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도라지 눈 하나
- 8·15 해방 30주년 기념일에」
눈,
눈,
눈,
눈, 눈…….
거지들이 이 갈다가
둔갑해서 된
승냥이떼의
눈,
눈, 눈…….
거지 왕초들이 이 갈다가
둔갑해서 된
호랑이떼의
사자떼의
눈,
눈, 눈…….
순종(純種) 사자새끼는
강아지 밥그릇에서 먹으며
강아지 노릇으로만 자라고
그 사이,
백도라지
눈
하나
겨우 순수히 열렸네.
바가지 긁는 소리
따그락 다그락
물 길러 가는
엉덩이 춤
똥그스럼이
백도라지
눈
하나
겨우 순수히 열렸네.
강아지로 자라는 사자 새끼들 사이
앙리 룻소 그림의
잠든 집시가 놓아둔 맨돌린 같이
부는 바람에
혼자 야죽거리기도 하며
白도라지
눈
하나
겨우 순수히 열렸네.
- 『떠돌이의 시』(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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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전집을 차례로 읽다 보면 반드시 누구든지 흠칫하게 되는 작품이 몇 차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8·15의 은어」라는 시이다. 평범하거나 뻔한 행사시의 나열 끝에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이 작품은 행사시의 성격을 완전히 뒤엎는 파격과 의표를 찌르는 발상이 있어 읽는 누구에게나 충격을 주는 작품이다. 그것의 저자가 일각에서 거의 어용 지식인 취급까지 받는 서정주라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작품의 획기성에 비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도 충격을 배가시키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유달리 눈길을 끈다고 해서, 또는 나머지 시 가운데 시원찮은 것들이 몇 편 있다고 해서 『서정주문학전집』이나 『떠돌이의 시』에 실린 서정주의 다른 행사시가 마냥 볼품없어 보이는 것은 또 아니다.
삼일절이나 광복절을 맞아 씌어진 서정주의 행사시들을 보면, 의외로 시인의 어조가 감격에 젖기보다 오히려 냉소에 가까워져 있는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광복 삼십 주년을 맞아 씌어진 위의 시 역시 그러한 사례에 속한다. 이 시의 이미지는 짐승 무리들의 눈과 그 사이에 핀 백도라지의 눈이라는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것이다. 시인은 광복한 지 삼십 년이 된 한국 사회를 일단 짐승 무리를 닮은 것으로 진단한다. 여기에는 거지들과 거치 왕초들이 둔갑해서 된 승냥이와 호랑이 사자들이 있고, 반대로 진짜 사자, '순종' 사자는 강아지처럼 키워져 길들여진 모습으로 자란다. 요컨대 가짜는 판치고 진짜는 수그러진 사회인 셈이다. 그 사이에서 정말로 '순수'한 백도라지 눈 하나가 '겨우' 피어 있는 꼴이다. 그 힘으로 해방의 의의는 간신히 버틸 힘을 얻는 셈이다. 다른 시에서 서정주는 이 백도라지 눈을 향하듯이 이렇게 읊기도 했다. '조국아./ 네 그 모양 아니었더면/ 내 벌써 내 마지막 피리를/ 길가에 팽개치고 말았으리라.'(「조국」)
8•15의 은어도 그렇고 이런 냉소가 드러나는 시를 보면 그냥 대중이 보기에 이상적인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지, 그렇게 변덕스러운 마음을 가진 건 아니었던 거 같음.
다시 말해 친일시나 독재 찬양 시나 이런 게 서정주가 진실성이 없는 시인이었다는 걸 반증한다기보단, 그냥 현실 사회 자체를 좀 우습기도 한, 진실성을 온전히 담을 가치는 없는 그런 거로 본 건 아니었나
그렇다고 완전히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경계에 한 발짝만 올리고 선, 비겁하다면 비겁하지만 그곳에서 움직인 적은 없는 그런 느낌?
동감동감. 위선적인 사람이라기보단 지나치게 자기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던 것 같음.. 그 점에서 역설적으로 윤리성을 유독 중시하는 한국 문학에서 비주류적인 경향이 짙은 문인이 아닐까 싶기도 함
흠... 걍 침묵과 행 사이의 조용, 그 간극 등을 영리하게 있어보이게 이용했을 뿐 본인의 큰 뜻은 전혀 없던게 아닐지... 가끔 서정주 보면 침묵을 한국인의 정서로 보면서 과하게 적용하고 본인도 그 뜻에 얹혀가려는 그런 느낌을 받는 거 같음.
어떤 느낌인진 알거같은데 위의 시에도 적용되는 사항일지는 잘 모르겠음.. 최두석의 <서정주론>이라는 글에서 이런 논지를 보았던 게 기억나기도 함
갠적으론 그 갠찬타갠찬타 하는 시가 유독 심한 거 같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