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월말까지는 조금 더 남았으나 7월 달 안에 다 읽을 책이 더 없을 것 같아 미리 결산을 가지도록 하겠다. 이번 달엔 한 작품 밖에 못 읽긴 했지만 오랜 숙원이었던 책을 끝내 완독한 덕에 꽤나 뿌듯했다. 그래도 다음 달엔 더 다양한 책들을 읽어볼 것을 다짐하며 7월 동안 읽은 책을 정리해보겠다.

1. 안나 카레니나 (Анна Каренина)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 안나 카레니나 中 -

1828년 러시아 아스나야 폴랴나 태생의 소설가이자 러시아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는 레프 톨스토이(Лев Толстой)가 1875년부터 1877년까지 러시아 통보 지에서 연재하다 1878년 단행본으로 출간한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읽어봤다. 톨스토이는 막대한 영지를 소유한 백작가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덕에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내며 최고의 교육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몇백년 전에 철폐한 농노제를 아직까지도 유지하며 농민들을 착취하며 유지되는 구시대적인 러시아의 귀족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실제로 그는 다른 귀족들과 달리 농노들의 처우 개선에 힘썼던 진보적인 귀족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가족과 주위 귀족들은 물론 가문의 영지에 있던 농노들에게 조차 비웃음을 샀다. 이런 냉엄한 현실에 좌절한 그는 모스크바로 건너가 여느 귀족들이 그렇듯 방탕하고 쾌락적인 삶을 살며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했다. 

그러다 톨스토이는 형이 장교로 있었던 캅카스 전선에 주둔한 부대에 사병으로 입대를 하였고, 이후 전공을 세우며 부사관을 거쳐 장교로 임관하였다. 그는 전선에서 복무하며 체첸인 토벌 작전 중 벌어졌던 참상을 목도하며 큰 충격을 받았고, 이는 톨스토이 특유의 평화주의적 사상이 빚어지는데 큰 영향을 끼친다. 군생활을 하면서도 틈틈히 글을 써왔던 톨스토이는 여러 중단편 소설들을 출간하며 작가로서 두각을 드러냈고, 1865년 나폴레옹 전쟁 당시 참전용사들과 전쟁을 겪은 사람들을 철저히 취재하고, 자신의 군생활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집필한 일생의 역작 전쟁과 평화(Война и мир)를 출간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명성을 얻은 후에도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 이반 일리치의 죽음(Смерть Ивана Ильича), 부활(Воскресеніе), 하지 무라트(Хаджи-Мурат) 등 주옥같은 명작들을 내놓으며, 그는 러시아 문학사에 불멸의 작가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데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나의 이모 덕이 있었다. 내 이모의 경우에는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 내게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추천해주었는데 톨스토이 소설은 취향에 안 맞아서 안나 카레니나를 도중에 읽다 말았었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이를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이모가 내게 책을 보내준다고 하자, 안 읽을 거면 안나 카레니나 전권을 보내달라고 부탁해서 받아냈다. 받은 이후로도 압도적인 분량 때문에 읽기를 주저하다, 이번 달에 큰맘 먹고 읽어봤다.

안나 카레니나는 제목 전면에 내걸린 등장인물의 이름이 무색하게도 꽤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군상극이다. 물론 이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이 두명 있는데, 한 명은 제목의 주인공이자 20살 연상의 남편과 딱딱한 결혼생활만 하다가 브론스키라는 젊은 백작에 마음을 빼앗겨 불륜의 늪에 빠진 안나 카레니나이다. 나머지 한 명은 여느 귀족들이랑은 달리 시골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영지를 꾸리고 성정이 거칠지만, 항상 사색에 잠기며 지적인 면모를 보이고 14세 연하의 공작 영애 키티 쉐르바츠카야와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콘스탄친 레빈이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스티바 오블론스키, 돌리, 키티, 까레닌, 브론스키와 같은 조연들도 적지않은 비중이 배정받아 각자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드러나는 특징을 꼽아보자면 모두들 입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주연이라고 할 수 있는 안나 카레니나와 콘스탄친 레빈만 하더라도 이들의 행적 때문에 둘 다 평면적인 악인과 선인으로만 보여지기 십상인 캐릭터들이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전자를 그녀가 지닌 솔직함, 지성미, 친절함, 모성애를 부각시키면서 마냥 미워할 수 없고 동정심까지 유발하는 인물로 묘사하고, 후자는 지나치게 다혈질적인 성격 때문에 거친 행동을 일삼아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나 오해를 주는 경우들이 제법 잦는 등 인격적인 결함을 부각시키며 절대적인 선인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조연들의 면면도 살펴보면 마찬가지로 이를 느낄 수 있는데, 매우 친절하고 호탕한 성품을 지녔지만 방탕을 일삼는데다 걸핏하면 젊은 여성들에게 오입질해대는 스티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가씨지만 너무 지나치게 단순하고 생각이 깊지 않은 탓에 남에게 배신을 당하고 남에게 상처도 주는 키티, 번듯하고 야망있는 청년 장교이지만 지나치게 열정에 취해 모든 중대사를 결정하여 파멸적인 결과를 불러오기도하는 브론스키 등 입체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다. 결함이 두드러지는 입체적인 인물상은 등장인물들에게 한층 더 인간성을 부여해주고, 이야기도 한층 더 실감이 나도록 하게 만들어 작품의 높은 완성도에 크게 기여하였다.

본작의 스토리라인을 살펴보자면, 이야기 자체는 귀족들간의 치정 싸움을 다룬 이야기로 꽤나 단순한 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가는 복잡한 서사 구조에 있지 않다. 바로 이런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를 정교하고 치밀한 필치로 적힌 문장으로 이뤄진 탄탄한 구성이야말로 본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치정극은 인물들의 감정 묘사 뿐만 아니라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1870년대 제정 러시아의 정치적 이슈, 사회상과 생활양식, 러시아인들의 사상을 총체적으로 담아냈다. 외양적인 묘사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묘사도 굉장히 탁월하다. 각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관련해서 사족을 달아보자면 톨스토이는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할 때 이들의 독백만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한 번 정도는 느껴봤을 상념과 감정을 세심하게 묘파한다. 계속 문장을 읽어나가다 보면 톨스토이는 사람들 마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날 정도이다. 이렇듯 본작은 거시적인 면에서든 미시적인 면에서든 거의 완벽에 가까운 치밀함과 정교함을 갖추고 있다. 이는 이 책이 출간 이후 150년이 다 되어감에도 잊혀지지 않고 시간이 더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받고 더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을 조금 더 풀어보자면, 상술하였듯이 이 책은 어마 무시한 분량을 자랑하고 실제로도 한국어 번역본 기준으로 1500쪽이 넘는다. 이 때문에 안나 카레니나를 읽어보는데 주저했던 순간들이 있었고, 처음에 이 책을 집으면서도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확신도 서지 않았다. 하지만 매우 탄탄하고 세심한 구성을 갖추면서도 단순한 서사 구조 덕분에 시간은 걸릴지언정 책 자체는 꽤나 술술 읽었고, 심지어 활자를 읽으며 페이지를 넘기는 매 순간이 즐겁기까지 했다. 더불어, 각 장 마다 세부 챕터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챕터들이 그리 길지 않은 편이라서, 큰 부담없이 짧은 호흡으로 읽기에도 적합했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안나 카레니나의 명성을 들어봤지만 분량 때문에 일독을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근심을 내려놓고 꼭 읽어보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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