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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란걸 일종의 간섭받기 싫은 현대인으로 생각함
간섭 받기 싫고, 자신의 고유함을 지켜나가고 싶은데, 그 고유함이 뭔지 자기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없는 현대인
뫼르소는 끝까지 무언가가 되는 것을 거부함
나는 사람 심리에 다른 사람에게 예측되는 무언가가 되기 싫은 욕망이 있다고 생각함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예측되기 싫다는 생각을 너무나 심하게 가지면, 자신의 고유한 가치관, 욕망을 가지는 데 실패하게 됨.
타인에게 예측당하기 싫다,
나의 고유한 어떤 것을 예측당해 그것을 비웃음 당하기 싫다,
뫼르소는 자기 어머니가 죽어도 태연하고
약간 범죄자 스러운 이웃이 하려는 행동도 그럴 수 있지 하면서 도와주고
자기가 법정에 서서 구형당하게 생겼는데 이걸 무어무어라 자기 변호를 하려고 하지도 않음.
요컨데 저항을 전혀 하려고 하지 않음. 자기 자신이 없기 때문에 저항을 전혀 하지 않는데, 그렇기 때문에 뫼르소가 마주하는 인간들은 본인 모습을 추할 정도로 솔직하게 다 드러내 보임.
이걸 통해 당대에 있었던 사람들의 심리를 어느정도 포착해서 이방인이라는 소설에서 카뮈가 보여준게 아닌가 싶음. 다 자기 질서에만 따르려고 하고 남이 정작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관심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뫼르소를 통해 보여주는 거지.
얼추 이렇게 해석하는게 다음 작품이 <페스트> 가 되는데에 당위를 부여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방인 - 주인공인 뫼르소가 이방인 같겠지만 사실 뫼르소만 인간이고 주변 사람들이 다 서로에 대한 이방인임
시지프스 신화 - 사람은 자기 유한함을 자각하고 언젠가 죽을 거란걸 아는 시지프스다. 일단 눈 앞에 마주한 무언가에서 가치를 그러모으려고 안간 힘을 써본다.
(그런데 <이방인>에서 제시된 차원의 현대인의 [시지프스적 노력(어떻게 보면 세상에 대한 '저항')] - 협력이나 공감의 차원이 아니라 개개인의 차원에서 그치고 있음.)
적절하게 인용할 만한 소설 - 장강명 작가님의 <표백>.
우리 세대는 전 세대가 이뤄놓은 가치가 너무나 분명하고 확고하기 때문에 이룰것이 별로 없어서 결국 삶은 의미가 없다. 처음엔 여기에 얼추 설득 당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좀 이상함. 나는 전 세대들이 이뤄냈다고 하는 것들 별로 대단한 거라는 생각이 안 듬. 잼민이 독붕이 마냥 말해보면 - "그렇게 대단하면 왜 노벨문학상 못받음??" ㄹㅇ..
이룰 가치가 없는게 아니라 오히려 할만한 게 너무 많아서 문제임. 왜 아무거나 해보질 않지?
페스트 - 현 시대에 다시 도래한 전염병 '페스트' 라는 것에 대해서 여전히 개인적 차원의 노력(=저항), 극복시도를 하며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인공과 그 일행은 서로의 [공통된 문제] 같은 것을 인식함. 그리고 그걸 이뤄내기 위해 힘을 합치고 결국 성공함.
근데 뭐 유튜브 영상이나 아니면 카뮈 해석 같은거나 그런데서 보기로는 카뮈가 이 다음에 뭘 만들겠다고 기획했다가 교통사고 당해서 운명한거로 아는데,
이 다음 작품이 대체 뭐가 될 수 있는지? 는 잘 모르겠네.
그리고 반항하는 인간 <- 더럽게 어렵고 많아서 잘 모르겠고 이걸 볼라치니 이제 카뮈와 사르트르의 관계를 모르면 이해가 안 될 거 같아서 보류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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