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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도 알맹이도 없음

오류도 많음 책을 다 반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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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Can Build You

Philip K Dick


전자양의 프리퀄까진 아니지만, 대충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

시뮬라테론인가, 시뮬라론인가, 암튼 저 필케딕식 안드로이드 로봇을 세계관상 최초로 제작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라 주장한다.

누가? 책 뒷표지가

딴말 필요 없고 뒷표지에 적힌 줄거리를 허접하게나마 읊어주겠다.

다만, 저의 빈약한 기억력에 의존한 낭독이기 때문에 정확도는 참담할 수 밖에 없음.


우리의 전자 오르간 공장 사장님들에게 닥친 어려움은 아브라함 링컨 시뮬크롬(?)을 제작하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 드넓은 미국 땅 위에 이놈의 아브라함 링컨을 사고자 하는 이가 하나 없다니!

그러던 와중, 최근 들어 달 위에 집을 지어 팔겠다는 바이럴을 신나게 돌리는 억만장자 초미남 부동산 중계업자가 허름한 전자 오르간 공장 사무실 문을 두들긴다.

"얼마면 돼?"


아브라함 링컨 로보트, 달 부동상, 시뮬레톤 제작은 쉽지만 파는 건 영 어렵다는 웃긴 설정.

이 모든 게 담긴 책 뒷표지를 보고도 외면할 수 있는 강인함은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은 나 같은 노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아주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속은 추악한데 표지만 예쁜 책들은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뒷표지 줄거리에 구라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사기죄로 잡혀가야 됨 이 책


한동안 저 줄거리를 잘 따라가다가 필케딕씨는 뭔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요상하게 이야기 방향을 드리프트한다.

반전이 아님. 걍 느낌 상 세번에 걸쳐 쓴 것 같음. 사이사이에 10년 정도 공백을 두고.

"아 뭐 쓰고 있더라? 펜에 몸을 맡겨 볼까나?" 이런 귀여운 혼잣말을 하며 글을 쓰고 있는 필립씨가 절로 상상이 간다.

뭘 말하고 싶은지도, 뭘 쓰고 싶은지도 모르는 듯한 행적을 보인다.


분명 재밌게 전개될 수 있는 소재들과, 필케딕 식 사회풍자, 흥미로운 생각들이 여기저기서 새싹처럼 돋아있다. 웃긴 부분들도 꽤 많다.

근데 딕씨가 직접 나서서 새싹을 밟아버린다.

분명 재밌을 수 있었는데, 기회가 많았는데...


책 내에서 제일 재미없는 인물 둘에게 필케딕의 관심이 집중된 게 이 소설의 가장 커다란 비극이다. 그 둘을 제외한 인물들은 그냥 재미있다.

특히나 링컨과 스탠턴

등장할 때마다 웃기다.


누구를 위한 책인가 - 딕씨를 사랑하는 사람, 링컨과 스탠튼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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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모드 쥘리앵

윤진 번역


모드 쥘리앵이란 사람의 회고록이다.

일종의 극단적인 컬트에서 살아남은 생존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쥘리앵이 겪은 컬트는 다수의 히피들이 산속으로 들어가서 변태 교주를 숭배하는 그런 집단이 아닌,

신이자 교주는 아버지, 광신도는 어머니, 제물은 쥘리앵 본인

세명이 전부인, 뭐 그런 컬트이다.

아버지는 딸인 쥘리앵을 "초인"으로 키우겠다는 집념을 가진 사람이다.

유리겔라처럼 숟가락을 시선 하나로 똑딱 접을 수 있는.. 그런 초인을 뜻한다.

주장하기를, 이러한 초인을 만들기 위해선 아이는 "특별한" 교육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때문에 쥘리앵은 유아기 때부터 십대 중반인가, 후반인가.. 까지 집에 가둬져서 길러진다.

스포아닌 스포를 하자면, 쥘리앵은 끔찍한 어린시절을 딛고 살아남아 자서전을 출판하기까지 이른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아이가 가둬져 있던 어린 시절을 따라간다, 당시 쥘리앵의 시선으로.

이 시간은 자세하게 서술된다. 참혹한 아동학대의 현장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세세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책의 끝까지 질주해야 한다.

문장에 사로잡히거나, 이야기에 심취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서 이 글에서 벗어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거대한 조직을 고발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 당연히 쥘리앵이 이 책을 통해 희망과 성장의 감동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줄 알았다.

'이런 묵직한 과거를 가졌으나, 난 이렇게 저렇게 해서 살아남았어. 결국 이런 멋진 어른이 됐어.' 이런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그래서 괴로운 심리상태, 학대가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 걸 발견했을 때,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살아남았어' 부분은 고작 몇 페이지밖에 안되고, 그 몇 페이지는 물리적 벗어남에 대해서만 말하지, 심리적 벗어남에 대해선 거의 다루지 않았다.

어른이 된 쥘리앵은 작가의 말에서나 등장한다.

과거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 또한 어린 시절의 끔찍함만큼 자세하게 다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멀쩡히 살아남아 책을 써 냈다는 것 만으로도 누군가에겐 큰 감동과 용기를 불어 넣어 줄 수도 있다.

근데 일단 난 거기에 해당이 안 되는 것 같다.

읽는 잠시 동안 난 내가 모드 쥘리앵의 심리 상담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있었던 일을 얘기 해 주시겠어요?' 이 질문에 정직하고 자세하게 답하는 쥘리앵을 보며,

진짜 상담사가 아닌 내가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모르겠음.


하지만 쥘리앵이 겪어온 시간 자체에 내 취향의 잣대를 들이미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독자로써, 이 이야기가 전달된 방식에 대해 인터넷 한구석에다가 불평을 늘어놓는거지..


누구를 위한 책인가 - 타인의 트라우마를 간접적으로 느껴보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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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송은주 번역


드미1트리 쇼스타코비치(이하 쇼스타)의 일생을 줄리언 반스의 해석으로 풀어나간 이야기다.

사실 반스가 얼마나 정확히 쇼스타의 삶을 담아냈는지에 대해선 난 모른다.

하지만 픽션으로 분류가 되었으니, 책의 목적이 쇼스타의 삶을 단순히 나열하고자 쓴 게 아니란 건 확실했다.


쇼스타는 스탈린집권 소련 때부터 활동을 시작한, 당시에도 지금도, 러시아를 대표하는 거장 작곡가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쇼스타는 생애에도 생후에도 예술과 정치라는 꼭짓점 둘을 두고 가운데서 줄을 신명나게 탔다-라는 논란이 따라다녔다.

아니, 근데 소련 정부쪽에서 "너 쇼스타코비치 이새끼 줄 제대로 안타면 확 끊어버린다" 이러는데 광대가 안되고 배김?

아무튼, 예술가의 혼과 인간으로서의 생존욕이 서로와 타협하기 싫어하면서도 공존해야 하는 쇼스타의 내면을 잘 상상하여 담아냈다.

그런 자신을 혐오하며 살려내고, 음악을 사랑하며 질려하는,

이런 쇼스타를 동료들은 질타하고, 이해하고, 윗분들은 죽이려하고, 다독이고, 대중/평론가들은 비난하고, 찬양하고..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쇼스타의 삶과 마음 속을 그려냈다.

그렇다고 비운의 천재가 억까에 미쳐 점차 광인으로 변모해가는 그런 진부한 전개로 흘러가는 건 아님.

현실적이고, 잔잔하다.

재미있게 읽었다. 줄리언 반스는 글을 진짜 잘 쓰는 것 같다.

왠지 초등학생 독후감 같아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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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hite Castle

Orhan Pamuk

Translated by Victoria Holbrook


줄거리를 역량껏 설명해 보겠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함.

본인을 믿을 수 없는 화자로 여겨줬음 좋겠다.


이야기는 어떤 학자가 낡고 잊혀진 문서를 발견하며 시작된다.

학자는 이 오래된 기록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이 책을 썼다고 말하며 한가지 주의를 덧붙인다.

이 기록 속에서 발생한 몇몇의 사건들은 역사적으로 검증이 됐고, 몇몇은 듣도보도 못한 사건들이니 우리가 곧 읽을 이야기를 완전히 믿어선 안된다고.

한마디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인 셈이다.


문서에 적힌 이야기는 이러했다:

배경은 17세기(?)

베니스 출신 학자인 화자는 배를 타고 가다가 해적인가, 노예선인가.. 아무튼 오스만 제국 출신 깡패들로 인해 고고한 학자에서 죄수로 신분이 강등된다.

그렇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감옥에 가둬져서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도모하던 중,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화자가 '호자'라는 자에게 노예로 양도되었다는 것이었다.

호자는 화자의 도플갱어이다. 출신도, 신분도, 성격도, 같은 게 조금도 없지만, 외모 하나만은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아 있었다.

호자가 화자를 노예로 삼은 이유는 하나뿐이다.

어떤 열등감 때문이었다.

한때 막강했던 오스만 제국은 점차 노쇠해져만 가고 있었다.

유럽의 군사, 문화 그리고 학문, 특히나 과학에 함참 뒤떨어져 도무지 따라잡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근데 르네상스의 본거지인 이탈리아표, 어딘지 유식해 보이는 노예가 잡혀 와 있으니, 이놈이 가진 지식이 탐이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화자는 호자의 장바구니에 담기게 된 것이었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호자가 화자의 내면을 빼앗는 내용이다.

처음엔 지식, 그리고 다음엔, 기억, 인격, 습관까지.

화자 또한 비슷한 과정으로 호자를 흡수하게 된다 .


책의 후반에 가서는 지긋하게 늙은 호자가 화자가 되어 자신을 찾아온 어떤 젊은이에게 과거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옛날 옛적, 자신에게는 이탈리아에서 온 노예가 있었다며.


호자와 화자가 동일 인물인지,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허구의 인물인지, 서로 신분 바꿔치기를 한건지, 했다면 언제 했는지, 다 읽어도 모호하다.


이야기 곳곳엔 파묵의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있다.

위의 줄거리로 대충 알 수 있듯이, 주 가지가 되는 '자아'에 관한 주제와 더불어

파묵의 안타까움도 엿볼 수 있다.

주변에 발맞춰 성장하지 못하여, 과거의 부와 관행과 명성만을 붙잡고 주변의 번영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고여있는 나라를 바라보는 심정도 내제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가 뭘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머리를 굴리는 것 보단,

'작가가 뭘 보여 주고 싶은지'를 그냥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160장이란 얕은 장수임에도 불구하고 파묵은 읽는 이를 이야기 속으로 완전히 이동시켜주는 신통방통한 재주를 뽐낸다.

아름답게 글을 쓴다는 표현보다는, 맛있게 쓴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책에서 불꽃놀이 파티타임이 벌어지고 있다면, 나 또한 고양된 기분으로 현장에 가 있었고,

몇년간 집안에 처박혀 호자 주인님만의 ai 챗봇이 되었다면, 나도 덩달아 갑갑하고 같이 미쳐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됐다.

그렇게 파묵은 성공적으로 날 파묵의 이스탄불에 데려다 놓았다.


다만 부분부분 이 짧은 책 속 이야기가 늘어진다고 느낀 적이 몇번 있었다.

하지만 그건 웹소설과 틱톡으로 잘게 다져진 내 뇌 때문 아닐까

마지막으로, 호자가 귀엽다. 딱밤 먹여주고 싶은 초등학생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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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nt Sugar

Avni Doshi


안타라. 타라의 반댓말처럼 보이는 이름을 가진 안타라.

안타라는 딸이고, 타라는 엄마이다.

타라는 최근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안타라는 이런 엄마를 돌보고 돕는다.

다만, 쉽지만은 않다. 사는 내내 타라는 습관처럼 안타라를 괴롭혀왔기 때문이었다.

몇마디 말로 딸의 기분을 지하 끝까지 떨어뜨릴 줄 아는 재능을 가진 엄마였다.

치매가 시작되었다 한들, 타라의 오랜 습관이 사라질 리가 없었다.

안타라는 엄마를 좋아할 수가 없다. 엄마도 안타라를 좋아하지 않는걸.

그럼에도 사랑한다.

그래서 점차 기억을, 딸을 잃어가는 엄마를 잃지 않기 위해, 안타라는 모녀가 함께 공유했던 기억들을 되찾아주려고 한다.


인도의 푸네를 배경으로 한 이 책은 모녀관계 - 특히나 모녀 사이의 관점 차이로 인해 생기곤 하는 오해의 골을 다룬다.

이야기는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는 현재의 안타라와

안타라가 회상하는 두사람의 과거를 오고가며 진행된다.

안타라의 기억을 엿보는 우린 확신하게 된다, 안타라가 여태 그래왔듯이.

안타라 인생 최고 빌런은 타라라고.

그러나 이야기가 흘러가면 갈수록 작은 단서들이 나타난다. 안타라의 기억이 어쩌면 왜곡되어 쌓여온 걸지도 모른다는.


엄마가 고팠던 어린 안타라를 안지도, 찾지도 않던 무심했던 엄마.

그러나 엄마의 기억 속엔 품에 안기기만 하면 울고, 아빠만 찾던 어린 딸이 있었다.

안타라는 자신의 이름이 타라의 대적자란 뜻이라고 어렴풋이 믿고 있었다. 엄마가 자신을 너무 미워한 나머지 이런 이름을 지어준 것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타라는 딸이 자신처럼은 살지 말라는 뜻으로 이런 이름을 지어준 걸지도 모른다.

상처는 일방적으로 받기만 해 온 게 아니라, 사이 좋게 주고 받았고,

엄마는 어쩌면 공격하려는 존재가 아니라 최선을 다했던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관점이 스멀스멀 자리를 잡게 된다.


근데 사실 백번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아무리 포장해도 타라는 '신사임당류 어머니과'로 분류될 수 없음.

하지만 이 이야기의 목적은 막장 엄마 미화가 아닌,

안타라의 오래 된 믿음(엄만 날 낳은 걸 후회해 엄마는 날 싫어해)을 조금씩 부셔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만 쓰면 잔잔한 소설같지만, 사실 꽤나 막장이고 어딘지 후덥지근하고, 그럼.

잘 썼고, 다 읽고 나서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근데 너무 많은 재료를 한가지 음식에 때려 넣은 느낌이라 좀 꽉 막힌다. 스토리가 산으로 가는 건 아닌데, 열 좀 내리라고 선풍기 바람 쐬주고 싶어짐.

그리고 미국 언급이 많다. 뭔가 거슬린다.

이 책의 주인공도 광기가 번뜩인다. 앞서 말하진 않았지만 여기까지 읽었던 책 중 '시대의 소음'을 제외한다면 나머진 그냥 광인들의 향연임.

일부러 이런 책들만 고른 건 아니었는데 모녀관계에 관한 책까지 이러니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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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e

J M Coetzee


설명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바다를 표류하던 조난자, 수잔은 어떤 미지의 섬에 도착하게 된다.

무인도처럼 보이는 섬엔 사실 이미 입주자가 둘이나 있었는데,

이들의 정체는 벌써 수년째 이 섬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조난자 로빈슨 크루소와 그의 벙어리 노예, 프라이데이였다.

세사람은 일년 가량 함께 살다가 지나가던 함선에 의해 구조를 받게 된다.

그러나 크루소가 배에서 사망하여, 수잔만이 이들의 표류기와 노예 프라이데이의 소유권을 갖게 된다.


영국에 돌아온 수잔은 프라이데이와 자신의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출판하기로 결정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 이야기의 입이 되어줄 작가가 있어야 했다. 그렇게 찾아낸 작가가 '포', 작중 그저 포 씨(Mr. Foe)로 불리는 다니엘 디포였다.

하지만 포는 수잔의 이야기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수잔은 포에게 계속해서 설득의 편지를 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무인도에서의 날들을 회상하고,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는 나날을 보내며 수잔은 프라이데이를 바라본다.

혀가 잘려있고, 무심하고, 두명이 전부였던 무인도에서 줄곧 노예였던 프라이데이를

수잔이 모르는 시간을 살아오고, 누구도 엿볼 수 없는 기억을 한가득 가지고 있는 프라이데이를.


쿳시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크게 두가지로 보인다.

'타인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가의 자세' 와 '목소리를 잃은 타인' 특히나, 노예에 대해.


이야기는 출산과 출산에 관련된 다른 단어들을 자주 언급한다.

수잔이 애초에(표류 이전) 배를 탔던 이유는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딸을 찾기 위한 여정은 이른 종지부를 찍게 된다. 배에서 끔찍한 일을 당한 뒤 무인도에서 크루소와 프라이데이를 만나며.

수잔의 이야기는 실패작이었다. 딸은 찾지 못했고.

포와 수잔은 이야기란 작가에게 있어 일종의 자식이라는 내용의 말을 주고 받는다.

수잔은 포에게 자신은 이제 더이상 어미가 될 수 없으니, 씨앗을 심는 자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말을 한다. 그러니 포가 이 이야기를 잉태하길 바란다고.

거기에 포는 자신은 매춘부라 말한다. 씨를 빼앗고, 동의 없이 아이를 갖는 사람이라며.

또 거기에 수잔은 답한다. 난 당신의 뮤즈고, 우린 함께 부모가 되면 된다고.

(책이 없기에 정확하지 않다는 걸 감안해 주길 바람)


하지만 포는 부모가 되길 거부한다.

왜냐면 부모는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수잔의 정직한 이야기는 팔리지 않을 이야기다.

그래서 포는 수잔의 이야기를 가로채 바꿔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이 이야기를 수잔이 이끌어 나간다면, 주인공에게 확실한 동기와 결말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는지, 포는 수잔의 앞으로 한 아이를 보낸다.

"제 이름은 수잔이고요, 당신의 잃어버린 딸이에요. 드디어 만났네요. 보고싶었어요, 엄마." 아이는 수잔에게 말한다.

낯선 아이였다. 머리카락도, 눈도, 이름도.

수잔의 아이가 아니었다.

이처럼 포는 수잔의 이야기를 찢고, 덧붙이고, 기워서 도무지 본질을 알아 볼 수 없게 만들어 이게 네 자식이라며 수잔에게 내민다.

아무리 우겨도 저건 수잔의 피를 이어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수잔이 세상의 빛을 보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수잔, 크루소, 프라이데이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여인, 죽은자, 노예의 - 목소리를 잃은 자들의 이야기를.

포는 수잔의 이야기에 흥미로움이 부족하다는 태도를 취한다.

수잔은 포에게 프라이데이의 존재가 부족한 흥미로움을 충분히 채워줄거라고 반박한다.

누구에게 어쩌다가 혀가 잘려나갔는지,

왜 둘 뿐이었던 섬에서 크루소의 노예로 살아왔는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고향이 어딘지.

미스터리인 프라이데이를 풀어 나가고, 그 목소리를 되찾아주는 게 옳은 일이고 더 흥미로울 텐데. 흔한 모험기보단.

'난 입이 없다. 그리고 비명을 질러야만 한다.' 프라이데이를 보면서 이 문구가 생각났다(문구만 알고 안 읽어봄) - 특히 마지막 챕터를 읽으면서.

프라이데이는 누군가에 의해 모든 면에서 벙어리로 길러졌다.

그렇다고 프라이데이에게 할 말이 없는 게 아니었지만,

오로지 수잔만이 노예의 잘린 혀에 관심을 줬다.


결국 디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를 낸다.

"필요없는" 수잔은 없애고, 프라이데이의 관점은 완전히 무시한 모험 소설을


비슷한 분량의 파묵의 '하얀 성'과는 많이 다른 소설이다.

파묵이 짧은 장수로 날 이야기 속으로 흡입시키는 기인혈전을 보여줬다면,

이 책은 잘 쓰는 작가의 단편/중편 소설의 진가를 보여줬다.

모든 문장이 의미를 가지고 쓰여진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재미를 희생하지도 않았다.


독서모임, 고등학교 에세이에 쓰기 딱 좋은 책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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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찾아서
빅토르 E 프랑클

이희재 번역


아부지가 대학생 시절 읽으셨다며 추천해줌. 땡큐 아빠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심리 상담사인 빅토르 프랑클이 쓴 책이다.

나치 수용소의 잔인함이나 실태에 대해 고발하고자 쓴 책은 아니다.

물론, 수용소에 관련된 글을 쓸 땐 그 곳의 참혹함은 배제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지만,

이게 책의 주된 중심은 아니라 느꼈다.

제목 그대로, '삶의 의미를 찾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떤 상황에 있어도 삶의 의미를 계속해서 찾는 행위가, 그렇게 찾아낸 의미로 얻는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얘기한다.


수용소 안의 삶은 처참하다.

내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삶이 아닌, 단순 운으로 삶과 죽음이 나뉘는 걸 매일같이 경험한다.

춥고, 아프고, 배고프고, 두려운 삶을 살아간다. 인간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그 와중 내가 선택하고 바꿀 수 있는 한가지가 있다.

희망을 지닌 사람이 되느냐, 마느냐.

희망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사실 삶의 변덕엔 이겨낼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인간의 생존에 필요없다고 말해선 안된다고 프랑클은 말한다.

어떤 수용소에선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점차 사망률이 떨어지는 게 기록됐다.

'크리스마스엔 집에 돌아갈 수 있겠지,' 이런 단순한 희망 하나로 다들 삶을 놓지 않은 덕이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수용소의 크리스마스엔 기적은 없었다. 또 다른 하루일 뿐이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엔 수용소 내 사망률이 치솟았다.

전염병이 특별히 돈 것도 아니었고, 기온이 특히나 더 떨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삶을 어떻게든 연명하기 위해선, 언젠가 찾아올 행운을 붙잡기 위해선,

희망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희망은 어떻게 가지는 걸까?

프랑클은 수용소에 끌려가기 전, 심리학 논문 하나를 썼다.

수용소로 가는 기차에서도, 신체검사를 당할 때도, 품에 소중히 품고 있던 논문 다발은 결국 빼앗겨 소실된다.

잃게 된 논문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프랑클은 논문의 키워드를 수용소 생활 내내 되뇌었다.

당시 프랑클의 삶의 의미는 이 논문이었다(아내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그리고 이 논문을 지켜낸다는 건, 수용소 너머의 삶을 그린다는 뜻도 된다. 그게 프랑클의 희망이었다.

희망이란 '삶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만 생긴다고 프랑클은 주장한다.

세상의 변덕에 의해 쉽게 좌절될 수 있는 의미가 아닌,

나 자신만의, 내 삶만이 가질 수 있는 의미를.


수용소 안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더 많이 먹는 것' 혹은 막연히 '살아남는 것'으로 삼는다면,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의미는 충족되거나 꺾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서도, 삶의 의미를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것' 혹은 무작정 '행복해지는 것' 처럼,

운으로 흥망이 결정되는 '삶의 의미'를 두고 산다면, 스스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행운의 여신에게 토스하는 것 밖에 안된다.


오래 전에 쓰여진 책이고, 책의 막바지로 가선 프랑클이 개발한 심리차료법 '로고테라피'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료법) 를 심리치료계의 만병통치약처럼 단언하는 게 조금 의문스럽긴 하지만,

2020년대의 사람들이 읽어도 좋은 내용이라 느꼈다.

우리가 살아가는 날들을 홀로코스트에 비견할 건 아니지만..

현대 사회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걸 적극적으로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낸 사람들을 비웃기까지 한다.

대신 이걸 사면, 어떤 사람처럼 되면, 무엇을 하면, 부자가 되면, 네 인생이 완벽해 질거라고, 이런게 개성이고 네 삶의 의미라고 외친다.

과거 우리의 불행으로 호의호식하던 자들이 사람들의 자라나는 희망을 가위로 잘라내기 바빴다면,

현재는 뭐랄까, 살충제를 뿌려 아예 돋아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 같다. 그냥 내 생각임 아님 말고.

아무튼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인 것 같다.

나는 과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죽음이 내 코 밑까지 다가와도, 반드시 이루고 싶은 내 삶만의 의미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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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마음

이두은


미스터리 스릴러.

외지 돈이 들어올 구멍이 없는 작은 시골 마을에 드디어 갖다 팔 만한 획기적인 아이템이 등장했다.

'연쇄 살인마'라는 기똥찬 아이템이.

마을 사람들 여럿이 이 살인마 손에 죽어나갔지만 알게 뭐람.

'연쇄 살인마 관광'은 돈이 되는 걸.

마을은 기껍게 해당 살인마 테마의 축제를 벌이고, 기념품을 판다.

하지만 살인마가 마지막으로 살인을 저지른 지가 벌써 몇년째다. 세상엔 더욱더 엽기적이고 다작하는 살인마들이 시시각각 등장한다.

그렇게 서서히 이 작은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줄어가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의 스타 살인마가 긴 침묵을 깨고 정체되었던 사망자 수를 늘렸다.


살인사건이나 살인마를 누군가의 오락을 위해 소비하는 행위는 디킨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 논쟁을 낳아왔다.

미스터리 스릴러 책이, 이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에 따라오는 논란을 풍자로 다룬다는 컨셉.

재미있는 소설의 향기가 났다.

그, 그녀, 그것 등등 의 남용과 번역체같은 어색함만 제외한다면 표현력이 좋은 글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화 감상을 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몰입감있는 초반 덕분에 나머지 책의 전개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좋아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은 흥미로울 법한 소재와 작가의 솜씨를 기대하게 만드는 문장들로 증폭시킨 기대감을 빠르게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아는 작가도 아닌데 읽다가 실망스러워짐.


미스터리 장르는 특성상 스토리를 위해 캐릭터를 희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함.

하지만 이 책은 좀 너무함. 아까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무슨 발로 연기하는 배우들만 캐스팅된 영화를 보는 것 같음.

아니면 외계인들이 사람 흉내내고 있는 걸 지켜보는 느낌. 묘하게 번역체 나는 글 스타일 때문에 더 그럼.

그렇다면 스토리라도 좀 튼튼해야 할 텐데.

미스터리 스릴러에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없다.

'연쇄 살인마 관광 마을'은 작가가 이 컨셉을 작품의 주도적인 주제로 삼을건지, 아니면 플롯의 배경으로 삼을 건지, 자기 자신도 헷갈려하는 느낌이 들었고,

막판에 가선 스스로 이 풍자를 저 멀리 내다 버린다.

그래도 이두은 작가가 재밌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을거란 믿음은 있다.

근데 다른 책에서도 그, 그들, 그것 계속 이러고 있음 걍 덮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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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ost Wanted Man

John Le Carré


테러와의 전쟁을 중심으로 둔 스파이(?) 소설이다.

'이사'라는 체첸 출신 젊은 무슬림이 독일에 밀입국을 하며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과, 여기에 얽힌 여러 인물들의 각자 다른 이해관계를 다룬다.

이사와 직접적/개인적 접촉이 있는 사람들은 오갈곳 없는 이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려 하는 반면,

이사를 문서로/카메라 렌즈 너머로/길 건너편에서 주시하는 자들은 이 젊은 무슬림을 '테러리스트 꿈나무'로 점찍어 두고 경계한다.

하지만 돕는 자들 사이에서도, 경계하는 자들 사이에서도, 균열은 존재한다.

돕거나, 경계하거나, 다들 각기 다른 의도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게 내 첫번째 카레 소설이라 이 책의 전개 방식이 카레 고유 스타일인지, 이 이야기 한정의 결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내 눈에는 의도적인 결정이라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가정하겠다.

카레는 다수의 인물의 관점을 계속해서 바꿔 보여주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그럼으로 각 인물이 각자 추구하는 최선이 무엇인지,

그리고 각자의 최선이 얽히고 설키며 얼마나 어디까지 어긋날 수 있는지 까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카레씨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대충 이런 것 같다.

한 사람의 5%의 악함만을 보고 그를 악인이라 칭할 수 있나?

나머지 95%가 무엇인지 보지도 않고?

우리 모두에게 그정도 악함은 있지 않던가?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 전, 우린 서로의 관점을 먼저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폭력과 제압이 타협과 이해보다 먼저가 되는게 과연 옳은걸까?


테러와의 전쟁으로 야기 된 여러 질문들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구상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개쩌는 이야긴데?' 이러면서 쓴 것 같지가 않고

'알리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데 이걸 소설로 전해보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쓴 느낌이 너무 직격으로 느껴진다.

카레 아저씨가 잘 쓰는 작가라는 건 확실했다.

다만 잘 쓴 것과는 별개로, 재미가 너무 없다.

아무리 그래도 첩보 소설인데 재미가 이렇게까지 없으면 안되는 거 아닌가?

심지어 스파이의 비중도 그다지 크지 않다. 근데 또 이 비중 없는 스파이 부분이 제일 재밌었음. 진지한 회사 미팅 엿보는 느낌.

그 외의 나머진 그냥 지루했다. 중반엔 ㄹㅇ 어거지로 읽었음.

하지만 그렇다고 카레 책을 두번 다시 안볼 것 같진 않다.

이렇게 쓸 줄 아는 사람이 '개쩌는 이야긴데?' 이러면서 쓴 책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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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카오리

김난주 번역


이번 달 최악의 책 당첨이다.

스토리라는게 존재하지 않으니 줄거리는 필요치 않다.

대신 '아오이', 이 책의 주인공을 소개하겠다.


아오이는 기구한 사연이 있는 20대 여자다. 책 읽는 걸 좋아하고, 도서관에 가는 걸 즐긴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났고, 삼개 국어를 무리 없이 할 줄 안다. 잘생긴 일본 남친이 있었고, 현재는 잘생긴 미국 백인 남자와 사귄다. 어딘지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녔고, 돈이나 현실 같은 것들엔 전혀 쪼달리지 않는 초월한 존재시다. 틈만 나면 목욕을 하고, 와인을 매 페이지마다 홀짝거린다. 예쁜 수제 장신구 가게에서 취미 생활하듯 출근하고, 두시간짜리 점심시간을 갖는다. 불면증이 있고, 발이 작다(?)


아오이를 이루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떠먹여진다. 보여지는 게 아니다.

아오이란 이름표를 걸쳐둔 사람 모양 골판지에 이런저런 설정을 유성펜으로 적어놓고 이걸 인간이라고 내민 셈이다.

아무리 예쁘게 오려내 봤자 판자일 뿐인 아오이가 대체 인간관계는 어떻게 유지시키고, 애인이란 자는 저 종이조각에 왜 자꾸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애니의 나라에서 탄생한 작가라 투디와 인간 사이의 애정에 애틋함을 가지고 있나?

이런 식의 인물 표현이 거슬리는 건, 카오리 여사가 이 책의 컨셉을, '딴 건 다 모르겠고, 사춘기 소녀의 핀터레스트 보드 같은 분위기 조성 한번 해보자' 로 정했는데,

정작 그 분위기 조성이라는 게,

"자자 집중. 주인공 아오이는 소통이란 걸 할 줄 모르고, 타인을 자신의 우울함의 희생양으로 삼길 서슴치 않는답니다.

주인공병 걸린 것 같다고요? 주인공인데 그럴 만 하지 않음? 독자 여러분 그냥 맞장구치세요. 여기 이태리잖아요, 마침 비도 내리네요,"

주입식 가르침이니 성공적일 리가 없다.

10k 팔로워짜리 인스타피드만 봐도 카오리가 표현하고 싶었던 분위기를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거 다 버리고 분위기 하나에 올인한 것 치곤 참 안타까운 결과다.


심지어 아오이의 기구한 사연이라는 게 사실 현실에선 정말로 슬픈 사연일텐데,

이걸 그저 주인공의 슬픔을 위한 소품으로 사용한 것도 별로였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소품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

근데 그런 글을 쓰고 싶다면 와패드로 가야한다.

트와이라잇보다 가벼운데 계속 있어보이려고 하니 어이가 없다.


에쿠니 카오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딘지 서양 문화와 정신 질환에 대한 페티시가 있어 보였다.

아오이라는 본인의 메리수로 이러한 욕망을 대신 살고 싶어하는 걸로만 보였다.

그렇게 핏줄만 동양인인 유러피안 아오이의 우울함을 이탈리아라는 배경에 힘입어 분위기화 시키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쓴 건 일본인의 시선으로 본 서양의 캐리커쳐였다.

카오리가 딱 하나 잘 한 것은, 제목에 적합한 소설을 써 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냉정과 열정 사이, 맹탕이다.


여기까지 읽고 있는 독붕이가 있진 않을 것 같지만, 만약 있다면 제 짜증이 과하다고 느껴질 법도 하다.

기분 좋게 (늦은) 7월 결산을 읽으러 들어왔다가 이게 뭔 봉변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해해주길 바란다.

우리 도서관은 제가 사랑하는 홈즈 전집을 처분하고 이 별볼일 없는 책이 무려 십년 이상 책장 자리를 차지하도록 허용하였다.

저 같은 찐따가 도서관 사서한테 가서 "어... 어.. 아오이보다 벨라 스완이 더 입체적이고, 책이 맹탕이고" 주저리주저리 댈 순 없잖아요

이렇게라도 한풀이를 해야죠.

아니 근데 대체 어떤 로맨스 작품 여주인공의 "완벽한 남자친구" 이름이 마빈임? 마빈??


아무튼 에쿠니 카오리.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두번 다신 안 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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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in Turmoil

Eric Hazan


대충 '파리의 혼란'이란 뜻을 가진 제목과 어딘지 긴박해 보이는 표지를 보고 파리가 겪는 문제에 대한 글일 줄 알았는데...

그냥 투정에 가깝다.

파리를 엄청나게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칭얼거림이 담긴 to. Paris 러브레터인 셈이다.

나 소싯적 파리는 말이지.. 요즘 같지 않았단 말이지... 이런 느낌임.

근데 그렇다고 예전 파리를 무작정으로 애정하는 건 아니고.

하잔 할아버지 머릿속에 구상해 둔 완벽한 파리가 있는데, 지구상의 파리가 머릿속 유토피아와 일치하지도 않고, 비슷해지려는 기미도 보이지 않아서 심술이 나 보채는 것만 같다.

하잔 할아버지의 불평이 딱히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젠트리피케이션, 인종 문제, 못생긴 현대 건축물들, 과거 지배자들에 대한 지나친 우상화, 불평할 만 하죠. 근데 티비 보면서 에잉 쯧쯧 세상이 말세야, 이런 궁시렁거림을 다른 사람이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한다며 출판하는 건 좀 아니잖아요

아 그리고 하잔은 파리지앵 감별사이기까지 함. 참으로 바쁘시다.

발자크, 보들레르, 위고에겐 두말없이 파리지앵이라고 하지만,

프루스트는 참된 파리지앵이 아니라고 하신다.

뭐 특별한 어떤 방식으로 파리 산책을 해야만 파리지앵이 된다고 하는데 프루스트는 해당 보법을 잠금해제 하지 못해 돌팔이 파리지앵으로 불려야 한다나 뭐라나.

저야 파리지앵도, 파리지앵 감별사도 아니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읽다보면 혼란은 파리가 아니라 에릭 하잔 할아버지의 마음 속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세상이 내 뜻대로 주물러지는 찰흙이 아니니, 변화하는 세상을 받아들이면 어떠겠냐는 위로를 전해주고 싶어진다. 원하는 파리는 아니지만 이게 할아버지가 가진 유일한 파리니까


사실 하잔 할아버지가 글을 못 쓰는 건 아니다. 꼰대 성향이 조금 있어서 그렇지.

본인이 파리에 대한 애정이 있고 추억을 쉼 없이 곱씹을 정도의 나이대의 사람이라면 읽을 만 할 거라고 생각한다.


누굴 위한 책인가 - 파리지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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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er Villain

John Scalzi


SF 란 탈을 쓴 코미디 책이다.

본점 SNL 작가 회의방에 대한 얘기를 몇번 들어봤다.

웃음 좀 친다, 하는 사람들이 이 방 안에 우르르 둘러 앉아서 아이디어를 툭툭 던지는 회의가 있다고 하는데,

회의 초반 나름 진지했던 분위기는 점차 서로서로를 더 크게 웃기려는 목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누가누가 더 자극적이고 엽기적이고 과장된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는지 일종의 배틀처럼 말이 이리저리서 날라다닌다고 한다.

근데 이제 이렇게 탄생한 프랑켄-skit 을 광기의 현장에 없던 사람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어쩐지 그때만큼 재밌지가 않다고..

이게 SNL 이 걸핏하면 민망해지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스칼지가 날 앞에 앉혀두고 혼자 아이디어 회의 차력소를 하는 걸 보여주는 느낌이다.

그 광기의 현장에 있는 난 재밌긴 한데 여러분에게 재밌게 설명할 수 있을 진 모르겠다.


일단 타자기를 두들기는 스파이 고양이들이 나온다(귀엽다).

노동조합을 인정해주기까지 파업을 하겠다는, 입이 매우 거친 돌고래들도 나온다(오디오북으로 마르크스 완독함)

시원하게 폭탄도 빵빵 터져주고, 세기의 로맨스도 갑작스럽게 등장한다.

나르시스트 50 소시오패스 50 황금비율의 테크브로들이 악당들에게 굽실거리는 것도 나오고,

네포베이비 악당들,

줌미팅 하는 법을 몰라 식은땀 흘리는 슈퍼빌런들까지 볼 수 있다.

특히 주인공이 히치하이커 시리즈의 아서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혹은 하남자의 탑 등반긴가 하는 웹소설에서 나오는 주인공과도 흡사하다.

심지어 스칼지는 우리의 주인공에게 찰리라는 이름까지 붙여줬다.

고양이, 돌고래, 찰리. 귀엽다.

여러모로 재밌어 보이지 않음? 취향이 유치하다고? 죄송해요 유치해서..


튼튼하고 진지한 스토리라인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전혀 추천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칼지는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단 한가지를 훌륭하게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장난스러운 글로 독자에게 웃음 선사 - 라는 목적을 아주 잘 달성했다.

진지함이라곤 하나도 없는 가벼움이 매우 좋았다.

잘 읽었음

돌고래들의 대사를 몇 자 실어보도록 하겠다.


(pg 7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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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의 훌륭한 대사들과 더불어 찰리의 성격까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번역이 된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데

"Finger fuck! Finger fuck!" 을 한국어로 살려서 번역할 수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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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iathan

Paul Auster


신문을 보던 인기 소설가 피터는 건너편 동네의 공원 풀밭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가 핸드메이드 폭탄을 잘못 다뤄 사망한 사건을 읽게 된다. 피터는 바로 직감하게 된다.

여기 이름을 알 수 없는 조각난 남자가 다름아닌 자신의 베프, 색스(Sachs)? 삭스? 삭스라 부르겠다, 어감상. 자신의 베프, 삭스라는 걸.

피터는 자신의 자랑스럽고, 천재적이고, 반짝거렸던 친구이자 동료 작가가 어떻게 그런 바보같고 의문스러운 죽음에 이르렀는가 - 를 회고록 형식으로 써 내려간다.

자신이 삭스를 처음 만났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그러니까 한마디로, 피터가 그려나가는 삭스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우린 이 책 내내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쯤에서 책의 제목을 살펴 봐야 한다.

레비아탄.

거대한 심연의 괴물로 알고 있다.

이 책의 무엇이 거대 괴물인 걸까?


우리의 인생은 나만의 선택으로 갖춰나가는 게 아니다.

타인의 선택과 변덕은 우리가 걷는 길을 때론 우연이란 이름으로 작고 크게 비튼다.

그렇게 우린 삶의 어떤 한 분기점에 다달았을 때, 걸어온 길의 모양을 뒤돌아 살피며,

이 모양이 우연으로 만들어진 건지, 아니면 애초부터 이런 모양이 될 운명이었는지, 의문을 갖곤 한다.

삭스에게 있어 삶의 모든 굴곡은 운명이었다.

더불어 삭스는 현재 자신의 삶이 이 "운명"의 종착지가 아니라 믿고, 계속해서 자신의 삶 너머의 "진짜 운명"을 찾아 떠돌았다.

그러니 본인이 가진 재주(글쓰기)나 인연(초미녀 아내)에 안주할 수 없던 것이었다.

심지어 이 "운명"이란 것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삭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우연이라면 과거를 왜곡해서까지 어떤 "거대한 운명"에 갖다 붙이려 했다.

알지도 못하는 제 출생시간을 멋대로 단정지어 히로시마 폭발 시간과 어거지로 연관을 시키는 모습만 봐도

삭스는 장래희망이 해리포터 혹은 오이디푸스라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삭스는 자신의 모든 걸 버린채 운명을 찾다가 끔찍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렇다면 레비아탄은 대체 무엇일까?

삭스를 죽인 그의 "운명"인 걸까?

아니면 현실에 안주하지 못한 채 그놈의 "운명"이란 환상을 좇는 삭스의 집착을 말하는 걸까?


사실 오스터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전자 같았고, 내가 느낀 건 후자였다.

'우연으로 촘촘히 엮인 무시무시한 운명에 잡아 먹히게 된 가여운 사내 삭스'가 아닌,

'운명이란 사이비에 지 인생을 밥먹듯 베팅하는 한심하고 멍청한 사내 삭스'로 밖에 안 보였다.

예, 삭스의 레비아탄은 그냥 삭스 자신으로밖에 안보임.


오스터는 이 운명론 광신도 삭스의 캐릭터 스터디를 우리더러 읽으라고 내밀고 있다.

아무런 동기나 이유가 없는 변덕쟁이 삭스를 독자에게 이해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해를 넘어 무슨 '삭스 영웅담'을 삭스의 극성팬인 피터의 시선을 빌려 썼다.

미안하지만 삭스는 무매력을 넘어 비호감이다.

캐릭터 스터디 방식으로 전하는 미스터리 추리 장르인 듯한 이야기에서

'캐릭터'와 '미스터리'를 동시에 맡고 계시는 삭스씨가 이토록이나 흥미롭지 못하다면,

당연히 이야기는 별로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 오스터가 써 내는 생동감 있는 뉴욕은 좋았다.


누굴 위한 책인가 - 오스터의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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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제주 4.3 사건을 다루는 책이다.

읽던 도중 울었음. 밖이라 화장실로 급히 도망갔으나 이미 주변 사람들은 저의 나약함을 두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에게도 추천하여 눈물 동지가 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완독 후 "응 슬프네~" 한마디가 전부였다. 어머니는 강하다.


한강의 책은 이전에 딱 한권 읽어본 적 있었으나, 그다지 좋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 사실 이 책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진 않았다.

책의 초반만 해도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으며 장을 빠르게 넘겼다.

너무 서정적이었고, 주인공이 한국 소설 이곳저곳에서 왠지 자주 본 듯한 '창문을 전부 열어둔 텅 빈 집' 을 연상시키는 인물이어서 그냥 시큰둥했다.

하지만 이 모든게 다 의도된 바 라는 걸 차츰차츰 알아가게 된다.


작가인 주인공은(이름 기억안남ㅈㅅ) 몇년 전 '제주 4.3'에 관련된 글을 쓴 뒤, 제주에 관한 모든 걸 덮어두고 살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제주는 계속해서 주인공의 삶에 악몽으로 찾아와 괴롭힌다.

너무 괴롭힌 나머지 주인공은 꿈 때문에 현실마저 놓아버리려는 지경까지 이르고 만다.

그때, 제주도민 친구가 주인공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지금 서울의 병원에 있는데 와 줄 수 있겠냐고.

병원에서 만난 친구는 사고로 손가락을 절단해 접합 수술을 마친 뒤였다.

무슨 도움이 필요하냐, 물어보니, 친구는 주인공이 제주도로 가서 자신의 앵무새를 돌봐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 부탁에 도착한 제주도는 흰 눈에 뒤덮여 있었다.

이 눈을 헤치고 주인공은 가야만 한다, 친구의 집으로, 앵무새를 살리러.


이야기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주변으로 그려지는 배경과,

이탤릭체로 적어지는 4.3 사건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이게 동화책이라면 이탤릭체가 아닌 책의 대부분은 그림이라고 보면 되고,

이탤릭체 부분은 글이라고 보면 된다(적어도 난 그렇게 읽었다).


글로 그리는 그림답게 "그림" 부분은 시적이고, 명확하지 않다.

이해가 쉽게 안 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그림이 있다.

눈은 차갑지만, 눈송이는 하늘하늘 부드럽게 내려온다.

산 자의 피부 위에선 녹아 사라지지만, 죽은 자의 피부 위에선 차곡차곡 소리없이 쌓여간다.

그 밑에 이탤릭체로 구분지어 쓰여진 부드러운 제주 방언이 적혀진다.

익숙하지 않은 말투와 기울어진 글씨라 읽기에 조금 더 집중해야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또렷하게 전해진다.

그 부드러운 말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저 눈 아래의 시체들이.

그림과 글이 서로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잘 쓴 글이다.


한강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제목에 적혀져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

그게 제주가 되었든 다른 과거 역사가 되었든.

손가락이 절단된 친구는 접합 수술을 마친 뒤에도 한동안 치료를 이어가야만 한다.

왜냐면 수술만으론 성공적인 접합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재활 치료는 몇분마다 한번씩 바늘로 수술 부위 생살을 마구 찔러 피를 내는 방식인데, 식사시간, 수면시간을 가리지 않고 하루 종일 반복된다.

이걸 하지 않을 시 손가락은 다시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고 친구는 알려준다.

이렇게 괴로울 바에 그냥 포기하고 없는 대로 살면 안되겠냐는 주인공의 말에 친구는, 그렇게 하면 살아가는 내내 환상통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답한다.

과거 역사를 덮고 살아가려던 주인공은 환상에 시달린다.

처음엔 환상과 현실의 구분이 되었지만 점차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두개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이건 저의 추측이긴 한데..

초반엔 손가락을 잃고 환상통을 겪고 있는 몸통의 입장에서 쓰여지다가,

주인공이 제주에 들어서고 나서 부턴 '떨어져 나간 손가락의 세상' 으로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님말고

떨어져 나간 손가락은 말한다.

난 아직 썩어 사라지지 않았고, 잊혀지지 않겠다고.

몸통 너도 나 없인 완전하지 않으니, 괴로운 과정을 겪더라도 순순히 나와 합체하는게 좋을 거라고.


사람들은 사랑했던 잃은이들과 작별하지 않음으로 사랑을 이어간다.

한강은 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작별하지 않아야 한다.

역사는 잊었으나, 아직 우리가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는 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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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Circus

Erin Morgenstern


틱톡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었다.

화면 속 사람이 말하길, 이 책은 19세기 영국 서커스에 관한 내용이고, 작가의 표현력이 좋은 덕에 분위기가 환상적이기까지 하니 반드시 읽는 걸 추천한다고.

거기에 설득되어 도서관에 가보니 책이 '어른 SF' 로 분류가 되어있기까지 했다.

19세기 SF 서커스?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 200페이지 쯤 읽었을 때, 난 이 책이 도서관 누군가의 실수로 잘못 분류되었음을 인지하고 글을 읽고 있었다.

SF 가 아니로구나 어른 도서가 아니라 어린이 도서였구나.

내 취향엔 영 아니지만, 만약 옆에 꼬맹이 사촌동생이 있다면 앉혀놓고 읽어주기 딱 좋겠다, 이런 감상을 하며 읽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의 목표 독자층이 아님을 감안하고 읽었을 땐, 그러려니 했다.

근데 책의 중반쯤인가.. 그 쯤에 갑자기

"손을 맞잡았더니 절정에 이르렀다" 이런 표현이 나오거든요. 진짜임

곧 뒤에 ㅅㅅ까지 함

SF 는 확실히 아님 - 이건 도서관의 오류가 맞았다.

근데 어른 도서로 출판된거? - 이건 모건스턴의 오류임. 어린이 도서에 왜 성적 묘사를 넣음?


앞서 독후감을 적었던 '냉정과 열정 사이'와 궤를 같이한다.

둘 다 '모든 걸 포기하고 분위기에 올인함' 이 컨셉이 로맨스 소설들이지만 궁극적으로 분위기 조성마저 실패한 책들이다.

다만 '냉열사'는 단조롭게 고인 삶으로 사골국을 끓이는 느낌이었다면,

이 소설은 너무 지나친 나머지 '과유불급'이 사실 소설의 주제가 아니었을까 의심을 하게 된다는 다른 점이 있긴 하다.

모건스턴은 외친다, 매 페이지마다. "야 내 상상력 개쩔지 않냐? 감탄하고 싶어지지?"

아뇨. 일단은 상상력 개쩔지 않고요, 글 못 쓰세요. 이상한 꿈 꾸고 비몽사몽 폰 노트 어플에 적어둔 거 제발 낭독하지 말아주세요.

무언가가 정말로 환상적이기 위해선 강약조절이 필요하다.

흑백 화면에서 살던 도로시가 문을 열자 컬러 화면으로 드러나 펼쳐지는 오즈가 더 환상적일까,

매시간 매초마다 여기 마법이요, 여기 환상적임요, 남발하는 책이 더 환상적일까. 모건스턴 여사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아무리 다 포기했어도 캐릭터를 이정도로 포기한 책은 처음 본다.

아까 '냉열사'의 아오이가 골판지였다면 여기 나오는 친구들은 전부 A4 용지임. 인간 형태로 오려진 것도 아니라 그냥 전부 210x297 직사각형 a4 임


생각해보니 성적 묘사가 없다 한들 어린이 용으로도 그다지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 애들도 입맛이 있지..

이 책은 간절하게 '해리포터' 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고 싶어한다

그럼 어린이들은 해당 책들을 그냥 읽으면 될 것 같다.

어른들도 마찬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