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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글을 쓰던, 영상을 찍던, 마케팅 기획을 하던, 그림을 그리던, 뭘 하던 간에 창조적 행위자들은, 하다못해 드립을 치려고 할 때 조차 어떤 아이디어가 자기 머릿속에 처음 착상된 순간의 느낌을 기억할 것이다. 이거다! 싶은 느낌. 혹자는 -! 모먼트라고도 부르는 그 느낌. 미국이 무릎을 꿇고 중국이 벌벌 떨며 일본이 고개를 숙이는... 아이디어가 착상되는 순간에는 그런 강렬함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막상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나면 그 착상의 강렬함은 온데 간데 없고 그저 그런 표현만 남은 발상과 피상적 수준에 머무는 구조물만 보일 뿐이다. 그래서 최초의 아이디어가 중요한지, 완성된 결과물이 중요할지 적지 않은 논쟁이 오고 간다. 결국 시장은 결과만 보고 판단한다는 점에서 최초의 아이디어는 다분히 무시된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 없이, 씨앗 없이는 나무도 없다는 점에서 최초의 아이디어는 여전히 핵심적이다. 쥐스킨트의 재능은 떡잎을 알아보고 길러내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쥐스킨트가 써낸 단편들은 그 첫 착상의 순간이 지닌 강렬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 강렬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구성, 즉 아이디어를 구조화하기 위한 아이디어조차 동류의 강렬함을 지니고 있다. 짧은 분량은 그 의도에 맞는 최적의 결과인 듯하다. 그의 문장들 또한 재담꾼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아이디어 중심주의에 가까운 스타일을 보여준다. 사회적 통념과 일반 심리의 맹점을 찌르는 아이디어들은, 그 통념과 심리를 보편 진리가 아닌 착각의 위치로 격하시키며, 그 대신 자신의 아이디어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진리로 선언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스타일은 셰익스피어의 날카로운 비유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름 돋는 심리묘사, 인간의 한 단면만으로도 인생 전체를 조망하는 체호프의 구성력을 한 스푼씩 섞어놓은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아이디어는 중요하다. 모든 것은 아이디어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로 기계적인 공정을 제하고 나면 결국 모든 것은 아이디어이지 않은가? 우리는 점심 메뉴를 고를 때 조차 아이디어를 낸다. 한식, 중식, 일식, 중식, 분식 음식의 종류부터 시작해서, 더 비싸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인지, 싸지만 맛은 그냥 그런 음식을 먹을 것인지, 발품을 팔아 싸고 맛있는 음식을 찾을 것인지, 아에 자기가 요리를 해버릴 것인지, 귀찮으니까 그냥 굶을 것인지! 그것이 어떤 의미이던 간에, 우리는 매 순간 최고의 것, 이상향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게 아니고서야 왜 고민을 하겠는가?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이데아에 도달하려는 행위이다. 현실이라는 조건 아래서 그 행위는 선택의 행위로 치환된다. “아 그래서 뭐 먹지?” 최선의 선택은 무엇인가?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 <문학적 건망증> 네 편의 단편 소설은 저마다의 이데아에 도달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인물들의 심리와 운명을 그려낸다. 어떻게 해야 깊이에 도달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자존심을 잃지 않고 승부를 끝낼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이 세계의 진실을 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책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어떤 책이 내 인생을 변화시켰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감히 답변할 수 있겠는가? 그런 책이 전혀 없었다고? 모든 책이 다 그렇다고? 어떤 한 권의 책이라고? 나는 모른다.”

 

쥐스킨트의 답변은 통렬하리만치 솔직하다. 우리가 매 순간 아이디어를 내놓는 이유도, 이상향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유도, 선택을 하는 이유도, 결국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답을 알고 있다면 비교하고 고르는 행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해진 결말을 알고 있는자에게는 선택권도 없고, 비극도 희극도 없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나아갈 수 있다. (이 점에서 테드창의 단편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삶의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삶 자체에 대한 답은 모름을 전제하는 것 같다.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다루는 매우 흥미로운 이 단편은 정말로 SF적이다.)

 

그렇다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가치는 특유의 강렬함과 재치뿐 아니라, 연역과 귀납이라는 기계적 공정에서 벗어나 탐험하고 모험하며 도약을 이루라는 교훈일까? 그가 헐리웃 영웅 서사를 쓸 정도로 낙관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정통>의 저자 G.K. 체스터턴이 지적했듯이, 인물의 의지가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들기에 이 단편집 속 인물들도 일종의 선택을 통해 운명에 저항하기는 한다. 그러나 끝내 선택을 유예하며 운명을 맞이한다. 결국 쥐스킨트는 자신이 아는 거라곤, 몇가지 재밌는 아이디어들과 죽음 뿐임을 시인하는 것 같다. 이 또한 안타까울 만큼 솔직하다. 어쩌면 아이디어의 떡잎을 알아보는 방법은, 그 아이디어를 죽음으로 몰고 가보는게 아닐까? 살아남는다면 분명 효과적인 아이디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