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은 정부군의 결정적 승리의 날이었다. 코뮌군의 지휘관들은 이제 거의 다 사라지고 없었다. 이날 늙은 자코뱅파 들레클뤼즈는 이 바리케이드에서 저 바리케이드로 종일 뛰었지만 코뮌군의 전멸은 이제 시간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는 자기 여동생에게 보내는 최후의 편지를 썼다.
아듀. 아듀.
오후 7시가 되기 조금 전 들레클뤼즈는 2월 혁명때의 긴 모자를 쓰고 깨끗이 닦은 장화를 신고 검은 바지와 프록코트를 신고 허리에는 붉은 띠를 매고, 지팡이에 무거운 몸을 의지하고 천천히 볼테르 광장을 지나 이미 코뮌군이 철수해버린 바리케이트 위로 간신히 올라갔다. 그의 모습이 저녁 햇빛에 선명히 나타나는 순간 얼굴이 아래로 떨어졌다. 뒤편에서 그의 최후를 지켜보던 약 50명의 부하들 중 네 명이 그의 시체를 찾으려고 돌진하다가 세 명도 함께 죽었다.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 中
샤를 들레클뤼즈
20여년 전 혁명때 입었던, 소년 혁명가 시절의 옷을 챙겨입고 혁명의 실패와 자신의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노장 혁명가라는게 낭만 미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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