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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을 읽는 내내 황홀한 기분이었다. 정확히 내가 찾던 소설이었다. 주인공의 성장을 보여주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동시에, '아름다움'에 관해 철학적으로 통찰함으로써 세상의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한다. 900쪽에 달하는 분량 동안 큰 사건이 없지만, 오히려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한 매력이 있다. 「늦여름」의 로맨스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클래식」이 떠올라서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늦여름에 접어든 김에 '늦여름'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집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내 인생 소설의 반열에 들어왔다. 운명의 인도가 아닐까 싶다.
「늦여름」의 줄거리는 이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것과 진기한 것에 둘러싸여 있었고, 여러 다양한 민족을 보았으며, 그들의 땅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주인공 하인리히는 어려서부터 교육 철학이 확고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교양을 쌓아갔다. 나이가 차자 하인리히는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식견을 쌓는다. 특히 지구과학에 관심을 보이다가 우연한 계기로 리자흐 남작을 알게 된다. 하인리히는 리자흐와 시간을 보내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배우고, 평생의 연인도 만난다. 일이 그렇게 되니 리자흐는 자신이 젊을 때는 못 이뤘지만 늦게나마 이룬 사랑, 즉 한여름을 건너뛴 늦여름에 대해 털어놓는다. 가정에 대한 여러 조언을 듣고 가약을 맺은 하인리히는 사랑하는 나탈리에와 인생의 여름을 시작하게 된다. 제목의 여름이란 사랑이요, 늦여름은 늦게나마 꽃을 피운 사랑이다. 하인리히의 삶을 생각하면 「초여름」으로 제목을 지었어도 됐을 것 같다.
「늦여름」을 관통하는 개념은 질서와 조화이다. 「늦여름」을 보면 풍경 묘사가 지루하다시피 길지만, 문장을 읽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따라 그리면 굉장히 아름다운 정경이 묘사된다. 어떤 공간도 번잡하지 않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서 제 기능을 하고 있으며, 쓸모는 부족하지만 아름다운 옛것과 아름다움은 부족하지만 쓸모 있는 새것이 정확한 조화를 이룬다. 저자는 「늦여름」을 통해 부분과 전체의 이상적인 관계를 설명한다. 부분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본연의 역할을 다하며 각자 최대치의 아름다움을 발휘할 때, 전체의 아름다움이 극한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늦여름」에서 저자의 미학을 대신 설명하는 역할을 맡은 리자흐 남작도 '전체가 아름다운 작품은 사소하거나 아름답지 못한 부분이 없다.'라고 강조한다. 보통 사람들은 젊은 세대의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물론 변호사나 의사처럼 세상에 기여하기에 더 유리한 직업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지도 않으면서 가진 직업이 세상에 이익을 제대로 줄 수나 있을까? 오히려 젊은 시절,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시절에 마음을 끄는 모든 것을 해보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쓸모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찾아 파고들다 보면 결국 어떤 분야의 장인이 될 것이며, 장인의 존재 덕분에 세상은 윤택해질 것이다. 그래서 사소해 보이는 모든 직업, 사소해 보이는 모든 신분, 사소해 보이는 모든 예술이 소중하다. 모든 재료는 조화의 질료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늦여름」의 가장 큰 교훈이다.
「늦여름」에서 강조하는 것은 '가족의 사랑'이다. 하인리히가 직접 발품 팔며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견문을 넓힌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하인리히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도와주고, 하인리히가 세상에 관심을 갖고 나아가 세상을 사랑하게 도와준, 가장 소중한 존재인 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런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하인리히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러리라 생각한다. 국가가 교육 과정을 짜고 사회가 어떤 진로로 나를 이끌어도, 결국 나의 내면의 대부분은 가족이 빚는다. 나아가 나 또한 가족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정신에 빛을 비추는 존재이다. 가족이란 가장 가깝고 가장 작으면서도 가장 소중한 존재다. 가족에게 사랑을 받고 자라며, 그 사랑을 다시 가족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자라는, 그런 성장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늦여름」은 이야기한다.
「늦여름」을 읽으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우선 돈벌이가 되는 실용적인 학문에 대한 미련을 어느 정도 털어내는 계기가 됐다. 또 「늦여름」 속 미학을 배우며 부분과 전체를 고찰하는 새로운 관점을 알게 됐다. 이제 「늦여름」 속 장인 정신을 본받아 어떤 부분이든 가치를 알아보고 기능을 극대화할 줄 아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아가 우리 가족에게 늘 감사하고 있기는 했지만 가족의 가치를 더 깊이 느꼈다. 가족에게 소홀했던 적은 없지만 내가 가족에게 빚진 만큼 의식하지도 못한 것 같다. 내가 어떤 지위를 얻고 어떤 사람과 새 가족을 차리든, 우리 가족에게 받은 정신적 유산을 유감 없이 발휘하여, 온정으로 사람들을 돌보아주고 싶다.
「늦여름」은 이렇게 끝난다. "크나큰 행복이, 결코 고갈되지 않을 것 같은 행복이 당시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에서 나를 찾아왔다. 내가 결코 저버리고 싶지 않은 학문 분야에서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둘지, 장차 내가 위대한 학자의 반열에 오르도록 신이 은총을 베풀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리자흐 남작이 요구했듯이 나는 티 없이 맑은 가정을 꾸렸다. 우리의 사랑과 심장을 담보로 우리의 가정은 무한한 충만함으로 지속될 것이다. 나는 재산을 잘 관리해나가고 주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는 학문적인 추구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에 단순함과 의지할 버팀목 그리고 의미가 담겨 있다." 하인리히는 가약을 맺으며 리자흐에게 한 맹세를 지킬 것이다. 든든한 가장으로 자라 자신이 배운 모든 것들을 후세에 잘 물려줄 것이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까? 하인리히보다도 불투명하다. 하지만 「늦여름」을 읽은 덕분에, 내 의지의 자유와 그 자유를 있게 해준 가족들을 내 마음속에 새겼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가든 이 둘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며 살 것이다. 「늦여름」을 읽으며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큰 감동을 얻었다.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것만 같다.
좋은 산문이지만 좋은 소설인지는 모르겠던... 그래도 종종 생각나는 임펙트 큰 책이긴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