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은 일단, 굉장히 심플한 문장들로 구성된 소설임. 


그리고 그 글 대부분은 추상적이기보다 감각적임. 끝으로 갈수록 철학적인 성격이 비교적 드러나지만


그걸 꼭 관념적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독자는 충분히 끝까지 내용을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음.


그 소설에 분명 철학적인 질문과 화두가 전제되어 있을지언정, 소설은 철학과 또 다르므로 설령 독자가 그걸 굳이 철학적 명제로 환원하지 않고 소설적 상황에 대한 이입과 간접체험으로 받아들여 나름의 감동을 느꼈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의 감상임. 


꼭 무슨 실존주의를 거론하고 부조리를 들먹여야 그 소설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님.

그 소설이 철학으로 100% 환원될 것 같으면 굳이 그걸 소설로 쓸 필요가 없음. 그 소설은 철학이 아니라 소설이어야만 했기 때문에 소설이 된 거임.


어떤 철학에 대한 예시 쯤으로 그 소설을 단정한다면 그거야말로 그 예술에 대한 폄하일 것 같음.



초심자니 숙련자니, 독서의 능력에 등급을 나누고 누구에겐 적합하고 누구에겐 부적합하고 말하지만


내가 볼 때, 대부분 사람들은 거기서 거기임, 나를 포함해서. 이방인은 문맹이 아니라면 대부분 그냥 읽는 소설임.


심지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임. 이방인에는 소설적 재미가 있고 그 나름의 감정과 감동 또한 있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아마 그건 뫼르소라는 주인공이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일 거임.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건 그 소설을 독자가 제대로 못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그와 반대로 그 소설의 목적이 독자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일거임.



뫼르소는 스스로가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포기한 주인공임.


따라서 그는 스스로를 잘 모르고, 따라서 그는 타인에게 스스로를 잘 설명할 수도 없음. 


그런데 타인들이 그를 이해한답시고 그를 대신해 그를 설명하기 시작함.


검사와 판사와 대중이 언론이 각자의 기준과 규범과 도덕과 종교와 각종 지식과 선입견과 편견으로


그는 이런저런 인간이라고 단정지음. 


그들의 일방적인 이해는 필연적으로 그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수반함. 



만약 어떤 독자가 뫼르소를 그 나름의 기준과 상식으로 이런저런 인간으로 단정짓고,


나는 뫼르소를 이해했다라고 외친다면, 과연 그 독자는 소설속의 검사와 판사와 대중과 언론과 비교해서 얼마나 차별화될 수 있을까?



차라리 나는 그를 잘 모르겠다, 라고 인정한다면 그거야말로 솔직한 반응이고 가장 진리에 가까운 고백일 거임.


하지만 소설 속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저마다 그를 안다고 외치고 소설을 읽는 독자 가운데서도 그를 안다고 외침. 오히려 그럴수록 소설이 추구하는 진리에서 더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내가 볼 때 이방인은 뫼르소라는 주인공보다, 오히려 그 주인공의 언행이 그 세계와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반응, 리액션이 더 중요한 소설임. 


그리고 뫼르소에 대한 그 세계와 사람들의 반응, 리액션에 주목한다면, 사실 그건 독자가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음. 너무나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와 우리 자신들과 닮아있기 때문에. 


이방인을 갖고 철학을 언급하기 이전에 그 역시 한 편의 소설로서 우리가 사는 세계의 어떤 측면을 남다르게 표현하고 있음. 그리고 그건 어떤 이해나 오해에 앞서 일단 공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고 따라서 뫼르소가 아무리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일지언정 우리와 꼭 닮은 세계와 충돌하는 그에게서 어느정도는 감동할 수도 있는거임. 그 기본적인 공감과 감동이 없이, 어떤 관념적인 설명을 덧붙여서 나는 그 소설을 이해한다, 뫼르소를 이해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을 솔직히 난 별로 신뢰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