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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깐 김에 옛날에 읽은 책들도 전부 앱에 등록하려고, 기록용 비공개 블로그에 쓴 감상과 일기를 뒤지다 찾아낸 10년 전의 글이다
평소에 독갤에 올리던 감상과 달리, 애초에 비공개할 생각으로 쓴 글이라 많이 날카롭다
어쨌든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충격이 되살아나 소개하고 싶어서 복붙해 올린다
예전에 가라타니 고진에 대해 쓴 글에 등장했던 '재난 유토피아'란 개념을 설명한 책이다
읽기 전에는 그냥 학자가 쓴 글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은 활동가였다. 책의 내용과 분위기 또한 작자의 성향이 반영되어 현장감이 대단하다. 엄청난 수의 사례와 인터뷰가, 살아 움직이는 인간 공동체와 그들이 맞닥뜨린 재난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첫인상 겸 개요는 그렇고,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충격은 프리츠의 보고서에 있는 내용으로 '일상이 또한 또 다른 형태의 재난'이라는 것이었다.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다. 프리츠나 저자 레베카 솔닛, 그 외 여러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재난 상황에는 기존 인식과는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발벗고 나서서 서로를 도와준다고 한다. 일상이라는 재난 상황때문에 보통때는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상과 다른 재난이 벌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돕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평소에 '비상 사태가 일어나면 도망치겠다'라는 생각으로 일하던 경비 업체 직원들도 막상 9/11 사태가 벌어지자 모두 대피를 도왔다(내가 있던 군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도망치겠다는 얘기를 했다). 피해자와 외부에서 온 자원자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진한 소속감을 맛본다. 처음의 충격과는 달리 의외로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충격은 9/11 부분 그 자체다. 9/11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내가 봤던 상황이라 그런지 더욱 더 실감이 났다. 이 부분에선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나가던 모르는 사람들을 도와주었다는 미담들이다. 나는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같은 생각도 들고,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 상당히 감정이입되어서 눈물도 찔끔 났다.
카트리나 사례에서 알게 된 끔찍한 학살들도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당시 미국 당국의 대처를 보니 작금의 한국이 겹쳐보이기도 하고. 9/11이나 카트리나 둘 다 한두번 티비로 보기만 하고 이런 자세한 얘기는 처음 접하는거라 정말 놀랬다.
재난 상황에 생존을 위해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공동체들은 어찌 보면 원시 사회의 상호 부조 시스템을 되새기는 것. 기존 체제가 무너지고 텅 빈 공간을 채워넣는 이타심. '피해자들의 생존'이 아니라 '체제 복구'에만 열을 올리는 권력과 엘리트들. 여러모로 가라타니 고진이 좋아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런 주제를 좋아하고.
시스템에 대한 불신. 아나키스트들...
이 책에서도 여러 번 언급하듯이, 믿음이 중요하다. 이 책은 전혀 '나이브'하지 않다. 서로를 믿지 못 하는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극한 상황에서 개인의 타락에만 집중하던 할리우드 영화나 기존 인식들에 반해, 개인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권력 체계 자체와 권력에 속한 개인들의 타락이 더 손쉽게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또한 그들은 타락이 없었던 것처럼 굴기도 한다). 이런걸 '나이브'하다고 말하는 놈들이 더 나이브하다.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도 못 믿는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간들. 그런 인간들이 설사 갈기듯이 혐오주의나 뿌리고 다니는거 아니겠는가
어쨌든, 그런 사실을 어려운 용어를 거의 쓰지 않고 현실적인 단어와 폭넓은 인터뷰, 사례들을 통해 적절하게 잘 나타냈다.
결국 유토피아란 멈춰진 상태가 아니라 계속 변화하고 적응하는 상태, 즉 현재에 있다. 재난 유토피아라는 단어가 성립되는 이유도 그것이다.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적응해야 하는, 비일상적인 현실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트랜스크리틱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 저 곳을 생각하고, 저 곳에서 이 곳을 보는. 그렌라간도 생각나고.(*10년 후 주 : 그렌라간이 어떻게 생각난 건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힌다)
PS. '이기적인 개인들', 파편화된 사회에 대한 얘기를 볼 때마다 여기 한국을 떠올렸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는 이미 알지만, 그 실천은 너무나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당연히(위에도 썼듯이) 서로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 사실 후자보다 전자가 훨씬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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