된 감이 있는 글귀이다. 괴테가 이렇게까지 자신의 견해를 드러냈다는 것은 곧 이 부분이 핵심이라는 뜻일 테다. 빌헬름은 연극인이라는 배역보다 사회인이라는 배역이 더 어울렸고, 이제 그 역할에 충실히 임함으로써 세상은 더 조화로워지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이렇게 빌헬름의 결정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들이 많이 주어졌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쉬움을 금치 못하겠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로, 빌헬름이 꿈을 포기했다는 점이 합리적인 설명을 듣고도 지울 수 없을 정도로 아쉽다. 빌헬름에게 모두를 복종시킬만한 재능은 없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빌헬름에게 재능이 전무한 것도 아니었다. 빌헬름은 작중에서 「햄릿」을 날카롭게 해석하고 실용적으로 각색하는 재주를 보여 제를로를 놀라게 했다. 연기력은 어떨지 몰라도, 예술 철학은 분명했고 각본 짜는 재주도 나름 있었다. 이 장점들을 살릴 선택지가 정녕 없었단 말인가? 둘째로, 빌헬름이 사회에 정착하게 된 동기도 냉철하게 살피면 아쉬운 구석이 많다. 마리아네와의 치정,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이가 생긴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과거에 저지른 일이 꼬리처럼 사람을 따라다니는 일은 예삿일이며 여느 작품에나 잘 등장하는 모티프이다. 그런데 이 죄과로부터 도피하는 와중에 빌헬름은 매번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매번 새로운 굴레가 덧씌워진다. 그렇게 일이 꼬이고 꼬인 끝에 마지막에 맺어진 인연이 빌헬름의 아내이다. 물론 그녀를 제대로 알기 전에 그녀 덕에 목숨의 위기에서 빠져나간 적이 있고, 그녀를 다시 만나기 전에 꿈을 통해 좋은 예감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는 나머지' 일이 벌어지고 도피가 계속됐는데, 결국 쉽게 빠진 마지막 사랑에 정착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빌헬름의 마음은 뜨거워 보이지만, 사실 그는 늘 뜨거워서 오히려 뜨거움이 진지해 보이지 않는다. 셋째로, 그래서 빌헬름이 이룬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서 아쉽다. 꿈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과 융화됐다는 말은 분명 좋게 들리지만, 결국 빌헬름이 실질적으로 거둔 성과는 없다. 그저 지금까지 했던 낭비를 앞으로는 덜 할 것 같다는 예감만이 소득이다. 오히려 잃은 것이 더 많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몇몇 인연들은 영원히 다시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결국 「빌헬름 마이스터 수업시대」는 훌륭한 작품이지만 내 취향에는 썩 맞지 않는 작품이다. 기억할 만한 잠언들도 많았고, 인간과 그 성장에 대한 성찰도 훌륭하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이 걷는 행로가 교훈에 비해 허무한 감이 있다. 해설들은 성숙의 대가를 지불한 것으로 만족하라고 말하지만, 결국 개인에게 남는 것이 더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래도 다행인 점이 있다. 빌헬름의 이야기는 「빌헬름 마이스터 수업시대」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업을 받으며 성장하던 시절이 끝났으면 이제 직접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고 기예를 완성하는 시절이 올 차례다. 간단히 말해 「빌헬름 마이스터 편력시대」가 필요하고, 괴테는 이 이야기까지 썼다는 점이 다행이다. 바로 후속작을 읽을 계획이다. 빌헬름이 걷는 길로부터 더 배우고 싶고, 빌헬름이 '이루는 모습'을 보고 본 받고 싶다. 이 바람을 담아 내일도 책을 펼 것이다.
아~ 괴테 마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