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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시대 구분에는 황금 세기(Siglo de Oro)라는 시기가 있다.
16-17세기 르네상스 스페인을 특히 구분해서 부르는 이 말은 '스페인'이 본격적으로 유럽에 등장하면서 각종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시기다.
그 두각에는 당연히 문학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 황금 세기에 나온 작가 중 한 명이 그 유명한 세르반테스 되시겠다.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본토 에스파냐 문학 수용이 다소 저조한 관계로 다들 세르반테스 정도만 알고 있지만,
당연히 황금 세기 문학에는 세르반테스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읽어보았다,
에스파냐 황금 세기.
1.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삶, 그의 행운과 불운
시기적으로는 사실 가장 최근에 읽었지만, 시대적으로는 지금 읽은 것 중에서는 가장 앞에 위치한 작품이다
스페인 황금 세기 문학의 특징인 '사실성'과 '유쾌함'을 아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사실성과 유쾌함은 돈키호테를 읽어본 독붕이들이라면 익히 느꼈을, '초라한 현실에 대한 유쾌한 시선'을 뜻한다.
이 시기 스페인 작품들은 암울한 현실을 낙관적으로 풀어내는 것을 기저로 하고 있다.
특히 하류층 악한을 주인공으로 많이 내세우는데, 이를 '피카레스크 소설'이라고 한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는 이러한 피카레스크 소설의 시초격으로,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당연히 세르반테스도 이러한 영향권 안에 있다고 한다.
내용은 라자로라 불리는 부랑아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가 부모로부터 팔려나간 뒤 여러 주인들을 모시는 시동으로서 근근히 살아가며 일어나는 이야기다.
태생부터 혼란스럽고 범상치 않은 라사리요는 매사에 꾀를 부리며 악독한 주인들을 골탕 먹이다가 혼이 나는 것을 반복한다.
라자로 특유의 말빨 덕분에 이 범상치 않은 에피소드들이 더욱 재밌게 다가오며 소설 자체도 술술 읽힌다
더불어 당시 다른 스페인 문학들처럼 종교적 색채가 다소 스며있는데, 성경이 빈번하게 인용되면서도 라자로의 시선에 따라 비틀어지는 등 나름의 깊이를 확보하려 했던 흔적이 돋보인다.
아쉬운 점이라면 결말이 급작스럽게 끝난 느낌이라... 에피소드들 자체는 좋았는데 출하된 작품을 보는 것 같은...
그래도 짧기도 해서 한 번에 슥 읽기 좋은 작품이었다.
2. 누만시아·사기꾼 페드로
돈키호테로 유명하지만 극작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했던 세르반테스의 작품이다.
이후로는 전부 극작인데, 황금 세기에서 극작이 특히 중요하게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이건 사실 르네상스 시기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누만시아는 누만시아 전쟁을 소재로 한 역사극으로, 적에게 굴하지 않는 누만시아 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해서 스페인 국민 문학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로마군에 의해 포위 당한 누만시아가 배경으로, 성에 꼼짝없이 갇힌 채 굶주리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누만시아의 혼란상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의식에 이것이 현세에는 고통이오 내세에는 역사로 기억될지어다 라는 의식이 강하게 깔려있다는 점이다.
세르반테스의 진지한 면모를 볼 수 있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두 번째인 사기꾼 페드로는 좀 더 피카레스크 냄새가 나는 작품으로, 평생 각기 다른 인물로 변신하며 살아오던 사기꾼 페드로의 생과 함께 도시에 군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연이 스쳐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각기의 인생들이 하나의 지역에서 교차하며 부닥치는 모습은 스페인 사실주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비참한 세게의 하류 운명들이 자아내는 유기적인 모습이 피카레스크에 깔린 기본적인 시선이다.
아쉽게도 세르반테스 희곡 대부분은 소실되어 전해내려오는 게 별로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돈키호테 프리퀄 또는 모범소설집에 견줄 수 있을할만한 작품들이니 관심이 있다면 읽어봐도 괜찮겠다.
3. 푸엔테오베후나
대충 스페인의 셰익스피어라지만 정작 잘 소개되지 않아 번역도 단 두 권밖에 없는 극작가 로페 데 베가인데,
로페 데 베가를 소개한 다른 책에서는 베가가 정말 다양한 장르에서 두루두루 훌륭한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라고 소개했지만 번역이 없어서 그런 두각은 알 수가 없다...
아쉬운대로 대표작 중 하나라는 푸엔테오베후나만 읽어보았다.
푸엔테오베후나라는 지역에서 한 사령관이 개입하게 되며 일어나는 일련의 반란 사건을 다룬다.
권력(단, 국왕의 절대권력이 아닌. 스페인에선 국왕=신이었기에 국왕은 우리나라 '임'처럼 숭배되는 존재에 가까웠다)과 자치권의 대립을 다루는데, 어쩌면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작품일 수 있는 역사극을 유쾌한 어조로 풀어냈다.
스페인도 지방 문화가 쎄서 그런가 이런 자치에 대한 주제가 유독 두드러지는 편이다.
로페 데 베가만의 특징도 생각해봤는데 솔직히 한 권만 봐서는 알 수 없었다.
전체적으로 스페인 작품들은 유머와 풍자를 많이 넣어 가벼운 느낌인데, 특히 작품마다 '익살꾼'이라는 역할이 반드시 나온다.
셰익스피어의 요릭, 궁정광대 이런 캐릭터와는 달리 피카레스크 주인공처럼 순수 말빨로 주인한테 팩폭이나 먹이는 웃긴 놈들이라 나오기만 하면 분위기가 반전되는 면이 있다. 물론 당연히 익살꾼을 통해 첨예한 아이러니를 보여주기도 한다.
전체적으로는 더 읽어보고 싶게 하는 잔영만 핥은 느낌이었다... 아쉽
4. 돈 후안,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
바람둥이로 이름난 '돈 후안'에 대한 최초의 작품, 티르소 데 몰리나의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다.
을유에는 총 두 작품이 실려있다. 하나는 난봉꾼의 괴팍한 생애를 다룬 '돈 후안', 다른 하나는 선인과 악인의 엇갈린 운명을 다룬 '불신자로 징계받은 자'다.
몰리나는 사제 출신이라 그런지 은연중에 가톨릭적인 분위기가 묻어나오는데, 일단 '돈 후안'부터 겉으로는 다른 스페인 문학처럼 난봉꾼의 생애를 유머스럽게 다룬 피카레스크 소설 같지만, 실은 난봉꾼이 어떻게 신의 진노를 받는지에 대한 이야기, 즉 권선징악의 이야기이다.
돈 후안이란 작자는 그냥 '순전히' 남들의 인연을 망치는 게 주목적인 난봉꾼으로 작품에서는 네 명 정도 되는 여인이 돈 후안에게 당해 정사를 말아먹고 만다.
물론 사람을 밥 먹듯 기만하는 돈 후안의 기질은 단순히 그야 재밌으니까... 가 아니라 어떤 불운한 기질로 인해 이성적인 세상, 부조리한 운명에 가하는 일종의 복수격으로 묘사되었던 것 같다.
또 특기할 점은 환상적인 요소가 다소 가미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이전의 '신비주의 문학'이라는 것과도 연결되는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튼 몰리나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종교적인 생채가 강하다.
마치 욥기처럼 몰리나는 인간에게 주어진 불안한 운명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이것에서 나름 해답을 내는 것이 뒤에 실린 <불신자로 징계받는 자>다.
이것은 서로 교차된 운명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생 선인으로 살아온 사람이 어느 날 너는 악한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는 악마의 꾀임에 빠지는 것을 시작으로, 종국에는 선인과 악한의 운명이 뒤바뀌는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이것은 '인간은 악한으로 살아왔다면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라는 고민에 대한 몰리나 나름의 해답처럼 보인다.
<불신자로 징계받는 자>라는 제목처럼 선인이 잃은 것은 결국 '믿음'이고, 악한이 선인과 만나면서 얻은 것 또한 '믿음'이다.
이것은 아마 당대 가톨릭 사상과도 연결되는 지점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욥기를 한 번 더 비틀었던 테드 창의 작품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어서 이것도 한 번 더 비트는 쪽이 나한테는 더 좋게 다가왔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스페인 황금 세기 문학과는 별개로 재밌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던 책이었다.
5. 인생은 꿈입니다 /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살라메아 시장
개인적으로 극작면에서 가장 재밌었던 작가로 꼽을 수 있을만한 칼데론이다.
네 극작가 중에서 칼데론이 선사하는 재미가 나한테는 가장 잘 들어맞았던 것 같다.
일단 <인생은 꿈입니다>는 다른 희곡을 읽을 때 무려 호메로스인가 소포클레스인가 다음으로 비견되어서 나오길래 기대하면서 읽었다가 기대랑 조금 달라서 아쉬웠던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식 비극을 생각하고 읽었더니 완연한 희극이었던지라...
하지만 결말 전까지는 정말 좋았다. 내용은 본래 왕자였던 주인공이 신탁으로 인해 철저하게 격리되어 거지꼴로 살아가다가, 아버지가 한 번 시험으로 이 모든 걸 '꿈'처럼 꾸민 뒤에 단 하루 동안 왕위를 물려준다는 이야기다.
일단 내용부터 꿀잼이 아니기엔 힘들어보인다.
게다가 중간중간 치고 올라오는 대사들이 개인적으로는 스페인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르네상스 극의 진중함이 적절히 조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역자분은 익살꾼이 작품을 지나치게 가볍게 만든다는 말도 하셨지만, 개인적으론 익살꾼이 자아낼 수 있는 능청스러운 아이러니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돋보였다.
제목인 인생은 꿈입니다는 당대 스페인에서 유행처럼 번진 말이라고 한다. 이때 이미 현실과 환상의 경계라는 주제가 대두되어 당대의 시대상과 결합된 것이 혁신적으로 느껴졌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환상이자 그림자이며 허구다.
그리고 최대의 선으로도 부족하다.
모든 인생이 꿈이며
꿈은 단지 꿈일 따름이다.
작품의 핵심을 구성하는 대산데, 맥베스의 '인생이란 헛소리와 분노와 다름아니다.' 같은 분위기의 대사라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왕자의 인생은 정말로 왕정에 의해 철저하게 꾸며진 꿈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게 굳이 희극으로 끝난다는 점이 의아한 것 빼고는 아주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인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살라메아 시장>도 꽤나 좋았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은 말 그대로 신이 세상이라는 하나의 연극을 꾸며 상영하는 일종의 메타극으로도 볼 수 있겠다(역자 해설에서 이것은 이때 스페인에 유행하던 장르인 '성찬신비극'이라고 한다. 이것들은 성서 내용을 비트는 방식을 택한 일련의 작품군인데,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창세기'와 비슷한 면모가 있다).
등장인물은 무려 '신', '세상' 그리고 가지각색의 사람들로, 신이 각각의 인물에게 '운명'을 부여해 운명들이 서로 마주하는 '세상'의 연극을 감상한 뒤, 얼마나 연기를 잘했는지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나눈다는 내용이다.
전체적으로 스페인적인 피카레스크적 특징이 돋보이면서 인간의 삶이라는 게 결국 세상이 부여한 운명에 충실한 '연기'일 뿐이라는, <인생은 꿈입니다>와 어느 정도 공유되는 주제의식이 좋았다. 대사들도 역시나 꽤 센스 있는 부분이 많았고(이토록 깊은 후회를 겪으니, 나는 인간의 삶을 충실히 소화했나 봅니다. 정도 되는 대사가 있었는데 꽤 인상 깊었다).
두 번째 작품인 <살라메아 시장>은 푸엔테오베후나와 약간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면모도 있는데, 여기에서는 초점이 '명예'로 이어진다. 국왕의 명을 받은 군인들이 부유한 중산층 집에 머무르며 깽판 치는 것, 특히 딸을 탐하는 것을 보여주며, 국권과 명예의 첨예한 대립에 인간들이 휘말리며 일어나는 비극을 보여준다.
이 역시 전체적으로 유머러스가 묻어나오는 작품이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으며, 나중에는 갈등이 단순한 지점에서 점차 심화되어 피가 튀기는 모습까지 그려진다.
전체적으로 칼데론의 극작 방식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일단 칼데론 작품의 기저에는 관객이 편하게 볼 수 있게 하되, 대사에는 깊이를 담아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덤으로 다양한 장면 기법까지 선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가장 후대 작가답게 가장 현대적 감성에 잘 맞는 창작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간단하게 스페인 황금 세기를 훑어보았고, 아직 보지 못한 작품들도 있는 편이다.
전체적인 특징을 꼽아보자면 1. 작품이 유쾌함을 유지함. 2. 인간들의 생활사를 낱낱이 탐구함 3. 가톨릭 색채가 가미되어 있으며 이를 반영하면서도 풍자하기도 함. 정도로 꼽을 수 있겠다.
이러한 특징은 언급했듯 돈키호테를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기에, 이것을 스페인 문학의 흐름 안에서 생각했을 때 더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겠다.
안타깝게도 17세기에 정점을 찍은 스페인 문학은 이후 19세기 정도까지 쇠퇴를 보여 손에 꼽히는 작가나 작품은 등장하지 못한다(또는 등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돈키호테가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며, 그러한 돈키호테가 있기까지 또 다른 무수한 작품들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는 마음으로,
다들 스페인 황금 세기를 살짝 맛보는 걸 어떨지.
다른 에스파냐 작품으로 돌아올지 안 돌아올지 몰?루
개꼴리는 작품들 모음집이네 ㄱ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