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번역해 보았던 갤주님의 '모란'(바로가기)에 이어서 신문지를 번역해 보았습니다.




新聞紙


토시코(敏子)의 젊은 남편은 항상 바쁘다. 오늘 밤도 열 시 까지 아내와 시간을 보낸 뒤 자신의 차로, 아내는 내버려둔 채, 다음 약속에 가버렸다. 남편은 영화 배우이다. 토시코는 자신이 따라가지 못하는 남편의 밤의 약속을 모두 참지 않으면 안되었다.

토시코는 택시를 잡고, 혼자서 우시고메하라이카타마치(牛込払方町)의 집에 돌아가는 것에 익숙해졌다. 집에는 두 살의 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토시코는 오늘 밤 조금 더 밖에서 놀고 싶어했다.

집의 서양풍의 큰 방에 밤에 혼자 들어가는 것이 싫었다. 그곳은 씻을 만큼 씻었는데도 아직 혈흔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 말할 수 없는 혼란의 뒷수습이 드디어 끝난 것이 어제였다. 오늘 밤은 점차 기분 전환을 하는 밤으로 남편이 끝까지 함께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프로듀서와의 마작을 하러 갔다. 오늘 밤은 어쩌면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토시코는 몸집이 작고 예민한, 실로 아름다운 소녀였기 때문에, 학교 시절에는 테리야라는 별명을 얻었다. 쓸데없는 걱정만 해서 조금도 살이 찌지 않았다. 아버지가 영화 회사 중역이었기에 영화배우와 연애를 하게 되어 행복한 결혼을 했다.

노는 것 만큼이나 사람을 동정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 섬세한 영혼은 섬세한 몸매와 얼굴에서 숨은 그림처럼 엿보였다.

그날 밤도 나이트 클럽에서 마주쳐 동석하게 된 친구 부부에게 남편이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데 기분이 안좋아졌다. 토시코는 상상력의 화신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지만 미국풍의 정장을 입은 젊은 미남의 남편에겐 상상력이라는 것이 조금도 없었다. 한결같이 사람의 상상력에 호소하는 직업이었기에 자신이 그것을 가질 필요 가 없었을 것이다.

“대단한 이야기야. 정말 바보같은 이야기야”

라며 그는 밴드의 음악에 대항하는 듯이 몸짓을 하며 큰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2개월 정도 전에, 우리 집 아기의 간호부를 바꿨어. 새로 온 그녀는 굉장히 배가 불룩한 여자로, 그 잘 먹기를 말하자면, 뒤주가 금방 비어버릴 정도야. 듣자 하니 , 위 확장증 이라고 하더라고. 그것이 그저께 밤 늦게, 나와 토시코가 큰 방에 있는데, 옆의 아기방에서 엄청난 신음 소리가 들렸어. 우리는 달려갔지. 간호부는 배를 껴안고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고 옆에는 깜짝 놀란 아기가 울고 있었어.

“무슨 일이야”

라고 나는 물었어. 간호부는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 태어날지도 몰라요”

라고 하는게 아닌가. 이것에 나는 놀랐지. 지금까지 배가 부른 것을 위 확장이라고 믿어버린 우린 태평했던 거야.

우리들은 가정부를 깨워서, 세 명에서 겨우 큰 방까지 데려갔어. 밝은 곳에서 보니 나는 두 번째로 놀랐어. 간호부의 흰 옷자락은 새빨간 피로 물들어 있었어.

나는 융단을 치우고, 아무튼 바닥 위에 모포를 깔고 눕혔어. 간호부는 진땀을 흘려서 이마엔 완전히 정맥이 드러나 있었어.

산부인과 의사를 불렀을 땐 이미 태어난 뒤였어. 큰 방은 그야말로 유혈 참사였지”

“지독한 녀석이네”

라며 친구가 말을 잘랐다.

처음부터 계획적이었던 거야. 마치 개 같아. 우리 집에 아기가 있고 기저귀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나 내가 바빠서 집안을 잘 챙기지 못한 것 같은 것을 모두 계산 해서 이곳에 온 거야. 간호부 회장도 와서 여자를 질책했지만 부루퉁 해져서 ‘죄송합니다’ 한 마디도 없으니까. 어제 겨우 입원 시켰는데 어디 양아치 같은 애 인가 봐”

“그래서 태어난 아기는 어떻게 됐어?”

“건강한 남자 아이야. 우리 집에서 애 엄마가 실컷 먹었으니, 몸무게가 무거운 훌륭한 아이가 태어났어. ······덕분에, 어제 하루는, 나도 토시코도 절반 쯤 신경쇠약이 되어 버렸어”

“뭐 사산이 아니라 다행이네”

“여자 입장에서는, 사산 하는 쪽이 나을지도 몰라”

토시코는 남편이 바로 그저께 밤 자신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을 세상 이야기하듯 소문을 내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 출산의 무서운 정경은 떠오르지 않고 요세기(寄木 나무쪽 세공)마루 바닥에 피투성이의 신문지에 싸여 구르던 갓난아기만 떠올랐다. 남편은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의사는 이러한 이상한 상태에서 아버지 없이 아이를 낳은 어머니에 대한 경멸로 일부러 갓난아기를 소홀히 다룬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가볍게 턱으로 신문지쪽을 가르키며 조수에게 그것으로 아이를 감싸서 바닥에 두게 했다. 토시코의 상냥한 마음은 큰 상처를 받았다. 그녀는 기분이 나쁜 것을 잊었다. 아주 새로운 플란넬(방모사(紡毛絲)로 짠 털이 보풀보풀한 모직물)천을 꺼내어 그것으로 아이를 감싸 안락의자 위에 살짝 두었다.




요세기(寄木)마루 바닥




(플란넬 원단)


토시코는 남편에게 집착하는듯이 여겨지는 것이 싫어서 그 이후로 끊임없이 마음을 헐어버리는 그 정경의 기억을 굳이 남편에게 호소하지는 않았다. 오늘 밤, 토시코는 무언가 불안해 하며 미소짓고 있었다.

신문지에 둘러싸여 바닥에 놓은 아기. ……정육점의 포장지처럼 피투성이의 신문지. ……신문지의 배내옷(깃과 섶을 달지 않은, 갓난아이의 옷.). ……이 이를데 없는 비참함.

그녀의 마음에는 간호부를 향한 증오가 거의 흐르지 않았다. 아기의 비참함이 오히려 유복하게 자란 토시코에게 마치 자신의 비참함처럼 통절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 신문지에 싸인 아기를’ 라며 그녀는 생각했다. ‘목격한 것은 거의 나 혼자였다고 해도 될 것이야. 엄마가 보고 있었을 리 없고, 아기가 자기 자신을 알 리 없으니. 나만이 언제 까지나 기억 속에 그 비참한 탄생의 정경을 보전하지 않으면 안돼. 혹시 그 아기가 자라서, 자신이 태어날 때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듣는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도 괜찮아. 나만 비밀을 누설하지 않으면 되니까. 게다가 나는 좋은 일을 했어. 제대로 플란넬에 감싸서 안락의자에 재운 것이니까’

토시코는 말이 없었다.

나이트 클럽 앞에서 남편은 택시 운전수에게 “牛込(우시고메)”라고 말하고 토시코를 태운 뒤 밖에서 문을 닫았다. 유리창 너머엔 그의 웃고 있는 건강한 치열이 보였다. 자신들의 생활에 어떠한 불안도 없다는 실감이, 시트에 기댄 토시코를 심히 피로하게 하였다. 고개를 돌려 남편을 보았다. 남편은 돌아보지도 않고 자신의 내쉬(미국의 자동차 브랜드)쪽으로 서둘러, 그 멋진 트위드의 등쪽이 가로(街路)의 인파속에 섞여버렸다. 그는 인파 속에서 가만히 서있는 것을 싫어했다.

택시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구 앞의 어둑한 곳에 많은 손님이 북적이는 극장은, 지금 막 닫힌 참으로 이미 간판의 전식(네온·전구 따위를 이용한 장식)을 끄고 있었다. 토시코는 극장 앞에 서있는 몇 그루의 벚나무가 어둠 때문에, 가지가지에 붙인 만개한 조화를, 햐얀 종이조각인 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그 아기는……’

라며 아까의 생각을, 끈질기게 좇았다.

‘자신의 출산의 비밀을 전혀 모른 채 자라더라도 제대로 된 사람이 되지 못할게 틀림없어. 더러워진 신문지 배내옷은, 그 아기의 생애의 상징이 될 것이야. ……이렇게 까지 그 아기에 대한 것이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쩌면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는 불안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몰라. ……앞으로 20살이 되어 그 불행한 아이가, 나의 아들에게 상처라도 주면…’

4월 초의 흐리고 따뜻한 날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했더니 토시코의 옷깃 언저리가 차가워졌다.

‘……그때 내가 대역이 되어주자. 20년 후……43세의 나. ……내가 그 아이에게, 제대로 말해줄 거야. 신문지 배내옷과 내가 바꿔 입힌 플란넬 배내옷 이야기를….’

택시는 공원과 해자(垓字 고쿄(천황의 거처)의 둘레에 판 못)에 둘러싸인 광대한 길을 달렸다. 오른쪽 창문 너머 멀리, 빌딩가의 드문드문한 빛이 보였다.



(고쿄와 해자)


‘……이십년 뒤, 가엽게도 그 비침한 아이는 끔찍히 무서운 처지에 처할 것이야. 희망도 없고, 돈도 없고, 젊은 몸을 망가뜨리며 쥐처럼 살게 되겠지. 그런 식으로 태어난 아이는 다른 길은 없는 거야. 그렇게 아버지를 저주하고 어머니를 증오하고 항상 외톨이일 것이야.’

이런 우울한 생각은 어딘가 그녀의 마음에 든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토시코는 그렇게 까지 미세하게 ‘그’의 미래를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택시는 한조몬(半蔵門)을 지나 영국 대사관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때 근방의 유명한 벚나무의 가로수들이 토시코의 눈에 힘껏 펼쳐졌다.

그녀에게 순간 변덕이 생겨났다. 여기서 혼자 밤의 벚꽃을 보려고 마음 먹었다.

‘택시에서 내려서, 천천히 꽃을 보고 나서 몇 개든 지나가는 택시를 다시 잡으면 돼.’

겁쟁이인 토시코에게 있어서 이것은 대단한 모험이었지만, 여러 불안한 몽상이 폭발하여 얌전히 집에 돌아가는 것을 어떻게든 허락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몸집이 작은 사랑스럽고 젊은 부인은 택시를 내려 혼자서 도로를 건넜다. 도로를 건널 때, 평소라면 동행을 붙잡고 벌벌 떨며 건넜을 터인데 갑자기 이상한 해방감에 덮쳐진 토시코는 수로변의 공원쪽으로 밤의 질주하는 차들을 뚫고 한번에 건넜다.

그 길고 가는 작은 공원은, 치도리가후치(千鳥ヶ淵公園) 라는 곳이었다.



(밤의 치도리가후치 공원)


공원은 만개한 벚나무들로 가득 차 새하얗게 가지로부터 가지까지 이어져 바람 한 점 없는 흐린 밤하늘 아래에서 북적이다 만 채 굳은 것처럼 보였다. 등불은 꺼져 가고 있었다. 그 대신 빨강, 노랑, 초록색 등의 알전구가 나무 아래 여기저기를 뿌옇게 비추고 있었다.

10시가 거의 지났기에 꽃구경을 온 사람들의 모습은 적었다. 발 밑에는 종이 쓰레기가 흩어져, 조용히 사람들이 오고 갈 때 종이가 짓밟히는 소리나 빈 병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문지…..피투성이의 신문지……비참한 탄생……그러한 신세가 혹시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엉망진창이 될 게 틀리 없어. 그 정도로 한 사람의 큰 비밀을 어떤 연고도 없는 내가 앞으로 쭉 가져가지 않으면 안된다니……’

토시코는 이러한 공상으로 평소의 소심함을 잊어버렸다. 오고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조용한 남녀 한 쌍들 이었기에 그녀를 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떤 한 쌍은 꽃을 보지 않고 해자 옆의 벤치에 걸터앉아 해자쪽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해자는 새까맣고 물의 표면은 그림자에 싸여있었다. 해자의 너머에는 고쿄의 숲이 막아서고 있었고 흐린 밤하늘의 경계는 암담히 어떠한 모양도 없었다.

토시코는 천천히 꽃 밑의 어두운 길을 걸었다. 머리 위의 꽃이 무겁게 느껴지는 듯 하였다.

몇 개의 늘어선 돌벤치의 변두리에서 하얀 것이 보였다. 꽃이 떨어져 모인 것도 아니고 돌의 색이 바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검은 그림자가 벤치의 변두리에서 자고 있었다.

‘취해서 자는게 아닌 것은 꼼꼼히 깔려있는 신문지로부터 알 수 있어. 하얗게 보였던 것은 신문지였어’ 라고 토시코는 생각했다.

돌벤치 위에, 겹겹히 오래된 신문지가 깔려있고 그곳에 구부러진 몸을 옆을 향한 갈색의 점퍼를 입은 남자가 자고 있었다. 여기가 봄이 되고 나서부터 그의 숙소였을 것이다.

토시코는 엉겁결에 그 앞에 멈추어 섰다. 신문지에 감싸진 채 자고 있는 남자가, 그 순간 갑자기 그 비참한 배내옷에 감싸져 바닥에 굴려진 아기를 떠올리게 하였는데 이것이 이상하진 않았다.

남자의 빗질되지 않은 더러운 머리칼이, 여기저기 얽혀 있는 것을 토시코는 내려다 보았다. 점퍼의 어깨 부분은 잠의 숨결에 따라 어둠 속에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고 있었다.

토시코는 아까의 동정어린 마음에 길러진 슬픈 공상이 갑자기 형태를 이루는 것처럼 느꼈다. 어둠에 떠오른 남자의 이마는 젊었지만 강한 주름이 새겨져 오랜 빈곤의 흔적을 알 수 있었다. 카키색의 바지를 구부린채 잤는데 그 끝엔 맨발에 구멍 투성이의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토시코는 갑자기 그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얼굴을 두른 팔에 묻힌 자고 있는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남자는 의외로 젊고, 빼어난 눈썹과 아름다운 콧날을 가지고 있었다. 어렴풋이 벌어진 입가에는 풋풋함이 있었다.

토시코가 가까이 다가가자 남자가 깔고 있던 신문지가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남자의 눈이 떠지고, 갑자기 눈이 빛나며 큰 손이 갑자기 토시코의 손목을 붙잡았다.

토시코는 왜인지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그 섬세한 손목을 맡긴 채, 순간적으로

‘이런, 벌써 20년이 지났구나’

라며 토시코는 생각했다. ……

고쿄의 숲은 칠흑같이 고요했다.


-끝-




도쿄에 여행 가면 한 번쯤 밤의 고쿄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