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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나름의 기준에 따라 재밌어 보이는 것만 고르는 작품들이건만 요즘은 왜 계속 드랍하게 되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이번에는 조금 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이 기묘하다
짧게 요약하면 번역의 문제다
일본 유학가서 박사 학위 따고 오신 교수님의 번역을 감히 씹덕 새끼가 어줍잖게 주워들은 지식으로 까려고 해?
물론 지당한 말씀이다. 비꼬는 의미는 전혀 없이 고스란히 인정한다.
처음에는 건방지게도 '아 씨발 좆같이 번역했네 이름만 빌려주고 제자들 시켜먹은 거 아니야?' 같은 수상한 생각에 가득찼으나
원문을 보고, 지금은 절판된 '생각의 나무' 판 번역을 (물론 서점 사이트에 남은 소개글 뿐이다) 보고, 다시 이 책의 번역을 보니, 그런 막말을 쉽게 할 정도의 작업은 아니었다는 것을 얼른 눈치채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드랍했다는 것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뜻인데, 왜 그렇게 느꼈는지 설명하겠다
처음으로 눈에 띈 것은 너무나 현대적인 번역어였다
임대 연립 주택, 토목 기술자. 이걸 메이지 시대와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할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임대 연립 주택은 貸長屋, 토목 기술자는 火消鳶人足 이다. 나가야는 예상했는데 토비닌소쿠를 토목 기술자로 번역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자주 등장하는 단어도 아니었는데 차라리 음차하고 주석을 다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분위기를 확 깨버리는 번역이었다. 소개는 이 정도로 하겠지만 이런 현대적인 단어가 한둘이 아니다
가장 결정적인 단어, 드랍하게 된 계기는 '칠오삼 비율로 만든 옷차림' 이라는 단어였는데
원문은 놀랍게도 七五三の着物 였다. 제발 이것만은 아니길 바라며 찾았는데 정말 이거였다. 어이가 없었다
이런, 솔직히 말해서 만행에 가까운 번역에도 불구하고, 이 책과 작업 전체를 싸잡아 욕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내가 히구치 이치요의 원문을 거의 제대로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술 자체는 헤이안 시대의 의고체로 쓰고 인물들의 대사는 언문일치로 썼다고 한다
번역된 글에서는 여러 개의 문장으로 쪼개져 하나의 문단을 이룬 글이
원문에서는 한 두 문장으로 쭉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쉼표의 연속이다. 먼가 낮은 조로 노래하듯 읊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나라 판소리 같은 느낌
그래서, 제대로 옮기지 못할 만도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쨌든, 제대로 옮기지 못한 것은 맞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물론 괜찮은 점도 있었는데
일본 문화에 무지한 독자를 배려한 대단히 자세한 주석이 눈에 띄었다
또 히구치 이치요에 대해 역설한 역자 자신의 해설도 잘 읽었다. 알못인 거 아니야? 라는 의심때문에 드랍을 결정하고 나서 역자의 해설을 열심히 읽었는데 내 짧은 식견으로도 역자가 알못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한편 절판된 생각의 나무 판 번역도 (읽은 것은 소개글 뿐이지만) 이상하긴 마찬가지였으므로
히구치 이치요를 제대로 읽기는 아직 요원한 것 같다
오노 시치고산
가쌍으로 바꿈
자고 일어나니 감상으로 바뀌어있길래 섣달 그믐 이라는 짧은 단편 하나 읽은 입장이지만 감상도 한마디 적겠다 당대에 급속도로 커진 빈부격차를 자세히 묘사한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그와 대비되는, 최근에 서양에서 들어온 인간 평등 사상에 대한 작가의 인지와, 그것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제대로 인식하지는 못하는(즉 마르크스주의 문학적이지는 않은) 민초를 아이러니로 대비시켜 드러낸 것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평가대로 좋은 작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