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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마이스터 편력시대」는 「빌헬름 마이스터 수업시대」의 후속작이다. 전작에 비해 유명세는 부족하다. 조금만 책을 읽으면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제목은 빌헬름 마이스터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빌헬름을 둘러싼 모든 인물들의 사연을 하나씩 구구절절하게 섞어놓은 탓에 플롯이 굉장히 복잡하다. 사람들이 맥락 없이 등장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아 따라가기 벅찼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빌헬름 마이스터 편력시대」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우선 전작과는 달리 빌헬름이 가야 할 길이 명확히 제시돼있다. 또 중간중간에 잠언집을 섞어서 괴테가 직접 독자들에게 지혜를 전수해 주어서 인상적이었다. 난삽한 구조도 빌헬름이라는 개인이 아닌 '인간 전체'를 위해 설계한 실험적인 구조라고 생각하면 참작할만하다. 여러모로 많이 느끼고 많이 배울 수 있는 소설이었다.
「빌헬름 마이스터 편력시대」를 요약하자면 '부분과 전체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괴테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둘러싼 전체를 인식하기를 원했다. 자신의 재능을 주관적으로 믿는 탓에 아무런 결실도 못 보고 자폐적으로 변모하는 것은 진정한 성장이 아니다. 사람은 세상에 자신의 실력을 노출시킴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다. 세상의 시험을 통해 자신이 걷던 분야에서 재능이 부족한 것을 깨달으면, 체념하고 자신에게 보다 어울리는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즉 사람은 전체라는 거울에 스스로를 비추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진정 갈 길을 찾은 사람은 재능을 연마한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됨으로써 범인은 개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제 개인은 사회로 돌아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세계를 돕는다. '사람은 남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단독자가 되어, 세계에 기여함으로써 세계의 조화를 완성해야 한다.' 이것이 괴테가 생각하는 모든 삶의 목표이다.
「빌헬름 마이스터 편력시대」 속 여러 인물들이 이 비전을 이루어낸다. 모든 인물들을 하나씩 붙잡고 소개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래도 주인공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빌헬름의 이야기만 하기로 한다. 실제로 빌헬름은 성장이 두드러진다. 전작에서 그는 열렬한 배우 지망생이었지만, 그 열정이 무색하게 꿈을 체념하고 사회에 정착하기를 결심하는 것으로 작품이 끝났다. 그래서 전작을 다 읽고 굉장히 허무했다. 이번 작품에서 빌헬름은 다른 분야로 관심을 돌린다. 여행 도중 도적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극적으로 치료를 받은 기억, 그리고 어린 시절 친구가 익사했던 기억이 있어서 인명 구조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그 관심사는 빌헬름을 외과 의사라는 길로 이끈다. 전작에서 빌헬름은 자신의 사랑을 좇은 대가로 미뇽을 잃었다. 이번 작품에서 빌헬름이 처음 구조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 펠릭스였다. 정말 감동스러운 결말이다! 이제 빌헬름은 자신에게 잘 맞으면서도 열정으로 임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았으며, 이를 통해 자신은 물론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구조함으로써 세계에 기여할 수 있다. 세상을 위해 지혜를 실천하는 지식인이 됐다. 빌헬름은 더 이상 소중한 존재를 잃지 않을 것이다.
물론 빌헬름의 성장이 괄목할 만한 것이라 해도 현실에서 재현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에 빌헬름을 도와주는 '탑의 결사' 같은 모임은 없다. 더구나 은밀한 곳에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는 탑의 결사는 신비스러운 느낌도 주는 탓에 「빌헬름 마이스터 편력시대」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만드는 감이 있다.
그런데 「빌헬름 마이스터 편력시대」에서 강조하는 바가 있다. 매 순간을 경험으로 여기고 성심성의를 다해 임하는 것이다. 빌헬름은 연극에 열정이 있었지만 재능이 부족했다. 그래서 독자 입장에서는 빌헬름이 연극에 임한 시간이 모두 헛된 것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빌헬름 마이스터 편력시대」를 통해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이 증명된다. 빌헬름은 더는 연극에 뜻을 품지 않지만, 연극을 배우던 시간 동안 예술에 관한 독자적인 철학을 형성했다. 또 연극 속 다양한 인물들을 다루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이 생각들은 빌헬름의 내면에서 융화하여 빌헬름만의 관점을 형성했다. 빌헬름은 단순히 치료법을 외우고 다니는 의사가 아니다. 그는 이전의 경험들을 통해 성장에 관한 이론도 갖추고 있고 휴머니즘으로 단단히 무장한 사람이다. 빌헬름은 의술로서도 세상에 기여하겠지만, 탑의 결사의 일원이자 선각자로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자신으로 거듭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빌헬름의 여정은 여태 걸은 길에 결실이 없다고 해서 헛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못할 수도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일에 종사할 때 기른 관점이 다른 분야에서 나를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해 너무 큰 계획을 생각하고 좌절에 영원히 넘어질 필요는 없다. 단지 실패는 시행착오로, 성공은 가속으로 삼아서 남들과 구분되는 자기 자신이 되면 될 뿐이다. 그러므로 현실 세계에 탑의 결사는 필요 없다. 경험하고 배우는 것은 나 자신의 일이다. 괴테는 의지를 가다듬고 세상과 조화하겠다는 마음가짐만 지키면 누구나 빌헬름처럼 듬직하게 성장하리라 믿었다. 나는 그 의지를 이어받아, 일단 지금 내가 걷는 길에 충실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빌헬름 마이스터 편력시대」에서 아쉬운 점을 얘기하려 한다. 모든 인물들이 제자리를 찾은 점은 좋았지만, 빌헬름이 「빌헬름 마이스터 수업시대」에서 간신히 이룬 부부 관계가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나탈리에와 이어지기 위해 겪은 고초와 희생이 얼마나 큰데, 「빌헬름 마이스터 편력시대」에서는 애정이 서려있는 문체라지만 편지 교환만 할 뿐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 상태로 나탈리에는 계몽주의자인 오빠를 따라 해외로 떠나고 빌헬름도 자신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으니, 가족이라는 틀이 그들에게 정녕 소중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빌헬름 마이스터 편력시대」는 끝없이 가정을 넘어 개인과 세계에 시선을 두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전작에서 빌헬름이 겪은 방황을 생각하면, 세계만을 향해 다소 작위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빌헬름의 태도에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결국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함을 깨달아놓고 펠릭스만 챙기고 있으니 어딘가 답답한 마음도 든다. 「빌헬름 마이스터 편력시대」가 성장을 주제로 하는 만큼 부부 사이의 연정을 다룰만한 기회가 충분히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후속작'이라는 측면만 보면 분명 부족한 부분이다.
이상으로 「빌헬름 마이스터 편력시대」를 읽고 든 생각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수많은 생각들을 다 여기에 옮기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명성이 덜해서 전작만 못할 것이라 예측했는데, 오히려 더 크게 배웠다. 명성과는 반대로 「빌헬름 마이스터 편력시대」를 읽기 위해서 「빌헬름 마이스터 수업시대」를 읽으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이다. 부디 이 작품이 재조명 받기를 바란다. 끝으로 현재 '빌헬름 마이스터 시리즈'를 완전판으로 팔고 있는 유일한 출판사이자(민음사는 일부가 절판됐다), 구매한 지 1년이 지난 파본을 기꺼이 교환해 준, 동서문화사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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