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일찍 죽는다면”


만약 내가 일찍 죽는다면,


책 한 권 출판되지 못하고,


내 시구들이 인쇄된 모양이 어떤 건지 보지도 못한다면,


내 사정을 염려하려는 이들에게 부탁한다,


염려 말라고.


그런 일이 생겼다면, 그게 맞는 거다.



나의 시가 출판되지 못하더라도,


그것들이 아름답다면, 아름다움은 거기 있으리.


하지만, 아름다우면서 인쇄되지 못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뿌리들이야 땅 밑에 있을 수 있어도


꽃들은 공기 중에서 그리고 눈앞에서 피는 거니까.


필연적으로 그래야만 한다. 아무것도 그걸 막을 수 없다.



만약 내가 너무 일찍 죽는다면, 이 얘기를 들어 다오.


나는 그저 노닐던 어린아이일 뿐이었다고.


나는 태양과 물처럼 이교도라서,


인간들만 못 가진 보편적인 종교를 가졌다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기에 행복했고,


아무것도 찾으려 애쓰지 않았고,


설명이라는 말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


이상의 설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나는 해나 비 아래 있는 것 외에는 바란 게 없었다 —


해가 있을 때는 해를


비가 올 때는 비를 바라고,


(다른 것들은 전혀)


더위와 추위와 바람을 느끼길,


그리고 더 멀리 가지 않기를.



나도 한 번은 사랑을 했지, 날 사랑하리라고도 생각했지,


그러나 사랑받지는 못했지.


꼭 받아야만 하는 법은 없다는


유일한 큰 이유 때문에 사랑받지 못했지.



나는 해와 비에게로 돌아와 나를 위로했어,


집 문간에 다시 앉아서.


초원도, 결국, 사랑받는 이들한테는 그렇게 초록이 아니더라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한테만큼은.


느낀다는 것은 산만하다는 것.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8937475245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 페르난두 페소아 | 민음사- 교보ebook?수많은 저자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차이가 자리를 잡으면, 감정의 객관화라는 목적도 실현될 수 있다."─ 김한민, 「작품에 관하여: 시인,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에서● 변방의 포르투갈 문학을 유럽 모더니즘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거장 시인“우리 모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다시 말해, 진정한 우리 자신이 되었다.” ─ 페르난두 페소아『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에는 페소아의 대표 이명 삼인방 중 두 명, 알베르투 카에이루와 리카르두 레이스의 대표작과 페르난두 페소아가 본명으로 생전 출간했던 단 한 권의 시집, 『메시지』의 일부를 수록하였다.알베르투 카에이루는 포르투갈 리스본 출생으로, 시골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낸 목가적인 전원 시인이다. 그는 다른 모든 이명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중심 인물로, 페소아는 그를 “내 안에서 태어난 내 스승”이라고 표현하였다. 형이상학적 해석에 대한 경계,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순수한 직관 등을 중시하였다. 그의 대표작 「양 떼를 지키는 사람」에는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연의 견자(見者)”가 등장한다. 하지만 눈을 뜨고 태양을 보면,이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왜냐하면 햇빛은 그 어떤 철학자나 시인의생각보다 더 가치 있기에.햇빛은 자기가 뭘 하는지 모르고그렇기에 틀리는 법이 없고 흔하며 좋은 것.― 「양 떼를 지키는 사람」,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에서리카르두 레이스는 ‘포르투갈어로 시를 쓰는 호라티우스’라고 불리는 우아한 고전주의자로, 경구를 연상시키는 문체를 구사하였으며 정형시를 많이 남겼다. 외과의사를 직업으로 가진 그는, 다른 이명 카에이루를 스승으로 존경하였으나 또 다른 이명인 캄푸스에 대해서는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의 시에서는 에피쿠로스학파의 현재의 만족을 추구하는 이상과 스토아학파의 완전한 자주성의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사포,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 문학 및 철학서를 번역하기도 했다.에피쿠로스를 사랑하지만, 그의 가르침보다는 우리 식대로그를 더 잘 이해하는 나의 형제들아, 이 차분한 두 체스 기사들의이야기 속에서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배우자.진지한 것들은 전부 우리와 별 상관이 없게, 심각한 것은 무겁지 않게.본능들의 자연스러운 충동이, 포르투갈 문학을 유럽 모더니즘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거장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 세계를 엿보다!수많은 이름으로 썼던 포르투갈의 천재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대표 시선집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대표 산문집 《불안의 책》으로 국내에서도 이제 그 이름이 낯설지 않은 페소아는 평생 장르 불문하고 왕성하고 폭넓게 글을 썼지만, 본인 스스로 시인으로 여겼다. 일곱 살 때 처음 시를 쓴 이후 죽기 직전까지 평생 시를 쓰는 일을 멈춰 본 적이 없다. 국내에서는 1994년 그의 이명 중 하나인 알베르투 카에이루의 시집이 《양 치는 목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이래, 페소아의 시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대표 시들을 원전 번역으로 소개하는 이번 시선집에는 국내 최초로 정식 소개되는 페소아 본명 및 그의 이명들의 시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명(異名)은 페소아의 문학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그의 이명은 적게는 70여 개에서 많게는 12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명으로 창작 활동을 한 작가는 많지만, 페소아처럼 각 이명마다 독자적 스타일과 개성을 가진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서 여러 개의 정체성을 창조하고 또 그들 간의 상호관계를 설정하여 ‘이명 놀이’를 발전시킨 사례는 없었다. 이번 시선집에는 페소아의 가장 대표적인 이명 삼인방 알베르투 카에이루, 리카르두 레이스, 알바루 드 캄푸스의 대표작을 엄선하였다. 또 페르난두 페소아가 자신의 본명으로 살아생전 유일하게 출간했던 시집 《메시지》의 일부를 함께 수록하여, 두 권의 시집만으로 시인 페소아의 총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ebook-product.kyobob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