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이라는 장르가 2020년대에 들어서 많은 남성들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본격적으로 남성들에게 어필하는 작품들, 즉 남성향 백합물들 또한 근래에 들어 수요와 공급이 늘어나고 있다. 본래 여성들의 전유물에 가까웠던 장르가 남성들에게도 받아들여지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일 뿐만 아니라 이례적이기도 하다. 남성향과 여성향이 엄격한 이분법 속에서 분리되어 각각 폐쇠적인 구조 속에서 서로간의 취향의 공유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현 상황 속에서 이런 상황은 더욱 이례적으로 느껴진다. 이는 어찌된 상황인가? 어째서 백합만이 이 남성향과 여성향의 폐쇠적인 취향의 구조를 뚫은 것인가?
사실 이 글을 전개함에 있어 기존 백합물이 어째서 여성들의 전유물에 가까웠는가에 대해서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지금 그 이야기를 하기에는 글의 핵심에서 벗어난 논지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끌어야 하기 때문에 짧게 요약한다. 문화적 배경에 따라 같은 동성애지만 게이와 달리 레즈비언은 더 순수하고 정사적 사랑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고전적인 이미지에 따라 폭력적인 남성이라는 존재가 백합 장르에서 제거됨에 따라 여성들이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는 bl도 같은 본질을 공유하는데, 실질적으로 순정만화와 같은 구도를 가지면서 여성(수)만 남성으로 성전환 시켜서 여성이 더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성이 왜 백합을 받아들이게 됬는지에 대해 논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백합이 오타쿠 문화에서 남성들에게게 나름 주류로 받아들여지게 된 시발점은 우리가 흔히 멸칭으로 쓰는 미소녀 동물원이다. 이 장르의 기원이 어디서 온 것인가에 대하서는 아직 불분명하다(애초에 장르의 정의 자체가 불분명하기도 하다. 그냥 보기 ㅈ같다고 멸칭으로 붙인 것이기 때문에). 두가지 가설이 있는데 하나는 러브코미디에서 기원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물에서 기원된 것이다. 이 두가지 가설은 각각 미소녀 동물원이라는 멸칭의 의미를 그대로 드러낸다. 러브코미디는 미소녀이고 일상물은 동물원이다. 미소녀는 여성에 대한 욕망이고 동물원은 변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욕망이다. 이것이 미소녀 동물원이라는 장르를 이루는 두가지 핵심이다. 이 장르와 백합간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남성이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이유는 완전히 다르지만 말이다. 미소녀 동물원에서 남성의 배제는 하렘물에서 시청자들이 주인공을 보면서 느낀 현타로부터 나온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이 장르에는 남성은 사라지고 여성만이 남게 되었으며, 그 결과 캐릭터들 간의 길밀한 관계 역시 전부 여성과 여성과의 관계가 된 것이다. 물론 그것이 동성애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케이온이나 걸즈 앤 판처 같은 작품을 들 수 있다. 특히 케이온의 경우 야마다 나오코를 필두로 한 여성 스태프들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인물들과의 관계에서의 오는 인상은 백합의 시초라 불리는 요시야 노부코에 가까운 지점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이것이 케이온이 단순히 남성 시청자 뿐만 아니라 여성 시청자들도 끌여들인 이유일 것이다). 물론 그 관계가 동성애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아니면 유루유리같은 실제 일상물이자 백합물이 경우도 있었다.
이제 다음 장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두번째 장르는 아이돌물이다. 사실 이 장르는 미소녀 동물원과 유사한 지점들이 매우 많다. 하지만 아이돌물의 경우 남성들이 백합에 더 친숙하고 가까워지게 만든 가장 직접적인 원인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아이돌물은 동성간의 연애를 채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추론하자면 남성 캐릭터를 등장 시킬수는 없고 커플링은 만들고 싶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때 화수에 비해 캐릭터들이 많으니 무언가의 관계로 엮어서 한 에피소드에 같이 메인으로 등장 시킬 필요가 있으니, 백합을 고른게 아닐까 싶다. 정확한 이유를 추론하지는 못하더라도 결국 아이돌물이 백합을 채용했다는 것 만큼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아이돌물이 2010년대 오타쿠 문화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남성 오타쿠들이 백합이라는 장르를 받아들이게 된것이 아닐까 싶다.
백합이라는 장르는 위생학적이다. 그것을 즐기는 소비자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라는 존재를 작품에서 제거하고자 한다. 남성은 작품 속 남성과 자신의 괴리에서 오는 감정으로부터, 여성은 작품 속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고전적인 남성상이 지닌 폭력적인 이미지가 주는 불쾌함 혹은 위협성으로 부터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백합을 선택한다. 백합에서 남성은 위생적이지 못한 존재이며 때문에 제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생학의 원천은 욕망으로 부터 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합은 bl과 같다. 그들은 본질은 욕망이며 그 욕망은 작품 전체에 특정 성별을 제거하는 위생학으로 발전한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백합이라는 같은 장르를 공유함에도 그 즐기는 이유는 전혀 다른 것이다. 마치 한 장르 안에 두개의 다른 장르가 공존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남성을 배제하고 여성간의 관계를 소비한다. 허나 그 본질은 결국 욕망으로 귀결한다. 허나 서로는 서로의 욕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설사 같은 장르를 소비하더라도.
애초에 독회가 백합만화를 소개하는 것인데 아직 시작도 못했다. 앞서 언급했던 주제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작품을 하나 소개하려 한다. 츠쿠미즈 작가의 <소녀종말여행>이다. 무척이나 허무주의적인 색채가 짙게 띄는 작품으로 인간이든 지구든 어떠한 행위를 하든 간에 끝=죽음=절망=허무를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 비슷한 알레고리가 작품에서 계속 반복된다. 각각의 에피소드부터 작품 전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이 알레고리 속에 놓여 있다. 다만 모든 것의 끝에 허무가 있다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이야기 하는 작품이 아님은 알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직접 읽으면서 느끼기를 바란다.
백합은 결국 성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장르다. 앞서 언급한 모든 이야기는 결국 성에 대한 욕망과 공포다. <소녀종말여행>은 이런 성의 이미지를 은밀하고 영리하게 활용한다. 어린 두 여성이 멸망한 세계를 거닐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어떤 불안감을 준다. 또한 두 인물이 둘 다 같은 성인 것은 인물들의 위치가 동등하다는 인상을 준다. 만일 두 인물 중 한명이 남성이었다면 두 인물간의 관계가 동등하다는 인상이 없었을 것이다. 또한 여성 둘이 있음으로서 백합이라는 장르가 지닌 강점인 순수 또한 본작에서 절망과 대비되는 효과를 낳는다. 백합이라는 장르 자체가 성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장르이지만, <소녀종말여행>은 그 중에서도 가장 영리한 부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사실 이 글을 전개함에 있어 기존 백합물이 어째서 여성들의 전유물에 가까웠는가에 대해서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지금 그 이야기를 하기에는 글의 핵심에서 벗어난 논지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끌어야 하기 때문에 짧게 요약한다. 문화적 배경에 따라 같은 동성애지만 게이와 달리 레즈비언은 더 순수하고 정사적 사랑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고전적인 이미지에 따라 폭력적인 남성이라는 존재가 백합 장르에서 제거됨에 따라 여성들이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는 bl도 같은 본질을 공유하는데, 실질적으로 순정만화와 같은 구도를 가지면서 여성(수)만 남성으로 성전환 시켜서 여성이 더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성이 왜 백합을 받아들이게 됬는지에 대해 논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백합이 오타쿠 문화에서 남성들에게게 나름 주류로 받아들여지게 된 시발점은 우리가 흔히 멸칭으로 쓰는 미소녀 동물원이다. 이 장르의 기원이 어디서 온 것인가에 대하서는 아직 불분명하다(애초에 장르의 정의 자체가 불분명하기도 하다. 그냥 보기 ㅈ같다고 멸칭으로 붙인 것이기 때문에). 두가지 가설이 있는데 하나는 러브코미디에서 기원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물에서 기원된 것이다. 이 두가지 가설은 각각 미소녀 동물원이라는 멸칭의 의미를 그대로 드러낸다. 러브코미디는 미소녀이고 일상물은 동물원이다. 미소녀는 여성에 대한 욕망이고 동물원은 변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욕망이다. 이것이 미소녀 동물원이라는 장르를 이루는 두가지 핵심이다. 이 장르와 백합간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남성이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이유는 완전히 다르지만 말이다. 미소녀 동물원에서 남성의 배제는 하렘물에서 시청자들이 주인공을 보면서 느낀 현타로부터 나온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이 장르에는 남성은 사라지고 여성만이 남게 되었으며, 그 결과 캐릭터들 간의 길밀한 관계 역시 전부 여성과 여성과의 관계가 된 것이다. 물론 그것이 동성애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케이온이나 걸즈 앤 판처 같은 작품을 들 수 있다. 특히 케이온의 경우 야마다 나오코를 필두로 한 여성 스태프들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인물들과의 관계에서의 오는 인상은 백합의 시초라 불리는 요시야 노부코에 가까운 지점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이것이 케이온이 단순히 남성 시청자 뿐만 아니라 여성 시청자들도 끌여들인 이유일 것이다). 물론 그 관계가 동성애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아니면 유루유리같은 실제 일상물이자 백합물이 경우도 있었다.
이제 다음 장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두번째 장르는 아이돌물이다. 사실 이 장르는 미소녀 동물원과 유사한 지점들이 매우 많다. 하지만 아이돌물의 경우 남성들이 백합에 더 친숙하고 가까워지게 만든 가장 직접적인 원인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아이돌물은 동성간의 연애를 채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추론하자면 남성 캐릭터를 등장 시킬수는 없고 커플링은 만들고 싶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때 화수에 비해 캐릭터들이 많으니 무언가의 관계로 엮어서 한 에피소드에 같이 메인으로 등장 시킬 필요가 있으니, 백합을 고른게 아닐까 싶다. 정확한 이유를 추론하지는 못하더라도 결국 아이돌물이 백합을 채용했다는 것 만큼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아이돌물이 2010년대 오타쿠 문화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남성 오타쿠들이 백합이라는 장르를 받아들이게 된것이 아닐까 싶다.
백합이라는 장르는 위생학적이다. 그것을 즐기는 소비자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라는 존재를 작품에서 제거하고자 한다. 남성은 작품 속 남성과 자신의 괴리에서 오는 감정으로부터, 여성은 작품 속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고전적인 남성상이 지닌 폭력적인 이미지가 주는 불쾌함 혹은 위협성으로 부터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백합을 선택한다. 백합에서 남성은 위생적이지 못한 존재이며 때문에 제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생학의 원천은 욕망으로 부터 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합은 bl과 같다. 그들은 본질은 욕망이며 그 욕망은 작품 전체에 특정 성별을 제거하는 위생학으로 발전한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백합이라는 같은 장르를 공유함에도 그 즐기는 이유는 전혀 다른 것이다. 마치 한 장르 안에 두개의 다른 장르가 공존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남성을 배제하고 여성간의 관계를 소비한다. 허나 그 본질은 결국 욕망으로 귀결한다. 허나 서로는 서로의 욕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설사 같은 장르를 소비하더라도.
애초에 독회가 백합만화를 소개하는 것인데 아직 시작도 못했다. 앞서 언급했던 주제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작품을 하나 소개하려 한다. 츠쿠미즈 작가의 <소녀종말여행>이다. 무척이나 허무주의적인 색채가 짙게 띄는 작품으로 인간이든 지구든 어떠한 행위를 하든 간에 끝=죽음=절망=허무를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 비슷한 알레고리가 작품에서 계속 반복된다. 각각의 에피소드부터 작품 전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이 알레고리 속에 놓여 있다. 다만 모든 것의 끝에 허무가 있다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이야기 하는 작품이 아님은 알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직접 읽으면서 느끼기를 바란다.
백합은 결국 성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장르다. 앞서 언급한 모든 이야기는 결국 성에 대한 욕망과 공포다. <소녀종말여행>은 이런 성의 이미지를 은밀하고 영리하게 활용한다. 어린 두 여성이 멸망한 세계를 거닐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어떤 불안감을 준다. 또한 두 인물이 둘 다 같은 성인 것은 인물들의 위치가 동등하다는 인상을 준다. 만일 두 인물 중 한명이 남성이었다면 두 인물간의 관계가 동등하다는 인상이 없었을 것이다. 또한 여성 둘이 있음으로서 백합이라는 장르가 지닌 강점인 순수 또한 본작에서 절망과 대비되는 효과를 낳는다. 백합이라는 장르 자체가 성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장르이지만, <소녀종말여행>은 그 중에서도 가장 영리한 부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아주 좋습니다
적다보니 내가 적는 글이 백합인지 창작물에서 성의 고착적 이미지를 창작자가 활용하고 수용자가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글인지 혼돈이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