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독서란 의미가 깊은 활동이다.  책을 접할 기회가 아주 많았다. 초등학생 시절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어린이용 문학전집을 사주셨다. 크게는 3종류로 사주셨는데 아주 짧게 요약되어있는 책, 체계적으로 내용이 적혀있는 책, 그리고 국내 고전 문학. 이렇게 세 종류의 책들이 내 방의 한편에 항상 꽂혀있었다.


 처음에는 짧게 되어있는 책 중에서도 어린왕자 같은 동화에 비슷한 책을 읽어나갔다. 나는 생각보다 책을 좋아했고 밥먹을때도 걸어다닐때도 책을 들고 다녔다. 학교에도 많게는 한시간반 정도 일찍이 등교하여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본다면 나는 좀 더 노는것이 좋지 않았나? 하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친구가 적다. 그마저도 연락을 잘 하지 않는다. 어쩌면 난 친구보다는 책을 선택한 삶을 살아왔기에 이러한 결과로 나타나는게 아닌가 하고는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더 이상은 짧은 책으로 내 독서욕을 채워나갈 수 없음을 느꼈다. 다름이 아니라 그냥 집에 있는 책 중 짧은 책은 이미 2번 이상은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고전문학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 고전문학은 나의 취향과는 맞지 않음을 알게 되고 해외 문학책을 읽기 시작하게 된다 이후로는 그냥 책으로 통칭하겠다.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내가 처음으로 빠져들듯 읽은 책은 네버랜드 클래식 중 로빈슨 크루소 였다. 무인도에 조난당한 사람의 일상 지금도 좋아하는 책이다 그 당시 어린아이의 낭만을 채워주며 '난 이런 두꺼운 책도 읽는다!'라는 허영심을 채워주기에는 충분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다음 읽은 책은 2년간의 휴가 였다. 이 책을 기점으로 내가 독서 힙스터 가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15소년 표류기 라는 책이 언급될 때 이거 사실은 2년간의 휴가 라는 책인거 알아?? 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책 또한 다루는 내용은 로빈슨 크루소와 비슷하다면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이 부분은 이렇게 다르고 저 부분은 저렇게 다르구나 하며 정말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소설만 주구장창 읽어가던 도중 어머니께 암이 찾아오고 말았다.


 괘념치 마시길 지금은 쾌차하여 곧 완치를 마주하고 계신다. 하지만 사춘기가 오기 직전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당시의 나는 개념조차 알지 못하던 허무주의에 빠진채 살았다. 정말로 죽음에 대한 내가 가능한 정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고 정말 슬픈 기간을 가졌다. 특히 방학중에는 아버지께선 어머니 간병을 하러 가계시는 동안 집에 홀로남아 생각에 잠긴채 하루를 허비하곤 했다. 이 시기에 나에게 친구가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 했던게 한두번이 아니다. 물론 나의 친구 책은 함께 해주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였다면 지금보다 더 망가졌을지도 모르리라. 이 시기엔 학업도 뒤로하고 정말 책만 읽었다.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에 그냥 책을 꺼내두고 읽었다. 쉬는시간 에도, 점심시간에도 학교 도서관에 매일 찾아가서 책을 읽다 보니 도서부에 들어가 도서관을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도 손에서 책을 내려두진 않았다. 이런 시기에 내 인격과 방향성을 잡아준 책은 '세라 이야기' 였다.


 책의 주인공은 힘든 시기가 와도 자신을 공주라 생각하고 열심히 생활을 해나갔다. 모진일을 겪어도 강한 모습을 내세워 나간다. 그러다 정말 기적처럼 행운을, 받아 마땅한 일을 마주하며 다시 행복해 진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찾아올거라 생각하며 밝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원랜 되게 조용한 성격이었으나 다른 학생들과 소소한 농담도 하고 운동도 했다. 거울을 보며 미소짓는 연습을 하며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면 밝은 미소를 지어주리라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나만 힘든게 아니라는걸 알기에 더욱 남들을 배려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시기가 오고야 말았다. '중2병' 물론 비행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다시 허무주의에 빠진 느낌이었달까. 이때는 그래도 계속해서 나에게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나갔고 그런류의 책들을 찾아서 읽었다. 그때 나는 '인간실격'을 처음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사람은 왜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이렇게 힘들어하지? 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리고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을 해봤다. 감정은 잘 모르겠고 문제 없이 인간으로써 살고자 했기에 그런 일들을 벌였는가? 하지만 이렇다 생각하기에도 그는 내가보기엔 호색한이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나는 이 주인공은 '힙스터' 말기 였다고 생각한다. 난 아무도 이해를 못하며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난 인간을 초월적으로 이해하며 쾌락은 좋다. 라는 결론을 내린 것 이다. 이 책이 왜 그렇게 고평가 되었는지 의도는 뭐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해당 시기에 읽었던 책, 데미안 이다. 방황하는 주인공 난해한 결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비행을 하는 모습이 나를 투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철학적인 질문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우울함은 나아지지 않았고 다른 방향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하였다. 심리학 책과 뇌과학, 진화학에 관심을 두며 나 자신의 행동과 상황별 반응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내가 아닌 타인들을 이해하는 부분에서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예의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방향을 잡고 나아갔지만 내 공허함은 채우지 못했다. 나는 윗사람이 보기에는 성실하고 예의를 지킬줄 아는 사람이라며 이쁨 받았고 같은 위치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믿음직하며 신뢰가 가는 사람이었고 내 아랫사람들 에게는 되고 싶은 사람이 되었었다.


 그렇게 혼자 있을 때와 타인과 있을 때의 차이에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쯤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힘이 부쳤기에 내려 놓은 건지 솔직히 잘은 모른다. 확실한건 그간 쌓아왔던 이미지가 실추되었으리라 짐작하며 사람을 만나길 꺼렸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인간미가 느껴졌다며 더욱이 친해진 사람도 있고 너무 어려운 사람이었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어려운 사람은 아닌 것 같다며 친해진 사람도 있다. 그제야 데미안의 그 문구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내가 생각 하는 것 만큼 세상은 확연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나 또한 사람이기에 실수를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걸 몰랐기에 나는 항상 주변에 벽을 친 채로 살아갔던 것이고 이제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더욱 주변과 어울릴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난 나를 고립시켜왔던 것 이다.


 난 아직 나이가 많지 않다. 솔직히 어린 편이다. 난 책이 좋다. 하지만 책이 전부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