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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 천상도 아닌, <지상의 노래>
이 책을 읽으면서 이승우 작가의 책은 세 번째로 접한다.
처음 접한 것이 <사랑의 생애>, 그 다음으론 <생의 이면>이었다.
늘 이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공통된 지점은 하나였다.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지점들, 또는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들마저 묵직한 논리로 치열하게 사유한다는 것이다. 몇 페이지만 읽어본다면 지나치게 장광설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앞 뒤의 맥락과 이야기 속 인물을 살펴보면 그 장광설은 인간의 복잡한 내면세계로 이끌며 깊은 탐구로 이끌고,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와 독자 스스로에 대한 이해로 이어져 감탄 혹은 눈물을 이끌어낸다.
그만큼 이승우의 문체는 독창적이고 독보적이면서, 아름답고 서글프다.
본 작품에서 사랑을 받아주지 않아 매달리는 한 남자가 나쁜 짓을 저지르기 전의 내면세계를 이승우는 이렇게 서술했다.
마음속에 유치하고 추하고 나쁜 사람이 들어왔으므로 그는 자기가 하려고 하는 유치하고 추하고 나쁜 짓을 개의치 않았다. 유치하고 추하고 나쁜 사람이 되지 않고는 사랑을 얻을 수 없으므로 유치하고 추하고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그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다만 사랑 때문이라고, 자기의 사랑이 그만큼 뜨겁고 간절하고 특별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스스로를 세뇌했다. 사랑이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다고, 사랑이 시키는 일에 복종하는 것뿐이라고 끈질기게 속삭이는 내부의 목소리에 그는 복종했다. 말하자면 그것은 그가 유치하고 추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 위한 정신 무장이었다.
-<지상의 노래> 80 ~ 81p.
'남자는 자신의 사랑으로 나쁜 짓을 저지르기 전에 자기합리화를 했다.' 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진술은, 이 남자를 평범한 소설의 평면적이고 단순한 악역으로 만들 뿐이다. 이런 평면적인 인물은 인간이기보다는 어떤 무대 장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위의 인용처럼 서술한다면, 그는 사랑이라는 열정에 사로잡혀 고통을 받다가 이내 자신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유치하고 추하고 나쁜' 사람이 되며, 비록 나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겪는 고통과 합리화의 과정을 독자는 이해할 수 있다. 비록 나쁜 사람이더라도, 그 또한 사랑의 열병에 내몰린 '인간'임을, 단순한 악역이 아닌 고뇌가 있는 악역임을 떠올릴 수 있다.
이승우의 소설에 나온 인물들은 이처럼 그의 탁월한 서술 덕분에, 소설이란 허구에서 살아있는 인간으로 탈바꿈하며, 내 주변 어딘가에 숨쉬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도록 한다. 또한 특별하거나 대단한 인물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나 볼 수 있을, 평범한 인물들을 내세우면서도 그 인물이 특별한 인물로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 이 작가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지상의 노래>는 사촌 누나를 사랑한 한 청년과 아내를 잃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중년, 이 두 사람의 죄의식과 구원에 대해 종교적으로 탐구하는 이야기다. 그에 더해서 구조적으로 초반부의 천산 수도원의 벽서를 누가 썼는가에 대해 미스터리의 형식을 띄면서, 뒤가 궁금하게 만들며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하지만 구조는 그저 거들 뿐, 이 소설의 백미는 고통받는 주인공들의 고뇌와 그 고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그 사이에 나 자신조차도 구원받는 듯한 이끌림을 뿜어낸다.
<지상의 노래>에는 중반 이후부터 성경의 인용과 기독교적 상징과 암시가 끊임없이 나온다.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 이야기부터 마태복음의 참새이야기,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인용들이 죽 이어진다. 기독교에 대한 악감정이 있다면 거부감이 들 법도 한, 어쩌면 아무런 감정이 없어도 과도한 인용과 상징으로 독자가 반감을 가질 법도 한 내용이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 인간이 종교를 이해하는 관점에 대한 이해, 종교가 인간에게 지니는 가치에 대한 이해 등의 복잡한 것들을 이승우는 모두 하나로 품는 큰 세계를 보여준다. 어찌 보면 평범하다 못해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종교를 통해 성숙해가는 모습은 숭고미가 무엇인지 느끼고 눈물짓게 한다. 이 과정 속에서 나는 삶의 모짊으로 쓰게 된 종교에 대한 색안경이 사르르 녹는 듯했다. 오히려 궁금해졌달까.
물론 이 작품 이전에도 엔도 슈사쿠를 통해서, 그 외에도 여러 문학을 통해서 종교에 대한 어렴풋한 이해와 학문적인 관심에 끌린 적이 있었다. 특히 슈사쿠의 <침묵>과 <깊은 강>은 내 안에 어렴풋하게 기독교와 성경에 대한 호기심을 자리하게 했다. 하지만 이승우를 읽으면 읽을수록, 내 안에 그 어렴풋함은 점점 형체를 갖춰가는 듯하다. 그리고 이번 <지상의 노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언젠가는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심어준 작품이었다.
(물론 공부만 하고 믿진 않을 것 같다. 내가 믿는 것은 철학이니까.)
마지막으로 제목에 대한 단상으로 이 감상을 마쳐야겠다.
지상이란 세계는 참 묘하다. 지하라는 축축하고 어둡고 악하고 지옥에 한층 더 가까운 세계의 윗면에 자리한, 천상이라는 포근하고 밝고 선하고 천국에 한층 더 가까운 세계의 아랫면에 자리한, 그 애매하고도 단정짓기 어려운 경계에 있기 때문일까. 그렇기에 축축하면서 포근하고, 밝으면서 어둡고, 선과 악이 어우러져 있는 것일까. 이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지상이란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말한 ‘나의 나라’의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아니라면 이 힘겹고도 눈물겨운 삶을 견딜 수 있는 힘은 그저 한자락의 노래에서 나오는 것일까. <지상의 노래>는 이승우 스스로가 던진 이런 질문에 대한 노래 한자락이 아닐까 싶다.
다른 종교가 미운 이들, 세상과 사람들이 미운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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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작가 좋지.. 이 글도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