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숙고」



  백순문(白舜文)의 사형제는 뱃사람이었는데, 을축년(乙丑年) 봄 풍랑에 맏형 순문이 목숨을 빼앗긴 뒤 남은 삼형제는 심사숙고에 잠겼습니다.

  심사숙고는 그러나, 그걸 오래 오래 하고 지내 보자면 꼭 그것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어서, 큰 아우 백관옥(白冠玉)이는 술로 그 장단(長短)을 맞추었던 것인데, 이 사람은 술도 가짜 술은 영 못 마시는 성미라, 해마다 밀주(密酒)를 담아서는 숨겨두고 찔큼찔큼 마시고 앉았다가 순경한테 들키면 그 때마다 벌금만큼 징역살이를 되풀이 되풀이해 살고 나와야 했습니다. 둘째 아우 백사옥(白士玉)이도 그 긴 심사숙고의 사이, 마지못해 사용한 게 술은 술이었지만, 그래도 백사옥이 술은 진가(眞假)를 까다롭게 가리지도 않는 것이어서 아무것이나 앵기는 대로 처마셨기 때문에 벌금조(罰金條)로 또박또박 징역살러 갈 염려까지는 없었지마는, 그놈의 악주독(惡酒毒)으로 가끔 거드렁거리고, 웃통을 벗고 덤비고, 네갈림길 넓적바위 같은 데 넓죽넓죽 나자빠져 버리고 하는 것이 흉이었습니다.

  이 두 형에 비기면, 막내 아우 백준옥(白俊玉)이가 그의 심사숙고 사이에 빚어 두고 지내던 건 좀 별난 것이어서 우리를 꽤나 잘 웃깁니다. 백준옥이는 그가 난 딸아이가 볼우물도 좋고 오목오목하게 생겼대서 '오목녀'라고 이름을 붙이고, 또 석류나무를 부엌 옆에도 하나, 문간에도 하나 두 그루나 심어 꽃피워 가지고 지내면서, 언제, 어떻게, 남의 눈에 안 띄이게 연습시킨 것인지, 한동안이 지내자, 이 집 웃음과 아양을 왼 마을에서도 제일 귀여운 것으로 만들어 '아양이라면이사, 암, 백준옥이네 아양이 이 하늘 밑에서는 제일이지 제일이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기사 그렇기는 했지만서두, 이런 그들의 심사숙고는 그들의 일생 동안 끝나는 날도 없이 끝없이 끝없이만 이어 가다가, 또 다시 그들의 아들딸들 마음속으로 이어 넘어갈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해 어느 날, 그 석류꽃 아양 집--그 백준옥이네 집 아들 하나가 그 두 대의 심사숙고의 끝을 맺기는 겨우 맺었습니다. 그집 식구들 가운데서도 유체 얼굴의 눈웃음의 아양이 좋은 아들 백풍식(白風植)이가 바닷물을 배를 또 부리기 시작하기는 시작했습니다만, 멀고 깊은 바다 풍랑에 죽을 염려가 있는 어선이 아니라, 난들목 얕은 물인 조화치(造化峙) 나룻터의 나룻배 사공을 새로 시작한 것입니다.



- 『질마재 신화』(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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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비슷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서정주의 초기에 씌어진 「꽃」과 후기에 씌어진 「곡(曲)」은 서정주 문학에서 중요한 지혜 중의 하나로 꼽히는 '엣비슥히 비기어 누워' 사는 태도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들로 개인적으로 떠오른다. 이러한 지혜는 아직까지도 평자들에게서 동감보다는 반발을 불러일으킬 때가 훨씬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하더라도 그는 피해 가는 것 또한 삶의 지혜일 수 있음을 강조해 왔다. 뒷날의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에 보이는 일련의 우리나라 국왕을 소재로 다룬 시들은 그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왕건이 고려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견훤에게도 응석을 부릴 줄 알았던 '포섭력' 때문이고,(「왕건의 힘」) 충렬왕이 처갓집에게 맞고 살면서도 왕조를 연명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식을 낳을 줄 아는 '거이키의 힘'이라도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충렬왕의 마지막 남은 힘」). 물론 이러한 자기위안적 인식에는 부정적 측면도 없지 않아서, 가령 「고려 고종 소묘」 같은 시에서는 그 논리가 극단적이게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위의 맥락에서 『질마재 신화』에 실린 「심사숙고」의 의의는 이러한 회피와 아양의 지혜를 가장 구체적인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에서 우선 중요한 것은 회피하는 삶 또한 '심사숙고'를 거쳐서 나온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일지라도 그 이면에는 나름대로의 고민들이 쌓여 있기 마련인 것이다. 같은 심사숙고에 잠기면서도 관옥, 사옥과 달리 준옥은 자기 생활에 '아양'을 키우는 데 성공했고 그 덕분에 그의 다음 대에 심사숙고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아양'은 좋은 의미에서의 계산적인 삶의 태도를 뜻하면서, 한편으로 마냥 슬픔에 잠기지 않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준옥의 이러한 노력이 본인 대가 아니라 본인의 후대에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결말의 논평도 묘하게 교훈이 담겨 있는 듯해 재미있다. 다만 다소 알쏭달쏭하게 느껴지는 것은 같은 술을 먹더라도 관옥은 당시 정식으로 판매되는 술을 사기 싫어해 밀주만 고집했고 사옥은 가리지 않고 먹었다는 내용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양조를 규제하고 밀주를 단속하기 시작한 사회사적 배경을 깔고 있는 대목인데 그 이상의 교훈이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 덧: 개인 사정으로 연재는 당분간 열흘 정도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