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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수나 공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골키퍼만 바라보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죠." 하고 블로흐는 말했다. "공에서 시선을 돌리는 것은 정말 부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그는 사람들이 공 대신, 양손을 허벅지에 대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가 뒤로 뛰어들어 왔다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자기편 수비수들에게 고함을 지르는 골키퍼를 쳐다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골문을 향해 슈팅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골키퍼를 보게 되죠."
페널티킥은 솔직히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다. 대부분의 책 줄거리 소개에서는 그나마 일용직에서 해고된 블로흐와 초반부에 아주 급작스러워 보이는 한 사건을 소개하게 되지만, 이건 솔직히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이 사건이 작품의 제목처럼 "불안"을 대변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의 근원, 블로흐가 경험하는 '낯섦', 정확히는 '언어의 낯섦'은 실상 한트케가 생각하는 언어관을 그대로 반영한 것에 가깝다. 그것은 마치 언어가 무수한 의미로부터 미끄러진다고 말하던 후기구조주의와 다르지 않은 생각인지 모른다. 그런 언어의 낯섦 사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기껏 꿈이나 농담이 아닌지 한트케는 묻고 있는 듯하다.
작품의 제목인 페널티킥은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과 함께 속절없이 미끄러지는 사람들의 언어를 대변한다. 그것은 축구라는 룰 아래, 공 바깥에 있는 것에 집중하는 순간 못내 우스워지는, 말하자면 '언어의 유희적 우스움'을 비웃는 비유 같기도 하다. 우리가 골키퍼의 불안을 직시할 때 우리는 아주 우스운 꼴을 목격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봤던 아주 재밌는 사실 하나를 첨언하자면 그건 페널티킥 하에서는 키커쪽이 더 불안을 느낀다는 것이다, 만약 한트케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 작품은 더욱 교묘해지는 셈이다.)
그러나 이 감상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건 솔직히 아무것도 아니다. 적어도 만약 다음에 축구를 볼 때엔 골키퍼와 키커가 무한한 미끄러짐을 겪으며 느끼는 불안이 더 잘 와닿지 않을런지.
그러나 그것이 잘 와닿는 건 무슨 의미인가. 그건 그러나 이제나 저제나 우스운 일은 아닐런지.
공과
골대와
키커와
골키퍼
우리의 눈은
경기로부터 단지 하나의 미끄러짐을 안배받는 것은 아닐런지.
판매업자는 더 이상 골키퍼를 바라볼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은연중에 공격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골키퍼를 쳐다보려면 사팔눈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말하자면, 누군가가 문을 향해 가고 있을 때, 가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문 손잡이를 보는 격이기 때문이다. 골치가 아파서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습관이 되어 있지만, 그러나 우스운 일이지요."
솔직한 감상: 뭘 말하려고 싶었는지는 알겠는데 읽는데 집중되는 사건이 없으니까 넘 힘들었음 차라리 와바바박 모던하게 써다오... 뭔가 차근차근 이것저것 있긴 한데 실상은 아무것도 없으니 집중이 될 수가 없음
깊이 있는 감상문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내용은 내용인데, 거 씨발 폰트좀 바꾸쇼
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