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갤에 올린거 여기도 올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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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알아볼 것은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미완의 저작과 그에 관련된 한 로스트 미디어에 얽힌 일화들이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발터 벤야민이라는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가 1927년부터 1940년까지 13년을 매달려 작업한 텍스트이다. 벤야민은 거의 억까나 다름없는 여러 악재가 겹쳐 이 저작을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원제는 파사젠-베르크(das Passagen-Werk)로, 파사주,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흔히 전통시장에서 볼 수 있는 그 아케이드에 대한 작업이라는 뜻이다. 천장이 아치형 유리로 되어있고 양가에 상점들이 들어선 그런 구조 말하는 거 맞다.
이 저작에 대해 벤야민 본인이 저술한 자료중 남아있는 것은 방대한 양의 노트&메모와 개요겸 서론 몇개, 초고로 보이기는 하나 구체적인 지위는 미스터리인 원고 몇개가 전부이며, 이 저작과 관련하여 벤야민이 1940년에 스페인 국경에서 죽기 직전까지 애지중지하게 들고 다녔다는 정체불명의 원고가 존재했다고 추정되지만, 이 문제의 원고는 아직까지도 행방이 묘연하다.
그런데 이 실전된 원고가 무엇 때문에 중요한가? 그것은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자료들)의 특징과 관련이 있다.
철학자가 미완성된 유고를 남기는 것이야 흔한 일이니 여기까지는 별 특이한 사항이 없다. 이 저작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지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 째는 벤야민이 13년 동안이나 매달렸음에도 작성을 아예 시작하지조차 못한 저작이라는 점이며, 둘 째는 일단 이 작업과 관련하여 벤야민이 남긴 기록이 매우 방대한 동시에, 마치 카오스와도 같아서 내용을 도무지 종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빡침을 선사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양이 많길래 그럴까?
국역본을 기준으로 총 2568페이지 되시겠다...
2000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의 유고가 있음에도 내용이 종 잡을 수가 없다는 것에서부터 불길함이 느껴지지만, 일단 넘어가자.
물론, 2568은 역자 서론, 후기, 편집자 주, 부록 등등을 다 합쳐서 2568이란 것이고, 실제 양은 벤야민 전집의 편집자인 롤프 티데만의 분류에 따르면 대략 이렇다:
“노트와 자료들”: 1650쪽 (오타 아님)
“자료들”: 100쪽
“초고”들: 120쪽
“개요들”: 50쪽
그러니까 대략 1900쪽 정도가 된다는 것인데, 여전히 정신나간 분량임은 틀림없다.
후술하겠지만 이 원고의 대부분의 보관을 담당하고 있었던 바타유는 원고의 양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원고 뭉치들은 한데 모여 있으며 제 생각에는 상업 용지 절반 크기의 종이였던 것 같습니다(아니면 그보다 약간 더 클 수도 있습니다). 뭉치 전체는 높이가 약 15~20센티미터 정도일 것입니다.”
(저 “상업 용지”의 크기는 모르겠지만 벤야민의 원고 스캔본을 보니 대충 A4 정도 같다. 벤야민이 글씨를 매우 작게 쓰는 스타일이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1600쪽 정도 되는 이 “노트와 자료들”의 내용이 무엇이냐면, 각종 분야에 대한 인용문들과 벤야민의 비교적 짤막한 메모들 뿐이다. 거의 7할 정도가 인용문들이고 벤야민 본인이 남긴 글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자료들은 총 36개의 주제들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 주제들은 19세기 당시 파리의 아케이드, 박람회, 패션, 건축 양식, 인테리어 등등부터 시작해서 도박, 철도, 철골 건축, 사진, 거울, 조명, 회화, 자동인형, 복제 기술 등등의 주제를 거쳐 프랑스 혁명 당시의 초기 사회주의자들이나 마르크스, 위고, 니체, 융, 보들레르 등등에 심지어 증권거래소나 에콜 폴리테크니크(프랑스 유명 공대임)까지 아주 다양하다. (총 850개의 저술이 인용되어 있다.) 이 36개의 주제들은 시기별로 다시 94개로 분류된다.
더 골 때리는 것은 이 36개의 주제들을 어떤 순서로 읽어야 하는지도 거의 미스터리라는 것이다. 게다가 인용문들도 그 종류가 아주 각각이다. 한편으로는 신문 기사나 관광 가이드북이 인용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보들레르의 시나 마르크스의 저술들이 인용된다. 그래서 말이 분류된 메모들이지 사실상 순서를 전혀 알 수 없는 인용문과 메모들이 몇천개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물론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모종의 계획이나 전체적인 순서들을 적어둔 자료도 존재하지만, 짤막한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고, 또 대부분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개요겸 서론인 「파리 – 20세기의 수도」의 구조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개요란 것도 두 개가 전해져내려오기는 하지만 다 20~30쪽 짜리 정도의 물건이다. (다만 벤야민이 글을 꽤나 함축적으로 쓰는 편인 것도 감안해야 한다.) 뭐 서적의 개요란 것이 달리 말하자면 요약본이니 아주 오리무중은 아닌 상태이고, 사실 상의 축소판으로 취급받는 「보들레르론」이 무사히 남아있긴 하지만…
이 원고들의 혼란스러움에 대해 단적인 예시를 하나 들자면, 벤야민의 지인 중에 테오도어 아도르노라는 철학자는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아예 인용구로만 구성된 저작으로 구성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편집자인 티데만은 이에 반대하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주장이다. 인용문들로만 구성된 저작이라는 정신나간 추측에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이 이 메모 더미가 얼마나 개판인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건물로 비유하자면 무슨 뼈대만 잡아놓거나 그런 수준조차 아니고 그냥 제대로 된 설계도도 없이 재료만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웃기게도 13년 동안 집필 시작도 못한 이 저작에 대해 벤야민은 제일 처음에는 “분량이 어느정도 될 지는 모르겠지만 몇 주만에 끝날 거임ㅇㅇ” 이라고 숄렘에게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디엔가 혹시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구조를 (숄렘 왈) “궁극적인 형태로 정식화해놓”지는 않았을까 생각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고, 벤야민의 망명을 도운 사람인 리사 피트코에게서 벤야민이 망명할 당시 원고가 든 어떤 검은 서류 가방을 애지중지 지키고 있었다는 증언을 카이멘 에이브럼스키란 교수가 듣고 그걸 벤야민의 지인 중 한명이었던 게르솜 숄렘이라는 유대교 학자에게 1980년 즈음에 전하면서 벤야민이 망명하는 동안에 남긴 텍스트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
벤야민은 유대계 독일인이었기에 나치를 피해 프랑스로 도망쳤다가 스페인으로 망명하려고 했다. 그래서 피레네 산맥을 어찌저찌 도보로 넘어 포르부 지역의 국경 검문소에 도착하기는 했으나, 정체 모를 이유로 마침 그때 국경이 폐쇄되었고, 프랑스로 송환될 (즉 독일로 넘겨질) 위기에 처한 벤야민은 결국 모르핀으로 자살을 택했다. 벤야민이 죽은 바로 다음날 국경이 다시 열린 건 덤이다.
이때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것을 도운 인물이 리사 피트코였는데, 피트코의 증언에 따르면 벤야민은 망명 당시에 원고 몇 페이지가 들은 검은 서류 가방을 가지고 있었다.
피트코의 증언 전까지는 벤야민이 파리를 떠나 스페인으로 망명하는 동안에 남긴 저술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는데, 벤야민이 파리를 떠나면서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관련된 자신의 원고들이나 자료들을 파리 국립도서관의 사서인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에게 맡겨놓았기에 관련 작업을 할 수가 없었을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바타이유에게 남긴 유고를 비롯해 사실 전해져 내려오는 벤야민의 저술들 중 대부분은 로스트 미디어가 될 뻔 했는데, 당장 바타유가 보관하고 있던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원고조차 아주 우연히 발견된 것이었다. 피에르 미사크라는 벤야민의 지인이 프랑스로 돌아와 4주 동안 벤야민의 지인이나 살던 건물들을 뒤져보았지만 유고에 관한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었다. 그러다가 1945년 7월 26일에 우연히 한 카페에서 바타유를 만났고, 바타유에게 자신이 벤야민으로부터 원고를 맡도록 부탁받았으며 현재 원고들은 바타유의 친구인 주네와 브뤼노가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가을 쯤에 바타유가 원고를 이 둘로부터 넘겨받는다.) 벤야민은 생전에는 그닥 유명하지 않았기에 바타유가 1962년에 죽고 나서야 발견될 수도 있었다 이 말이다. (미사크 왈: “사실 일은 아주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실제로 벤야민의 저술 중 하나인 역사철학테제의 저자 보관용 독일어 판본은 바타유에게 맡겨지긴 했지만 행방불명이었다가 바타유가 죽은지 19년 뒤에 조르조 아감벤에 의해 바타유의 문서 보관소에서 발견되었다. 이와 함께 바타유에게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최종 기획안이 있었을 것이라는 기대도 무너졌다.)
덤으로,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제외한 나머지 주요 유고들이(안 중요한 유고들은 그냥 집에 뒀음) 어떻게 발터 벤야민의 여동생 도라 벤야민을 통해 아도르노에게 전해졌는지는 여전히 불명이다. 편집자 티데만은 나머지 주요 유고들도 그냥 파리에 남아 있었으며 도라 벤야민이나 친구가 나중에 파리에서 다시 들고와 미국으로 망명해있는 아도르노에게 보낸 것이라고 추측한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서론에 해당하는 “초고”들이 도라 벤야민을 통해 아도르노에게 전해진 것들 중 일부이다.
1980년에 피트코는 벤야민이 국경을 넘을 때의 기억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공개했는데, 피트코의 증언에 따르면 벤야민은 문제의 원고가 들어있을 서류 가방을 굳이 계속 들고 다녔으며, 도중에 물이 다 떨어지자 땅에 고인 초록빛 물을 마시려고 해서 피트코가 티푸스에 걸릴 것이라며 말리자 티푸스에 걸려 죽는 한이 있어도 국경을 넘어 원고를 지켜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피레네 산맥을 넘은 당일 밤에 벤야민은 자살했다.
그런데 벤야민에게 극히 중요한 원고가 있었다는 피트코의 증언과는 정반대로 국경을 넘은 뒤에 포르부에서 다시 합류한 벤야민의 일행인 헤니 구틀란트의 증언에는 원고나 서류 가방에 대한 언급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던 도중 티데만은 벤야민의 지인 중 하나인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유고에서 스페인 국경 경찰대가 벤야민에 관해 호르크하이머에게 보낸 편지를 떠올렸는데, 호르크하이머는 벤야민의 부고를 듣자마자 스페인 국경 경찰대에[게 상세한 사정을 문의했고, 국경 경찰대는 호르크하이머에게 벤야민의 짐은 읍의 판사가 보관하도록 했다는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편지에는 벤야민의 짐 중에 “적혀 있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몇 장 안되는 다른 페이퍼들”이 있었다고 적혀있었다.
그러나 티데만은 이 원고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관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여하튼 이 사실을 알게 된 숄렘은 1980년 6월 16일에 비행기를 타고 포르부가 위치한 피게라스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날 피게라스의 문서 보관소 담당자인 펠릭스 가르시아 데 마리나 박사와 만났는데, 가르시아는 자신이 문서 보관소를 담당해온 지난 6년간에 문서를 파기한 적은 확실히 없으며, 전에도 없었을 것이며 있었다면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가르시아는 5년 전에 재판소가 이사하면서 보관된 문서들에 “물과 쥐가 드나든 것”이 발견되어 버린 적이 있었다고 했다.
가르시아와 숄렘은 피게라스 재판소의 형사 기록을 뒤져보았지만 벤야민에 관한 것은 없었고, 가르시아는 지금은 사라진 포르부 재판소에 사본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가르시아가 포르부 시청에게 전화를 걸자 서기인 키리아코는 “벤야민에 대해 하도 사람들이 물어봐서 오래전에 자료들 다 뒤져봤는데 사망자 기록이랑 공동묘지 기록부 말고는 없음”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가르시아와 숄렘은 민사 사건 기록을 찾아보기로 했는데, 꼼꼼히 뒤지는 않았으나 여하튼 자료는 없었다. (숄렘 왈: “이 등기소는 극히 무질서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번 수색은 그리 꼼꼼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사건들이 연대순으로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숄렘과 통역사가 식사를 하러가는 사이 가르시아는 문서 보관소를 새로 정리했지만 여전히 벤야민 관련 기록은 없었다. 가르시아는 숄렘에게 약 10개가 누락되었을 수 있으며 그 중 249번 기록이 시간적으로 벤야민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가르시아 왈 “완전히 카오스 상태에 있었”었던 보관소이며 “지금의 모습대로 정리하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 숄렘은 티데만에게 벤야민 관련 기록이 전혀 존재하지 않음을 완전히 확인하려면 피게라스의 기록 전체를 뒤져야겠지만 그렇게 하려면 몇 달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숄렘은 포르부로 가 시청의 서기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벤야민은 서류상으로는 자연사했기에 경찰이나 재판소에 기록이 있을 수가 없으며, 사람들이 따로 남긴 기록도 없다는 답을 얻었다.
숄렘은 티데만에게 보낸 비망록의 뒤에서 두 번째 문단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뭔가를 내놓지 않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포르부에서 이미 모든 가능성을 다 알아보았다고도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숄렘은 포르부에는 없는 것이 확실하나 피게라스에 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며 비망록을 끝낸다.
“따라서 그것은 피게라스의 재판소의 문서 보관소가 새롭게 정리될 떄나 아니면 우연에 의해서만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 포르부에 아직 벤야민 관련 기록이 존재한다고 해도 어쨌든 그것은 ‘페이퍼들’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 희망은 벤야민이 자살할 당시에 일행이었던 헤니 구틀란트에게 달려 있었는데, 티데만은 구틀란트의 결혼 적 성을 전혀 알 수 없어서 꽤나 애를 먹었었다. 그러다 “전혀 엉뚱한 것을 추적하다가” 티데만은 구틀란트가 에리히 프롬과(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듀오+벤야민과 함께 프랑크푸르트 학파 1세대 주요 인물임)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구틀란트는 1952년 멕시코에서 죽었고, 아들인 호세는 프로비던스에 있었는데, 호세의 기억은 불완전하여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티데만은 1981년에 아도르노의 유고를 넘겨받았고, 그 속에서 구틀란트가 기억에 의존해 재구성하여 적은 것으로 추정되는 벤야민의 편지 두 개를 발견한다. 두 번째 편지는 아도르노와 구틀란트에게 보내는 편지였는데, 구틀란트는 이 편지를 읽은 다음 없애만 했다.
벤야민은 이 편지에서 구틀란트에게 벤야민 본인의 “생각”(“pensees”)을 아도르노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티데만은 이 “생각”이 피게라스에서 사라진 원고를 의미한다고 추측했다.
숄렘은 이 사라진 원고가 “궁극적인 형태로 정식화해놓은 벤야민의 필기 원고”라 추론하지만, 티데만은 벤야민은 그러한 내용의 원고를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티데만은 벤야민이 망명 도중, 그러니까 루르드와 마르세유에서 꽤나 많은 양의 집필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티데만은 출판된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부록 중 성립사를 다루는 부분에서 벤야민에게 원고가 두 개였을 수 있다고 다음과 같이 추측한다: 하나는 파리에서 완성한 이후에 사본을 따로 만들어 파리에서 가지고 나온 원고로, 이것이 피트코가 증언한 문제의 검은 서류 가방에 들은 원고이고, 스페인 국경 경찰대장이 호르크하이머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한 “적혀 있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몇 장 안되는 다른 페이퍼들”이며, 그 정체는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 아니라, 벤야민의 마지막 저작으로 알려져있는 「역사의 개념에 대한 테제들」(소위 “역사철학테제”)의 사본이고 피게라스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역사철학테제는 파리에서 다른 유고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망명 도중에 작성하기 시작한 꽤나 많은 양의 원고로, 정체는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작업이며, 구틀란트가 벤야민의 편지를 없앴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없앴어야 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구틀란트가 편지를 파기한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는 반면 후자의 원고를 파기한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남는다고 티데만은 정리한다.
개인적으로는 숄렘이 생각하는 그런 열쇠 같은 원고가 있다고 한들 사정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음. 대략의 내용은 어짜피 개요랑 보들레르론이 있고, 구체적으로는 애초에 벤야민 본인이 살아돌아와야 완성이 가능한 물건이라…
그래서 저 책 내용이 뭐라고?
잘읽었음 제목은 많이 들었는데 여러모로 골때리는 글 뭉텅이였네
벤야민추 정성추ㅋㅋ 벤야민이 지리긴함 현대미학계 goat
지젝은 이거 가지고 아예 음모론 소설 하나 썼더라...
그냥 글뭉텅이였굿
추리소설임? ㅈㄴ 재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