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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아 옮김(Richard Curt Kraus 저)
문화대혁명(The Cultural Revolution)
교유당, 2024(Oxford University Press, 2012)
친마오적 관점에서 문화대혁명 나아가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을 살펴본 책입니다. 한양대 사학과 교수인 역자 역시 이 책이 신좌파적 입장을 명백히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원서는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의 Very Short Introductions 시리즈라 내용이 매우 풍부하고 상세하지는 않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다른 책을 찾아보시는 게 좋습니다. 입문용으로 간략하게 살펴보거나 신좌파적 입장에서 본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이 궁금하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Very Short Introductions 시리즈는 현재 교유당에서 교유서가 첫 단추 시리즈로 번역 출간중입니다.
저자는 문화대혁명을 단순히 대폭력의 시대로만 바라 보아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마오쩌둥을 미치광이 폭군으로 보아서도 안되고, 그의 통치 시기를 경제적으로 완전히 파탄났으며 처절히 실패한 시대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자는 마오쩌둥 시대를 덩샤오핑 이후의 개혁개방 시기와 완전히 단절되는 것으로 평가해서도 안된다고 평가합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마오쩌둥 시기에 중국 경제는 괜찮은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고 심지어 문혁 10년간의 평균 성장 속도도 준수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문맹률과 평균 수명 등을 개선했으며 외채가 없는 나라를 덩샤오핑에게 물려주어 그가 개혁개방을 진행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해석이 이 책만의 독특한 견해는 아닙니다. 오히려 신좌파적 입장에서 본 전형적인 중국 현대사 해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절판이 된, 이제는 거의 고전이 되어버린 모리스 마이스너의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에서 보여준 해석과도 거의 같습니다.
하지만 친좌파적, 친마오적 관점이라는 것이 곧 친중국공산당적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덩샤오핑 이후 중국공산당은 개혁개방의 시점을 1978년이라고 이야기 해왔습니다. 역사의 위대한 전환점이라는 다소 낯뜨거운 단어까지 사용하면서요. 그러면서 덩샤오핑 이후 시대를 희망찬 장밋빛 시대로 묘사하면서 반대로 그 이전의 마오쩌둥과 화궈펑 시대는 회색 잿빛 시대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해석에 반대합니다. 오히려 개혁개방의 시점, 전환점은 덩샤오핑이 실권을 장악한 1978년이 아니라 1971년이라는 것입니다. 1971년을 개혁개방의 기점으로 삼는 것은 같은 역자가 번역한 『중국공산당, 그 100년』(이사카와 요시히로 저)의 해석과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이시카와 요시히로가 1971년 무렵 중국의 계획경제가 이름만 남고 인민을 보살피지 못해, 굶어죽지 않기 위해 노력하던 사람들이 자구책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것이 개혁개방의 씨앗이 되었다며 마오쩌둥 시대를 부정적으로 바라 본다면, 이 책의 저자는 마오쩌둥에게 좀 더 따뜻한 시각으로 1971년을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합니다.
마오쩌둥이 주기적으로 대중 운동을 동원해서 간부(관료)들을 타격함으로써 계획관료들이 성장하지 못했고 이것이 개혁개방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한 요인이었다는 평가는 첸리췬이나 모리 가즈코의 견해와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종종 오류가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은 이러한 재앙을 뒤늦게 인지했다. 1959년 봄 마오쩌둥은 대약진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혁명운동 시절 공산당 지하조직의 베테랑 지도자였던 류사오치(劉少奇, 1898~1969)에게 국가주석직을 넘겨주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 제1장
이러한 서술은 마오쩌둥이 대약진의 책임을 지고 국가주석에서 물러났다는 인상을 줍니다. 의외로 많은 중국 현대사 책에서 나오는 오류인데 시간 순서상 오류입니다.
또한, 마오쩌둥 선집 5권에 대해서 1949년부터 1976년 사이에 발표한 마오의 글을 엮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마오쩌둥 선집 5권은 1949년부터 1957년 사이의 글을 엮은 것이므로 이 부분도 오류입니다.
VSI 시리즈 퀄 좋고 분야도 다양한데 아주 일부밖에 번역 안 돼 있어서 아쉬움…
그래도 조금이나마 번역이 되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관심 있으면 마오주의도 읽어보고 리뷰 써줭
일단 위시리스트에 두긴 했는데 안그래도 지금 읽어야 할 책이 쌓여서 언제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진짜 읽어보고 싶게 잘 쓰셨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신좌파가 외국 학자들이 중국 학자들 공개 어록, 주장들에 미루어 분류를 한 것인지 아님 해당 중국학자들도 스스로 자길 신좌파라 부르는지요?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475204.html#cb
5000만 인민이 중화수육이 되는 찐빠가 있었지만 경제 성장 했으니 좋았으!!!!!!!! - dc App
그래서 그런 부분을 지적하는 견해도 적지 않습니다. 본문 같이 마냥 좋았다는 식으로 평가하는 건 주류 견해가 아니긴 합니다.
그런데 확실히 인민의 생존을 위해 시장경제가 받아들여졌다는건 좀 흥미롭네 만일 북한도 장마당이 형성된 이후 개방정책을 펼쳤으면 꽤나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졌을거 같음 물론 이젠 전부 말짱꽝이지만 - dc App
경제성장을 위해 시장경제를 받아들였다는건 덩샤오핑 주장을 받아들인것이고, 실제로는 개혁 이후 노동대중과 자본가의 괴리만 만들어졌을 뿐 부유해지지는 않았음.
북한이 개방정책을 펼치더라도 마찬가지로 당의 경제 지배력만 악화되고 좋은 결과를 낳을 순 없을거임. 북한과 쿠바가 전세계적 고립에 놓여있는 상황에서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계획 경제 체제를 올바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임.
인민의 생존을 위해 시장경제를 받아들였다는 건 이 책의 주장은 아니고 다른 책의 견해입니다. 그런 견해가 독특한 견해라기보다는 대체로 받아들여지는 주류적 해석, 견해 쪽에 가까워요. 이런 류의 견해들은 마오 시대의 경제 실패 -> 인민들의 각자도생 -> 개혁개방으로 이어짐이라는 흐름으로 본다면 이 책의 저자는 그보다는 마오쩌둥이 덩샤오핑에게 남긴 '긍정적' 유산들에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덩샤오핑 시대의 개혁개방은 덩샤오핑이 처음부터 설계도를 갖고 하향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누구도 큰 그림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밑에서 이것 저것 해보려는 시도가 있었고 덩샤오핑이 이런 시도들을 존중해주면서 점차 개혁개방으로 나아갔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내 생각엔 그닥 상향식이지도 않았음. 당 내 주자파가 권력을 지배하고 개혁 개방의 조건을 성취하기 전까지 마오쩌둥과 4인방은 물론이고 모든 문화대혁명 지지 세력에 대한 탄압이 있었고, 그게 없었다면 주자파가 승리할 수도 없었음. 이는 상향식으로 협의된 개혁이 아니였다는 말임.
왕훙원, 야오웬위안, 장춘차오는 1976년 10월 7일 마오쩌둥 선집 제5권 초안 토의를 구실로 회의에 초대받았다가 현장에서 갑작스럽게 체포됐고, 장칭 역시 그 뒤를 따름. 중앙에 뒤이어 지방도, 예로 들면 허난 성과 같은 경우 당 위원회 상임위원회 전체 위원 14명 중 10명이 당국으로부터 하향식 수사를 받은 후 형에 처해졌고, 그 당시 제1비서 직책을 맡고 있던 전체 118명 중 97명이 체포되었음. 허난 성에서만 4,248명의 당, 정 기관 간부들이 체포됐고, 이전에 당 위원회와 혁명위원회에서 핵심 요직을 맡았던 간부 33명 중 67%에 해당되는 23명도 불법적으로 검거되어 수감되었음. 주자파가 권력을 확고하게 움켜쥔 1978년 이후에도 이러한 양상은 지속됐는데, 1980년 1월 1일에 허난 성 정부가
공개재판을 거치지 않고 당 간부 2,400명에게 비밀리에 형량을 구형했다는 사실에서 여지없이 드러남. 그리고 체포된 조반파 간부들의 빈 자리를 주자파들과 보황파 세력이 채웠음. 1979년부터 1982년까지 중국 공산당은 덩샤오핑의 주도 하에서 일련의 조직 개편을 거쳤는데, 공식 통계에 따르면 13만 명이 출당됐고, 40만 명에게 영향을 끼친 조치였음. 이 때 주 타깃이 됐던 것은 문화대혁명에 참여했던 마오 지지 세력이었음. 그리고 조반파를 축출하는 과정에서 주자파와 온건파들이 각 지역에서 무력을 동원하기도 했다는 사실에 미뤄볼 때, 평화적인 숙의와 합의를 통해 상향식으로 시장경제가 채택됐다는 그림은 결코 나올 수 없음.
냉동인간 같으시네요.
마오가 문혁 그리고 알려진 말년의 사생활을 접어 두고라도 저평가가 된 인물이라 짐작해왔는데 신기하네요 1) 일본, 프랑스, 소련 유학 등 저우언라이가 초장부터 아무에게나 리더를 양보한다는게 말이 안됨 2) 저우언라이가 프랑스 유학 시절 이미 진가를 알아본 동생, 또 다른 인재가 덩샤오핑 3) 에드가 스노 부부 등 당시 중국 관련 특종 기사, 베스트 셀러로
벼락 출세 노리던 서방 지식인들을 적극적으로 선전 선동 도구로 활용할 정도 지략가가 마오였음, 그냥 가방끈 짧은데 북경대 사서 알바로 책 좀 읽은 정도라고 하기엔 그보다 한참 더 엘리트 길 걸은 이들과 지략을 논할 정도란 얘기, 미중 수교 과정 키신저 회고 등 봐도 마오가 식물인간 상태가 아닌 담에야 저우언라이와 호흡이 잘 맞았음을 알수 있어보임요
사실 저우가 처음부터 초장부터 마오한테 기었던건 아니고 오히려 초반에는 마오를 까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나중에 처절한 자아비판을 해야 했지만..
말년의 사생활이라 하는건 마오가 씻지 않는다, 여색이 심하다 이런 소문을 말하는 것 같은데 이런 식의 사생활 썰은 스탈린, 김일성 등에게도 엄청나게 많이 퍼져있는 것이고 대게 악의적인 거짓 선동이지 객관적으로 사실이 아닌 경우가 대다수임.
마오 사생활 중에 하나 확실한건 마지막 마누라가 아주 쌍년이라는거 아닌가 - dc App
저우언라이가 마오 열혈 팬이었단 얘긴 아니고 그래도 당대 최고 지성인 눈 높이에서 아주 황당한 이에게 양보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것 정도, 당연히 둘 사이에도 이견이 있었을 것이나 중국이라는 자동차를 김여사에게 차 키 준 그런 것은 아닌 듯 보이고 말년의 마오와 그 전에 마오는 구분해서 봐야 하지 않나 싶더군요, 저우언라이가 정도 인물의 안목이라면
마오쩌중에게 부정적인 학자는 “1949년 이후 마오가 잘한 짓이라고는 자기 자신이 죽은거 말곤 없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마오쩌둥의 집권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대혁명에 관해서 인터넷상에서는 일종의 밈으로 자라잡은 상황에서 더더욱 저런 책을 일독해야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을 보니까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모리스 마이스너)와 비슷한 논조일거 같네여
균형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균형을 위한 균형이 되어 겉으로는 균형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한쪽에 편향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죠. 지나친 복고적 수정주의적 역사 해석은 왜 현재의 주류적 견해가 학술적 논쟁을 거쳐 그런 위치에 올라가게 되었는가를 무시하는 위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