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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고대 그리스 희곡을 읽었다. 고대 그리스의 문물은 참 대단하다. 시대를 초월하는 필력과 감동을 지니고 있으니 이들은 불멸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읽은 「오레스테이아 3부작」도 복수에 관한 심오한 통찰을 주는 한편으로, 인물들의 탄식이 마음을 강하게 때려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간단히 요약하면 복수가 복수를 낳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아트레우스는 아우 튀에스테스가 왕권에 도전하자 아우를 추방했는데, 나중에 아우의 귀환을 승인해놓고서는 아우의 아이들의 살점으로 만든 요리를 대접했다. 그 아들 아가멤논은 출정을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했다. 아가멤논은 튀에스테스의 아들 아이기스토스, 그리고 아내이자 이피게네이아의 어머니인 클뤼타이메스트라에게 원한을 산 형국이었다. 결국 이 둘은 흉계를 꾸며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그러나 이는 아가멤논의 자식들인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의 원한을 샀고, 결국 오레스테스는 아가멤논이 살해당할 때처럼 계략을 꾸며 클뤼타이메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를 살해한다. 그러나 오레스테스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원한을 갚음으로써 복수자이자 패륜아가 되고 만다. 복수자로서 오레스테스를 옹호하는 아폴론과 패륜아를 용서치 않는 복수의 여신들의 대립에 휘말린 것이다. 이때 아테나가 중재자로 나서 오레스테스의 재판을 벌이고, 오레스테스는 무죄로 풀려났으며 복수의 여신들은 복수를 포기하는 대신 아테나의 비호로 세력을 얻어 '자비로 통치하는 여신들'로 거듭난다.
결국 모든 것이 정해진 운명대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오레스테이아 3부작」는 전형적인 그리스 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행위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있다. 운명으로 정해진 일이기 때문에 사람은 악이 주는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아이스킬로스는 운명을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정의의 여신이 저울을 기울이시니, 고통을 통해 배우게 되리라. 미래 일은 일어나게 되면 알게 되리라. 하지만 그때까진 놔두어라. 그건 미리 한탄하는 일이니. 모든 것은 새벽 햇살이 비칠 때 또렷이 나타나리라." 아버지를 잃은 고통과 어머니를 향한 복수 사이의 윤리적 딜레마를 인식함으로써 오레스테스는 책임을 배운다. 신들이 정한 운명을 따른다 해도 그 운명이 낳는 새로운 운명은 자신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는 운명을 벗어나지도 못하지만 운명이라는 명목으로 책임을 회피하지도 못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동시에 운명을 받아들이되 책임을 피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운명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수동적인 가치관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심판하는 신'과 반대로 '집행하는 인간'의 고뇌를 다룸으로써 인간의 주체성을 보여줬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운명으로 결정된 것이라 하더라도 무한한 복수가 아름다울 리 없다. 무고하지는 않더라도 희생자가 계속 늘어나는 꼴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복수의 연쇄를 정의의 여신 아테나가 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받은 그대로 대갚음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대갚음하는 것은 새로운 죄를 얹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세상에는 수많은 부조리들이 존재하고, 이것들을 모두 용서할 수 있는 초인은 드물다. 하지만 악의 연쇄를 끊으려면 누군가가 용서자가 돼야 한다. 국가로 치면, 내란의 연쇄를 끝내고 진정 위험한 외란을 막기 위해 누군가가 책임지고 중재해야 하는 것이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서는 아테나가 그 역할을 맡았다. 현실에는 아테나 같은 신성한 중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테나를 대신하여 책임을 지고 중재할 수 있는 사람들은 법관 혹은 정치가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올바른 중재가 있기를, 그리고 개인들이 중재자들의 저의를 이해하고 전체를 위해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한편 「오레스테이아 3부작」는 훌륭한 작품이지만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오레스테스는 아가멤논의 아들이지만 이피게네이아의 동생이기도 하다. 아내가 정부(情夫)와 합작해 남편을 죽이는 것은 물론 천륜을 어기는 일이다. 하지만 이피게네이아도 존속 살해를 당한 꼴인데, 오레스테스는 이피게네이아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아이기스토스도 수단이 매우 부정했고 아트레우스가 아닌 그 아들을 대상으로 복수했다는 점에서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아트레우스 대에 복수당할만한 죄가 생겼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신들이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는 것이 아들이 어머니를 죽이는 것보다 큰 죄라고 말하는 부분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물론 당대의 남존여비를 참작하며 감상해야겠지만, 양성평등을 덕목으로 삼는 현대에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신화가 이미 존재하고 있으니 「오레스테이아 3부작」의 줄거리도 운명처럼 이미 정해진 상태였다. 그러므로 줄거리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하지만 오레스테스가 가문에 박혀있는 모순들과 복수들을 전부 이해하고 행동하는 주인공이었다면 더 훌륭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고대의 작품을 읽는 것은 흥미롭지만 어려운 일이다. 생각할 거리가 많지만, 당대의 인물과 동일한 시선으로 상황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런 차이를 인식하며 나름대로의 비평을 쓰는 것도 고전을 읽는 재미의 하나인 것 같다. 다음번에도 훌륭한 작품을 읽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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