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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중퇴와 자퇴를 반복하며 문학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다다이즘, 상징주의, 생철학 등이 융합된 자신만의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다. 니혼대학 자퇴


1932년 드디어 생애 최초의 시집인 <염소의 노래(山羊の歌)>를 발간하려고 계획하지만 구매 후원자를 달랑 10명을 채우는 처참한 상업적 실패를 겪는다.


이는 그의 시들이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아 일본어를 자유롭게 다루고 변형하며 의성어와 언어유희를 적극적으로 구사한다는 점, 그리고 아주 일찌감치부터 노래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시의 소재로 절망과 허무를 다루지만 그러면서도 파멸과 죽음만을 무조건적으로 추구하지는 않으며 그보다 복잡한 무언가를 풀어놓는다는 게 그의 시의 독특한 면이기도 하다.


작가 다자이 오사무와는 사이가 나빴다. 서로 청고등어(青鯖)[4]니 민달팽이(ナメクジ)[5]니 하며 까댔을 정도. 나카하라는 잡지 창간을 권유하러 찾아온 다자이를 면전에서 모욕하거나, 술에 취해서 다자이의 집에 찾아와 문을 발로 차면서 '바보! 바보!(バカ)'라며 괴롭혔고, 다자이는 이불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울었다는 일화가 있다.


150cm로 키가 매우 작았다. 말을 할 때 온갖 외래어를 섞어 말했으며, 항상 검은 모자와 망토를 착용하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지나가던 학생에게 뜬금없이 자기가 외롭다고 말하며 주소지를 줬단 일화를 보면 의외로 외로움을 탔을 거란 견해도 있다.[7]

술을 좋아했다고 하며, 술버릇은 남을 패는 것이라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질펀하게 들이키고선 널 죽여버리겠다면서 남을 술병으로 공격하거나 갑자기 때렸다는 듯.

또 당신입니까 니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