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동안 병원을 들락나락 거리느라 다섯 권 밖에 못 읽었다. 처음 한 페이지만 펼치면 쉽게 집중하는데... 독서를 시작하는 게 쉽지가 않다. 건강이 보약이라는 말처럼, 독서에도 건강이 필요한가 보다. 몸이 아프니까 책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마이구미 & 겨울특집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구매한 독립출판 소설이다. 독립출판은 대형 출판사에서 출판하지 않는 책을 만든다는 허울좋은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참혹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명한 출판사에서 내지않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필력이 충분하다면 문학동네 같은 출판사에서 왜 단편집을 내지 못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글이 수준 미달이기 때문이다. 이런 소설로는 깐깐한 편집자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다. 단편 대부분은 독자가 굳이 이 글을 찾아서 읽어야할 매력이 없거나 적었고, 건질만한 문장들도 간혹 있었지만 약점이 뚜렷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문장만 매끄럽고 이야기는 엉망이다. 화장을 두텁게 쌓은 사람의 민낯을 보는 느낌이었다. 분을 벗겨내면 거무튀튀한 피부만 있는, 결함있는 서사를 애써 가리려는 분투. 작가들도 자신의 글이 완전치 못하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독자가 그것을 이해해주기는 어렵다. 무명 작가들에게 혹평을 할 수 밖에 없는 게 안타깝지만, 개인적으로는 강한 표현이 나올만한 작품들이었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2024년 국문학 하반기의 최고의 성과다. 글이 너무 영(young)하지 않나 싶지만, 달리 말하면 시대를 잘 반영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30대 후반의 다소 늙은 작가에게서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젊은 작가에게 '젊은' 스타일의 글을 찾아볼 수 없다는 현실은 한국 문단이 경직되어 있다는 게 아닐까. 주제넘은 말일 수도 있지만, 작가들이 보다 자유로운 글쓰기를 했으면 좋겠다.


소망 없는 불행

노벨문학상 수상자 페터 한트케의 에세이다. 소설가의 에세이는 어딘가 픽션스러운 부분이 있다. 어머니의 죽음을 재구성하는 시도가 그렇다. 작가는 그녀의 탄생부터 수면제 과도복용으로 자살한 현재까지 어머니의 역사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 과정에서 한트케의 의도가 개입된다. 나치에게 점령된 오스트리아를 좋은 시절로 회상하고, 어머니의 내면을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묘사하고. 아들로서 어머니를 오랫동안 관찰한 결과니 어느정도는 사실이겠지만 정보를 제외한 나머지는 자신의 추측임이 파악 가능하다. 번역가는 <소망 없는 불행>이 한트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전위적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에세이가 왜 희곡과 소설을 쓰는 픽션 작가의 대표작인지 의아했지만 책을 끝까지 읽자 이해됐다. 어머니를 매개채로 한트케의 생각과 삶을 녹여내는 작품은 높은 평가를 받기 충분했다.


캐러멜 팝콘

일본에서 페이지 터너를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겠다. 비슷한 단어가 있을지, 아니면 가타카나로 음차해서 쓰는지. 하여간 '페이지 터너'라는 칭호를 듣기에 충분하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은 대표작 퍼레이드와 비슷했다. 네 주인공이 번갈아 등장하고 그 중 한 명은 불륜 때문에 괴로워한다. 다른 한 명은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한다. 다른 두 명도 각자 다른 이유로 괴롭다. 문체는 간결한 반면 인물들의 배경은 다소 어둡다. 이렇게 요시다 슈이치의 글은 걸핏 가벼우면서도 무게감을 잃지 않는다. 사놓고 읽지않은 작품이 두 권 남았는데 서둘러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