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처녀작을 검색하다가
홀연히 떠있는 전자도서 한 권을 발견했다
AI로 뭉뚱그린 것 같은 그림에 번역가 정보도 없고 출판사를 검색해보면 어떠한 정보도 뜨지 않는다
궁금한 건 참을 수 없다
의외로 파일은 멀쩡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 같아 한 번 다운받아보기로 했다
상당히 기괴한 표지... 어쩌면 그 시대에도 AI 그림이란 게 있었을까...?
라이선스는 이렇다. 사실 라이선스라고 할 것도 없지만.
날짜로 보아 무려 20년전에 제작되어 공급된 전자책임을 알 수 있다.
아마 추측컨대 세상에 이북이란 게 막 생겨났을 시절 낱알처럼 흩뿌려지던 양산형 전자책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출판사도 공급처도 일찍이 망해 텍스트 파일만 홀연히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일 터고...
내용은 의외로 멀쩡한 게 함정이다. 번역이 괴상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못 알아볼 정도로 만듦새가 없지 않다.
어투가 상당히 예스러운 걸로 보아 오래전의 번역을 그대로 가져다 쓴 듯하지만, 역자에 대한 일말의 정보 표기도 없기에 그 이상의 추측은 불가능하다.
누락도 없는 것 같고 흥미가 돋아진 김에 책은 이 판본으로 마저 읽기로 하고.
이후 이것저것 검색해보니 괴츠 폰 베를리힝겐 외에도 많은 전자책들이 존재했다.
지금도 왕왕 존재하는 저가형 이북 세계문집의 아주 초기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토피아... 바로북... 공급처로 보아하니 이 책들은 먼젓번의 전자책 시대에 버려진 산물인 것 같았다.
그 시절 이북이란 게 처음 있고 나서 수많은 플랫폼이 생겨났다가 이내 망했다고 한다.
회사들은 지금의 저가형 출판사처럼 저작권을 대량으로 사들여 이곳저곳에 공급했고,
그 모든 플랫폼들이 깡그리 망하고 난 뒤에 이처럼 파일들만 망령처럼 남아 각지의 도서관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부여된 저작권이나 라이센스는 지금쯤 공중분해 되지 않았을까.
보르헤스의 말처럼 세상에 모든 책이 모든 이의 독서를 통해 태어날 수 있다면 이들에게 더이상의 생은 없을지 모른다.
다만 이북 시대의 낭만만 어설프게 얹은 채 편히 쉬고 있겠지...
로스트미디어 같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