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우리는 마지막 혁명이오.
우리는 마지막 이성이오.
우리는 마지막 논리이며,
우리는 마지막 제국이오!
한 줄 요약
그러나 마지막 숫자는 없다.
자먀찐의 우리들이다. 3대 디스토피아 소설 중 하나인데 인지도로 따지면 사실 2대 디스토피아 소설과 그 기원인 우리들로 취급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그정도로 1984와 멋진 신세계들에 비하면 인식이 상당히 낮다. 그리고 실제로 읽어보니 인지도가 낮은 데엔 다 이유가 있더라... 하지만 그럼에도 읽을 가치는 충분한 소설이고, 재미 역시 상당한 소설이다. 저평가할 만한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다른 두 소설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자먀찐이 '대중적인' 면모에서는 약세라고 이해하면 될 듯.
사실 제목인 '우리들'은 비문이고 의미중복이긴 하다만...... '모든 사람들' 같이 흔히 사용하는 오류니까 넘어가도록 하자.
우리들은 1984와 멋진 신세계에 영향을 줬지만, 배경만 놓고 보면 1984에 좀 더 가깝다. 인류는 큰 전쟁을 치른 뒤 하나의 단일제국 아래에 영속하고 있으며, 단일제국은 철저한 논리와 이성 아래에 기계적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개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단일제국에서 개인을 식별하는 건 이름이 아닌 번호다. 남자는 자음, 여자는 모음에 숫자를 붙이며, 주인공은 바로 D-503이다. 편하게 D나 주인공으로 부름. 어차피 뒤 숫자는 별 의미 없다. 작중에 겹치는 알파벳이 나오질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에서 대비되는 가치는 이성과 감정, 논리와 본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D는 아주 전형적인 논리의 종속이자 단일제국의 번호였으나, 실은 본능의 흔적(털이 수북한 팔)이 남아있고, 본능을 상징하는 I를 만나게 되면서 이성이 무너지고 논리를 부정하면서까지 자신의 감정과 본능을 따르고자 한다. 이 과정은 D의 수필에 나타나는 변화로 알 수 있다.
처음에 D가 단일제국을 소개하고 이런저런 기록을 남길 때만 해도 군더더기 없이 이성과 합리를 중시하는 어투를 가지고 있으나, I를 만나고 D가 '영혼'을 얻게 되면서부터 얘기는 달라진다. 개인과 자아가 없던 시절, D가 그저 단일제국의 부속품이자 하나의 온전한 피스톤 운동으로 그 기능을 다하던 시절에는 하루하루가 충만하고 의심 없는 삶을 살았으나, I를 통해 '영혼'이란 질병을 앓게 되고 단일제국의 부속품이 아닌, 단일제국 '속' 개인이 되면서부터 D의 문체는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초반에 제시됐던 문체는 페이크라는 듯 D의 문장은 점점 현학적으로 변하고, 글 자체도 이성과 논리는 내다버린 듯 굉장히 추상적이고 비직관적으로 서술하기 시작한다. 자먀찐이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D가 감정에 휩쓸리는 과정을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간신히 맥락을 파악하고 세부적인 디테일은 적당히 뭉개면서 넘겼다. 도스토예프스키식 문장은 너무 비직관적이고 장황해서 나랑 안 맞는지라...
중반부에서 가장 흥미롭게 지켜볼 건 다름 아닌 '집단 속 일원'이었던 사람이 '집단과 개인'으로 분리되자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된다는 점인데, D는 영혼을 얻은 뒤로는 단일제국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며, 그들 사이에 섞여도 함께하지 못한다. 시공간은 같으나 단일제국의 번호들과 D-503은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자아를 획득한 개인은 결코 집단에 섞일 수 없다. 하나가 될 수 없다. 어울릴 수 있고, 같은 시공간에 존재할 수 있지만, 필연적인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끼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D는 자신의 소외와 고독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I를 갈망하게 되며, 이 과정이 굉장히 속된 말로 여미새 버팔로 짓으로 나타나는데, 내가 여태 읽은 소설 중에서 D만큼 여미새 버팔로는 못 봐서 굉장히 재밌었다. 말만 좀 알아먹게 썼으면 참 좋았을 텐데. 어쨌든 D는 기존의 단일제국에서 분리되었고, 때때로 단일제국으로 돌아가고자 노력을 기울이지만, 모든 노력은 일시적인 충족감만 선사할 뿐, 시간이 지나면 D는 다시 I를 갈망하고, 소외감을 느끼고, 고통받는다.
기존에 성관계를 가지던 O와의 관계 역시 틀어지는데, D에게 있어 O는 단일제국이 맺어준 관계에 불과했고, 그건 곧 '영혼'을 앓고 있는 D에겐 고통을 키우는 관계에 불과하다. O와 아무리 관계를 맺는다고 해도 O는 단일제국의 번호고, D는 단일제국의 '개인'이니까. 물론 이 관계는 한층 뒤틀려버린다. O가 D의 아기를 키우고 싶다고 하면서부터다.
O 역시 임신욕(?)을 통해 단일제국에서 벗어나버린 것이다. 비록 D와 달리 '영혼'을 앓는 건 아니지만, O의 임신욕은 D가 앓는 '영혼'만큼이나 강력한 욕구로 작중 내내 강조된다. 어쩌면 각자의 결말을 생각할 때 D는 뇌수술을 통해 '영혼'을 치유받고 본래의 단일제국의 번호로 돌아가지만, O는 출산하기 위해 몸을 피한 이후로 행방이 묘연해진다. O의 모성이야말로 자먀찐이 중요시 여긴 본성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D, O 모두 각자 다른 방향이지만 단일제국이 강조하는 이성, 기계적 합리, 논리와 대치되는 가치들(영혼, 자아, 임신과 출산, 모성)을 깨우치고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면서 단일제국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특히 주인공 D는 영혼을 앓은 뒤로 이것을 고치고자 노력도 하고, 단일제국으로 돌아가고자 논리로부터 충만함을 얻지만, 여전히 고통 받으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본인이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고 고백하기까지 한다.
고통에서 벗어나길 원치 않는 것. 고통을 즐기는 것과는 다르다. 고통을 삶의 한 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영혼'을 앓는 D와 단일제국을 벗어나면서까지 아기를 출산하고자 하는 O, 그리고 결말의 I까지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다. 반대로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고 없애고자 하는 것, 피하고자 하는 건 단일제국의 번호인 U의 태도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우리들에서 엿볼 수 있는 자먀찐이 생각하는 삶은 이성과 합리로는 도저히 삶을 온전히 구성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빈자리에는 감정(본성)이라는 매우 강력한 축과 고통이라는 매우 커다란 축이 있다. 특히 고통에 대해서 우리들은 일관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고통은 즐기는 것은 아니다. 즐길 수 있을지 몰라도, 괴로운 것이고 그건 누구라도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감내하고, 인내하는 것이 삶이란 것이다. 받아들이고 감내하고 인내해야만 하는 이유 같은 건 없다. 그런 당위로 고통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인물들이 고통을 감내하고자 한다. 왜? 그러고 싶으니까.
이유를 묻는 것이야말로 이성과 논리의 영역이고, 이는 단일제국이 늘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이성과 논리의 끝은 언제나 '고통을 감내할 이유가 없다'로 귀결된다. 하지만 감정과 본성은 다르다. 비록 고통을 감내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지는 D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I 역시 구체적으로 제시하진 않는다.(아마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O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고통을 감내했다. 고통을 제거하길 원치 않았다. 왜?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단일제국은 뇌수술을 통해서 영혼을 치유하게 됐다. 어쩌면 그 수술은 단순히 자아를 지우는 수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고통을 느끼게 하지 않는 수술일지도 모른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그 '번호'는 사람일 수 없으니까.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전력을 보충하듯 밥을 먹고, 유지 보수를 위해 운동과 산책을 하고, 부여된 기능대로 일을 하는 단일제국의 번호들이 정말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마지막엔 진짜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이 나오긴 한다)
그런 점에서도 고통은 자먀찐이 생각하기에 매우 중요하게 여긴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이야말로 자아와 부속품을 가르는 경계선이고, 삶과 비생명을 구분하는 기준점이다.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서 역시 이성과 감정이 다르다.
그렇기에 나 역시 D가 여미새 버팔로라고 무시하고 욕해도, 그가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던 모습에는 욕하지 않고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고통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비록 그 고통이 우리를 끝없이 괴롭게 하고, 그 끝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숫자가 없듯, 마지막 혁명도 없으며, 마지막 고통도 없다. 죽음이 우리의 마지막 고통일까? 그건 확신할 수 없다. 우리들에선 D의 동료가 '마지막 고통'을 증명하는(물론 의미적으로 따지면 그렇다) 이론을 발견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우리의 고통은 우리의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 무한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무한이 우리를 질식시키는가? 혹자는 그럴 수 있지만......
그 무한 역시 우리의 삶의 귀퉁이라면, 우리의 삶은 무한으로 확장될 순 없는 걸까?
마지막 숫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을까?
꼴에 글자나열은 무지도 해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