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슐라르의 베르그송 공격은 과학철학과 미학을 가리지 않더라. 감각소여 비판이나 합리성에 대한 제고 촉구와 같은 학문적인 견해 차와는 별개로 불만이 좀 쌓였던 모양. 20세기 초 프랑스 철학계는 강단의 신칸트주의, 대중의 베르그송주의가 주류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시대적인 맥락에서 쌓인 염증인가 싶기도.
-바슐라르의 명료한 사고와 납득이 갈 수 밖에 없는 통찰과는 별개로 세르가 선보이는 혼합적이고 다변적인 시각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낌. 주저인 『헤르메스』나 『기식자』를 접하진 못해서 모든 논의를 숙지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세르가 철학적인 공명을 거듭 밝힌 들뢰즈에 익숙해서인지 흐름 자체는 얼추 따라갈만 했음. 대담집이라는 형식도 형식이거니와, 대담 상대자인 라투르가 적절히 겐세이와 유머를 던져서 나름 쉬이 읽힘.
-아감벤의 『유아기와 역사』의 1장과 3장은 올해 읽은 가장 재미있는 텍스트였음. 두 장 모두 아감벤 본인의 견해를 적극 피력하기 보다는, 특정한 맥락을 통해 철학사를 문헌학과 계보학의 방법을 통해 재해석하며 독자를 유도하는 방식. 지난 달에 읽은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도 그렇고 아감벤의 스타일에 조금씩 맛들리는 중. 4장의 벤야민 해석도 매력적이었지만, 아도르노(+헤겔)를 너무 도식적으로 사용한 건 아닐까 하는 약간의 의구심이 일었음.
-말년의 리오타르는 기술발전과 효율성을 양분 삼아 자라는 비인간주의에 불안과 염려를 표함. 100쪽도 안되는 해설서라 어쩔 수 없었을거라 생각되지만, 논의 자체는 후설, 베르그송, 화이트헤드 등의 과학주의 비판이나 하버마스의 목적 합리성 비판을 답습하는 것 같아서 큰 감흥은 없었음. 되려 저자가 대안적 흐름으로 소개하는 도나 해러웨이와 셰이디 플랜트의 급진적인 발상이 좀 더 흥미로워 보였을 지경. 다만 당장은 리오타르의 다른 저서들을 먼저 읽어볼 생각임. 리오타르가 비인간 논의를 매듭지으며 제기하는 신체성에 대한 호소와 논쟁/갈등에 대한 보존 요청이 각각 초기와 중기의 그것을 되짚는 모습처럼 보여서 이 부분들을 직접 읽어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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