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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이것은 나와 퍽 가까이 지내던 한 친우의 소설 형식으로 된 수기(手記)다.

수기 첫 문장:

그해 가을도 깊었을 때, 나는 마침내 하향(下鄕)해버리기로 결심했다.

마지막 문장:

이 수기의 처음에 나오는 오영빈이라는 친구나 찾아보고 그가 아직 살아 있다면 태초의 인간임을 자부하면서 술이나 들고 싶다.

수기 마지막 문장:

아슴한 눈발 속에서 염전 벌판은 한없이 넓어져가고 있는 듯했고 나는 아무래도 그 벌판을 건너가지 못하고 말 것 같았다.

  • 형광등 불빛이 조금만 더 엷었던들 달빛이 밀려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대합실에서 영빈은 쓸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차표를 입에 물고 개찰구를 나설 때, 뜻밖에도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살아봐." 라는 말을 외치듯 내게 해버린 것이었다.


금방 나는, 영빈의 빙글거리는 얼굴과 너무나 천진한 선애의 그 자세 때문에 문득 저 `운명'이라는 단어 - 단어에도 빛깔이 있다면 아마 피와 흙이 범벅이 됐을 때 생기기나 할 어두운 색을 하고 있을 그런 단어가 생각났고 그래서 방향 없는 반발이 무럭무럭 솟아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절 찾으세요?" 하며 곰팡이 냄새라도 날 듯이 컴컴한 방에서 이불을 펴고 낮잠을 자다가 부시시 깨어 나오는 향자라는 여자는 부석부석하고 누런 얼굴에 목덜미가 때가 낀 듯이 시커먼 서른이 가까운 여자였는데, 용모와는 다르게 목소리만은 앙칼졌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나는 고개를 숙이고 햇빛이 눈부시게 쨍쨍 비치는 땅바닥에 내가 들고 서 있는 아카시아 잎이 연초록색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만 보고 있다가 선생님이 나가시자, 저 귀여운 토끼들은 부드러운 아카시아잎이나 먹고 새빨간 눈알로 푸른 하늘이나 바라보고 때때로 사랑이나 하고 살면 그만인데 난 난 주먹을 쥐고 싸움을 해야 하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토끼울의 나무 칸살에 이마를 대고 소리를 죽여 울어버렸었다.


토끼와 축구를 한꺼번에 마스터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래야 한다고 사람들은 내게 요구해오는 것이었다.


존경할 줄 모른다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남은 것은 환상뿐이었다.


서울에서 내 행동의 일체가 악이었다면 그러면 고향에서는 그와 정반대로의 행동을 하고 살면 선이 될 것인가? 그러나 정반대의 행동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그러기 전에 내가 과연 서울에서의 나의 행동 일체를 부정하고 나설 수 있을까?


세상이 당연하다고 내미는 것을 나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이도록. 평범한 것을 흡족하게 생각하며 받아들이도록. `여보게, 딴생각 말고 착실히 공부해서 좋은 데 취직하여 착한 여자 얻어서 아들 딸 낳고......' `네, 저도 그럴 작정입니다' 라고 대답하도록. `분수에 넘치도록 욕심이 많은 사람이 자살하는 법이야. 욕심을 줄이면 되지 않나?' `선생님, 참 그렇군요' 라고 생각하도록. `팔십이 다 되어가는 내가 끄떡없이 사는데 귓바퀴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괴롭네 어쩌네 앓는 소리를 하다니......' `할아버지, 존경하겠습니다.'


젊은이 특유의 대화체라고 생각해도 무관할 것이다. 뭐 우리네의 대화란 태반이 하지 않아도 좋을 것들이니까.


그래도 우울한 날엔 그래도 우울한 날엔......


윤수의 죽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설픈 미덕이었다. 아무런 보상 없는 세상에서 윤수의 죽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의미한 것이었다. 윤수가 그것을 몰랐을 리 없는데, 아아, 미친놈이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우리가 건너온 염전 벌판을 바라보았다. 아슴한 눈발 속에서 염전 벌판은 한없이 넓어져가고 있는 듯했고 나는 아무래도 그 벌판을 건너가지 못하고 말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말하고 싶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내야 한다는 문제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더구나 그를 자살로 이끈 고뇌라는 게 그처럼 횡설수설하고 유치한 것이라면 아예 세상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리라. 그는 마지막에 가서 엉뚱하게도 죄와 벌에 관한 얘기를 잠깐 꺼내고 있지만 죄란 게 있다고 한들 또 어떠한가? 불가피하게 죄를 짓게 되면 짓는 것이다. 그러나 죄의 기준이란 게 없어진 지금, 죄의 기준을 비단 죄뿐만 아니라 모든 것의 기준을 일부러 높여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분명히 환상적인 기준을 만들어두고 거기에 자기를 맞추려고 애썼던 모양인데 참 바보 같은 놈이었다. 그가 고통하며 지낸 밤이 길었다면 내가 고통하며 지냈던 밤은 더욱 길었으리라. 산다는 것, 우선 살아내야 한다는 것. 과연 그것이 미덕이라고까지는 얘기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야 출발하는 것이다. 죽음, 그 엄청난 허망 속으로 어떻게 하면 자기를 내던질 생각이 조금이라도 난단 말인가! 나의 건강이 회복되면 그때는 나도 죄의 기준이란 것을 좀 올려볼 생각이지만 뭐 꼭 그럴 필요도 없으리라고 믿는다. 이 수기의 처음에 나오는 오영빈이라는 친구나 찾아보고 그가 아직 살아 있다면 태초의 인간임을 자부하면서 술이나 들고 싶다.


너무 조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