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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저자가 아버지한테 들었던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란 말은 휘두르기 용이하다는 생각이 듦.


스스로를 제약하는 경계를 허무는 도전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아의 사각에 숨겨진 채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도구로도 쓰일 수 있을 듯.


자연의 위계를 허무는, 뭔가 엄청난 깨달음을 향유하는 듯 하지만 실상 고작 그걸 깨닫자고 야생동물들과 대등 이하로 살았던 인류의 역사가 존재하는 건 아니지. 기독교를 대단히 의식하는 듯 한데, 원래 인간은 자연을 그런 식으로 얕본 적이 없음. 뭐 인간이 영장이니 자연이 모시고 살아야 된다, 그런 게 아니니까. 오히려 자신들의 위치를 다시 찾고자 열심히 노력하자 쪽에 가까웠으면 가까웠지.


지구 운운하면서 인간을 개미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건 자의식 과잉이 아닐까? 정말 겸손한 사람은 애초에 자기가 겸손하다고 하지도 않고 허영이나 야망에서 초연한 사람이지. 인간은 자연의 위계, 약육강식이든 적자생존이든 그 위치가 드라마틱하게 바뀐 존재들이고 본능의 축적이 아닌 지식의 축적으로 환경을 극복해내었는데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다못해 몇 년 농사라도 지으면 그런 말은 쏙 들어가게 될 듯. 왜냐하면 자기를 정말 그런 존재로 느낄 테니까.


노자가 했던 '사사롭지 않음이 곧 사사로운 것'이라는 말이 여기에 어울리지 않나 싶음.





그리고 우생학을 완전한 악으로 규정하는데, 막상 작가의 태도는 일종의 우생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듦. 교묘하게 다른 생각(종교, 사상)을 가진 인물들의 부정적 영향력을 바로 그것들과 연관짓는데 망설임이 없음.


예를 들어 아가시라는 학자는 노예옹호론자에다 종교인이었는데, 데이비드는 명백히 자의로 아가시와 학문적으로는 결별했음에도(동상을 세운 건 은사에 대한 감사 비슷한 것) 진화론자인 그가 후일 우생학으로 돌아선 것을 어떻게든 아가시의 종교적 관점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몰아간다던지....이 정도면 그냥 시대의 한계 아닐까? 그리고 한때 그랬던 사상들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발전하고 있을 수는 없을까?


유전자 풀의 소중함을 안다면서 역사를 따라 자라온 문화,사상적 줄기들은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완전 뒤떨어지고 비이성적인걸까? 유전적 다양성을 위해 극도로 지양해야 할 의식적인 도태가 종교, 문화, 사회의 문제들에는 좀 제한적으로나마 강요 되는 것 같지 않은가? 최소한 나중에 오해라고 손서리나 칠 섣부른 판단은 금물아닐까?


그런 관점은 이른바 '악인'인 데이비드의 평생에 걸친 업적이 현대에는 의미가 없어졌다고 하는 부분에서도 드러남. 어류라는 분류가 없다고 해서 과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그의 모든 것이 없어진 것일까? 아니면 그가 악인이기에 그런 취급이 마땅한 것일까? 혼돈의 승리, 질서를 확립하려던 악인의 몰락, '아무것도 아님'에 대항하려 한 존재는 악인이 되고 그 악인이 쓰러지며 어떤 종류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려던 걸까? 작가 본인이 어떻게 말하든 그런 깨달음 위에 있는 자신이 옮았다는 구도를 만들려 한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었음. 처음에 데이비드를 막 높여치던 부분도 이를 위한 장치였음도 노골적이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그 깨달음에 대항하는 것은 도태된다는 결말이 아닌가 싶네.


어류라는 분류가 사라진다고 해서 해양생태계적 구분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님. 고래와 인간이 고등어보다 더 가깝다고 해서 인간도 바다에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 경계를 허문다는 게 그 종의 입장에선 바로 열 수 있는 문이 아니란 걸, 어쩌면 이미 닫힌 문이란 걸 크든 작든 종이든 문화든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내게는 어류가 없다는 것보다, 포유류인 고래가 어째서 바다에 들어가 물고기와 같은 형태를 취했는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싶네. 바다를 사랑한 포유류는 그 경계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포기했지. 인어공주의 이야기에 그 슬픈 은유들이 들어있는데 물고기와 비슷하게 생겨도 포유류는 포유류임을 생각하면 이쪽이 어류의 분류를 '없애는' 것보다 진정한 의미에서 경계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고 더 현실적이고(모순적이지만 동시에 낭만적이고? 아무래도 동화니까) 개인적으로 설득력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렇기에 이 시대에, 정치, 철학, 문화적 경계들을 아우르는 것은 필연적으로 외적인 파괴보단 내적인 변화를 요하는게 아닐까?


또 책 전체의 걸친 저자의 노력은 아주 노골적이진 않지만 일종의 꼬리자르기란 느낌도 들었음. 진화론, 더 크게 과학이란 현 시대에 가장 프로파간다로 유용할 수 있는 도구이고 확성기로 외쳐대는 그 소리에 반박하면 반지성주의로 몰아야 하는데, 정작 과학사에서 그 시대에 유행했던 것들은 나중에 와선 크게 비판받을 수 있는 것들이니까. 정치와 과학의 연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까 (내 쪽의)권위에 대한 의심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의 꼬리를 잘라야 하겠지.

그런데 생각해보자. 아, 꼬리를 잘랐으니 원숭이에서 인간이 되겠구나? 그런데 내 눈에는 후다닥 도망가는 도마뱀처럼 보이는데? 아마 렙틸리언 음모론의 근본이 풍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열심히 허수아비를 치겠으나 언제쯤 자신들이 그 도마뱀이라는 걸 깨달을지 모르겠네. 그리고 그 꼬리를 다른 사람한테 붙인다고 사람이 원숭이가 될리는 없지만 그런 시도를 계속하겠지.



여하튼 몇 가지 좋은 점이 있었지만 눈에 밟히는 면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었음. 글솜씨나 구성은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는데 오히려 기술적 면에서 좋았기 때문에 반발심이 들었을 수도 있겠네. 느낌적인 감상이니 걸러서 들어주면 고맙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