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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예항>이 죽음을 통해 완성되는 초월적인 사랑의 세계 구조를 그리고 있다면, <짐승들의 유희>는 유코,고지,잇페이의 삼각관계를 통해서만 완전해질 수 있는 관념적인 사랑의 세계 구조를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음..



관념적인 사랑의 세계 구조가 뭔 씹소리냐고 하면,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생각하면 <짐승들의 유희>를 이해하기 쉬움... <헤어질 결심>을 간단히 요약하면, 박해일인 남자 형사는 살인 사건과 미제사건을 계속해서 추적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형사임. 직업 의식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남자 형사가 탕웨이와의 사랑으로 직업 의식을 버리면서 무너지게 됨. 탕웨이는 남자의 직업 정신이 무너지는 걸 안타까워했고, 결국 여자는 아무도 못찾을 장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 자체로 하나의 미제사건으로 남게 함. 남자 형사는 실종된 탕웨이를 계속 찾아다니면서 영원히 잊지 못하는 관념적인 사랑의 구조를 완성시킨거지. 당신이 사랑을 말한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난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짐승들의 유희>도 상당히 비슷한 맥락의 소설임. <헤어질 결심>이 남자, 여자라는 변수 2개를 가진 수식이라면, <짐승들의 유희>는 유코,고지,잇페이라는 변수 3개를 가진 더욱 복잡한 수식이라고 볼 수 있음. 세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과 같이 붙어있는 세 사람의 묘지를 통해 사랑의 영원성을 표현하고 있지.



이 소설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음. 잇페이는 유코의 남편이자 고지의 사장님이었음. 잇페이는 수많은 여성편력을 가진 인물인데, 유코는 알고도 남편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히 생활함. 잇페이는 유코가 자신을 질투하게 만들고 싶었고 그 질투심을 사랑의 동력으로 생각함. 그러나 유코가 처음으로 잇페이에게 자신의 고통을 모두 털어놓고 오열하자, 잇페이는 싸늘하게 반응하고 유코의 뺨을 때리고 모욕함. 옆에서 듣고 있던 유코의 썸남, 고지가 스패너를 꺼내서 잇페이의 대갈통을 개같이 팼고, 결과로 잇페이는 정신연령이 바보가 됐고 실어증 환자가 됨. 고지는 폭행으로 2년 5개월 복역하고 출소했고, 유코는 그동안 바보가 된 잇페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봄. 고지는 출소 후 유코의 집에 직원으로 들어가서 세명이서 살게 되는데, 고지와 유코가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드러나긴 하지만 모두 잇페이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고 사랑은 번번히 실패함. 결국 고지와 유코는 잇페이를 교살하고 바로 경찰서에 가서 자수함. 고지는 사형선고를 받아서 죽고, 유코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는 내용임.



내용만 보면 좀 어지러운데, 유코와 고지가 왜 잇페이를 놓지 못했는가? 이게 중요함.


이 소설에서 처음부터 '죄'와 '뉘우침'의 테마가 중요함.

고지는 잇페이를 폭행해서 감옥에 간 '죄'를 저질렀고, 감옥에서 고지는 스스로를 '나는 뉘우친 사람이다'라고 계속 되뇌임. 그 결과 고지는 죄를 범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게 됨.

반면 유코는 반대로 '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그래서 '죄'를 저지르고 싶어함. 여기서 유코가 저지르고 싶은 죄는, "바보가 된 남편 눈 앞에서 고지와 성행위/사랑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음. 유코는 고지와 죄를 나누고 싶은 심정도 있을 것이고, 죄를 저질러야 뉘우칠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고, 모든 걸 자기가 품고 싶다는 생각도 있고, 그 죄를 통해 잇페이와의 사랑과 질투/복수를 하고 싶은 심정도 있을 것임.




그래서 유코는 남편 앞에서만 고지와의 사랑이 불타오르는데, 고지는 죄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잇페이 앞에서는 유코와 사랑을 하는게 전혀 기쁘지 않고 고통스럽기만 했음. 서로 채워질 수 없는 갈망을 가진 사람끼리 사랑을 하고 있으니, 결말은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게 당연함. 헤어질 결심처럼... 게다가 고지는 유코와의 사랑이 결국 잇페이의 질투심을 키워주고 유코를 잇페이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자신은 잇페이의 계획의 도구처럼 쓰이는 사람같으며, 잇페이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함.


그냥 이 애매한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에서 언급하기로, 시간이 지나다보면 초월적인 사랑도 현실로 다가오고, 결국 순수한 사랑도 지저분해질 것이기 때문에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이 옴.



결말에서는 모두의 갈망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제시가 됨. 바로 공범으로서 잇페이를 죽이고, 바로 경찰서에 가서 자수하는 방법임. 그러면 서로 죄도 저지르면서, 뉘우친 사람도 될 수 있고, 동등한 위치에서 유코와 고지가 서로 사랑할 수도 있음. 현실에서는 세 명 다 죽거나 멀어지게 되었지만, 관념 속에서 그 순수한 사랑의 형태를 완성시킴.



추가적으로 왜 제목이 <짐승들의 유희>일까? 작품 속에서 나온 직접적인 표현으로는 유코가 추구했던 잇페이 앞에서 고지랑 유코가 사랑을 나누는 걸 '짐승처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언급함. 고지에게 짐승들의 유희는 죄의식을 발현시키는 것이고, 오히려 소설의 결말은 순수한 사랑이라고 봐야지 세명에게는...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은 세 명을 항상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죽고나서도 이 사건을 기괴한 옛일이라고 생각함. 즉 독자를 포함해서,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소설의 내용이 짐승들의 유희같은 그로테스크하게 보일 수 있는거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해...



이 소설은 내가 설명한 주제말고도, 묘사나 대사나 구성적으로 너무나 재밌고 잘쓴 걸작이라고 생각해... 오후의 예항도 좋지만 짐승들의 유희가 나는 더 좋네 ...
아래는 인상깊었던 묘사를 발췌했음.





"건물 사이의 복도에 선명하게 떨어진 햇빛이라고 고지는 생각한다. 그것은 목욕탕으로 가는 복도의 창 안쪽에 흰색 광택지 한 장을 펼친 것처럼 떨어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사랑했다. 수줍게, 열렬히. 어째서 저런 창에서 떨어지는 햇빛이 좋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은 은혜롭고 아주 거룩한 느낌이었는데, 칼로 토막 살해당한 유아의 하얀 몸처럼 마디마디 잘려져 있었다."






"폭포의 전망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높이 약 60미터의 검게 윤이 나는 바위 위로 구름이 흐트러져 빛나고 있다. 성긴 잡목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면 물이 잔걸음으로 달려 나와 한꺼번에 밀어닥친다. 상방 3분의 1정도는 하얀 물보라만 보이고 바위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폭포 물은 그 바위쯤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떨어진다. 폭포를 쳐다보는 사람에게 조금씩 다가오는 듯하다가 어느새 전방으로 밀려와 열 겹 스무 겹 단을 만들고, 하얀 갈기를 마구 흔들며 낙하한다. 그런 물줄기를 거스르는 바위에는 줄기까지 물이 뚝뚝 떨어지도록 젖은 잡초가 조금 돋아 있을 뿐이다. 바람의 방향은 끊임없이 바뀌었고, 그 때문에 안개가 흩어져 날리는 방향 또한 일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른쪽 기슭의 키 큰 초목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은 평정 그 자체로, 규칙적인 평행의 빛줄기를 낙하하는 물 위에 던지고 있다. 사방은 폭포 소리와 매미 소리로 가득 차 이 두 소리가 서로 대항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하나의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말자하면 온통 폭포 소리로, 혹은 온통 떼로 합창하는 매미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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