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1591ef74b5806cf639ef838a4788706a0bb7a1bf55863b0c1065dfc1f7a62fe197


갤주의 <금색>이라는 소설을 읽었음. 초중반까지는 통속적인 느낌도 들고 좀 아쉬운 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후반까지 읽고나니 다 뒤집어지는 기분이었고, 정말 심도 깊고 수준 높은 최고의 명작이라는 생각이 듦. 금각사보다 더 넓은 미시마 유키오의 철학을 품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고, 더 어렵기도 하고 미시마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본 다음에 읽는걸 추천하는 소설임... 소설의 마지막 두 챕터 "히노키 슌스케가 쓰는 <히노키 슌스케론>"이랑 "대단원"은 미시마의 사상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정수를 보여주는 엄청난 후반부라고 생각해.


독갤러 하나가 <금색>을 " 블랙 코미디 -> 게이 냄새나는 사랑과 전쟁 -> 미시마 메타소설 " 이라고 요약했던데, 괜찮은 정리라고 생각함. <금각사>가 성장소설이라고 하는 것에 반대하는데, <금색>은 성장소설로 볼 여지가 충분히 많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듦. 등장인물이 모두 변화하고 성숙으로 볼 여지도 있음. 여자를 탐하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 추하고 음침한 노인인 슌스케와, 아름다움 그 자체로 모두의 사랑을 받지만 남자밖에 사랑하지 못하는 유이치의 대칭적인 설정을 가지고 있는데, 비슷하게도 3가지 패턴으로 변화하는 것도 비슷함. 사랑의 키워드로 보자면, 유이치는 남자에 대한 사랑 -> 사랑하지 않음 -> 여자에 대한 사랑으로 변화한다면, 슌스케는 여자에 대한 사랑 -> 남자에 대한 사랑 -> 영원에 대한 사랑으로 변화함.



1번 초반부 블랙 코미디 파트에서 유이치의 주된 갈등은 현실과 본인의 남색가로서의 정체성에서 오는 혼란임. 여기서 슌스케의 철학은 '사상은 없다. 행위만이 존재한다.'로 볼 수 있는데, 유이치를 이용하여 본인의 욕망과 복수와 갈증을 채우는 전개가 초중반임.


2번 초중반부 게이냄새나는 사랑과 전쟁 파트에서 유이치는 "현세에 강림한 아름다움 그 자체"로 묘사됨. 본인도 그걸 인식했으며, 남자와 여자 누구와도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으며, 타인에서 비친 자신의 모습만을 음미하는 나르시즘적인 모습을 가지고 망나니처럼 사는 게 유이치임. 반대로 슌스케는 사상이란 없다는 생각을 가졌다가, 유이치를 계속 보다보니 "사랑"에 빠지게 되고 "사랑"이라는 관념~사상적 무언가를 획득하는 게 중반부 슌스케의 핵심임.


3번 미시마의 메타 소설 부분에서는 유이치는 스스로의 아름다움만 보는 나르시즘과 관념 속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접 본다는 "본다"라는 개념을 깨달음. 이 깨달음은 부인 야스코의 출산 장면에서 얻게 되는데, 이 장면은 <만엔 원년의 풋볼>의 다카시 석류 장면이 떠오를 만큼 그로스테스크하기도 하지만, 정말 훌륭한 장면이 아닐 수 없음. <안나 카레니나>에서 키티의 출산이 레빈의 일상성을 잘 보여준다면, <금색>의 출산은 정말 뒤틀린 사람들의 심리와 관념을 보여주는 장면임. 출산을 통해서 유이치가 생명의 순환성이나 인간의 고통이나 어둠이나 객관적인 일상성이나 무엇을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현실을 보게 됨. 이게 굉장히 중요함.


내가 미시마의 세계관을
- 악 = 현실 = 살아가는 것 = 시민성 = 행위
- 아름다움 = 절대적인 것 = 영원한 것 = 예술성 = 표현
라는 축이 있다고 했었는데, 하나 추가해서
- 관조 = 상대적인 것 = 불교적인 세계관 = 자유
도 있다고 생각함.

미시마는 절대성을 찬양하는 경우가 많아서, 불교적인 세계관이 끼어들 틈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본다"는 개념을 나는 <금색>에서 처음 발견하고 좀 놀랐음. <봄눈>에서는 불교적 세계관이 많이 강조되는데, 기요아키나 사토코가 아니라 4권 모두를 관통하는 한 인물이 혼다인 것은, 관찰자로서의 특성이 불교적 세계와 연결되서 그런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건 뇌피셜임.


결국 현실을 보게된 유이치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에서 내려와서 현실의 존재가 됨. 그리고 남색의 추함을 객관적으로 보고, <오후의 예항>처럼 신격화된 사랑의 도피를 꿈꾼 남친 미노루의 기대도 뭉개버리고 헤어짐. 더러운 게이짓 개망나니 짓도 만천하에 공개되서 엄마랑 부인에게 참 답이 없는 상황에 빠졌는데, 내가 진정 사랑하는 건 아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가부라기 부인하고도 우정에 가까운 관계를 새롭게 정리되고, 슌스케의 손에서도 벗어나고, 가와타가 지만의 세계에서 망상하면서 살게 냅두고 자기는 거기서 빠져나옴. 결말이 모든걸 훌훌 털어버린 듯한 기분으로 유이치가 신발 묶는 걸로 끝나는 것도, 그런 일상성과 번뇌를 초월한 모습을 볼 수 있지.


부인 야스코도 남편의 개망나니 짓 이후로 남편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됨. 그러나 엄청난 감정의 동요가 있지도 않고, 모든게 상대적이라는 상대성도 가지게 됨으로서 어느정도 유이치와 비슷한 포지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다만 유이치와의 사랑은 항상 엇갈리게 됨. 내가 <짐승들의 유희> 리뷰에서 쓴 헤어질 결심의 대사가 떠오름...


슌스케는 사랑을 넘어서 유이치를 신격화된 아름다움으로 취급하고, 시간이 지나서 늙어버린 청춘으로 사는게 아니라, 유이치의 청춘의 한 순간을 사진 찍듯이 영원히 간직해서 신격화시키고자 하며, 사상을 간직한 채 자살함. 그리고 유이치를 평생 자기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유산도 다 유이치 앞으로 상속함. 물론 자살한다고 본인이 꿈꾼게 이루어지진 않은 것 같은데,,,


슌스케의 철학 중에서 '인식'과 '행위'의 차이가 굉장히 흥미로움. 이건 금각사 미조구치와 가시와기의 대비로도 나타나기 때문에 미시마 사상에서 더욱 중요함. '인식'은 항상 '행위'보다 늦게 나타난다고 주장하는데, 예를 들어 청춘으로 살 때는 그 시절의 관념을 인식하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반추할 때가 되서야 청춘을 사상적으로 의미부여를 할 수 있다는 말임. 그래서 인식은 항상 늦을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예술이 된다고 말하는데, 인식과 행위가 동시에 중첩하는 경우가 딱 한가지 있음. 바로 자살임... 자살은 행위인 동시에 그 자체로 의미부여(인식)이기 때문인데, 작가의 최후를 생각하면 또라이같은 생각이 아닐 수 없고, 정말 삶 자체가 예술이라는 생각이 듦...


미시마 유키오가 게이라는 말이 있는데, 마초적인 걸 추구한 것도 있지만, 역자 후기에서 옛날 고승/고대 학자/옛날 사람들이 남색과 여색을 같이 즐긴것처럼, 본인도 고전적인 삶을 산거 아닐까?라는 이야가가 나오는데 정말 미친놈같지만 맞는 말같음

레몽라디게 극찬하는 내용에서도 라디게가 요절해서 동경한다는 말이 있던데 미친놈임


그리고 대사로 '아름다운 자연과 추악한 정신'이라는 말이 언급되는데, 이만큼 미시마의 문체를 잘 설명하는 말이 있을까?

미시마 유키오의 철학을 더욱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금색>이기 때문에, 흥미가 있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