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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결산 독후감 (스포)두서도 알맹이도 없음오류도 많음.. 책을 다 반납해서 We Can Build YouPhilip K Dick전자양의 프리퀄까진 아니지만, 대충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시뮬라테론인가, 시뮬라론인가, 암튼 저 필케딕식 안드로gall.dcinside.com


이 글 끝이 잘려서 여기에 나머지를 올리겠다.

알바가 자꾸 글삭을 한다. 왤까

그만 잘랐으면 좋겠다.

이 글이 세번째 재업인데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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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Who was Thursday, a Nightmare

G K Chesterton


미스터리 스릴러 스파이 소설의 탈을 쓴 기독교 책이다.

재밌게 읽었다.

그러나 이건 바로 이전에 읽었던 책만 아니었다면 절대 존재하지 않았을 호감이다.

왜냐면 난 고된 독서시간을 즐기는 자학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어렵고 난 똑똑하지 않다.

재치 있는 글이라서 웃기고, 단편적인 상황의 이해가 어려운 건 아닌데..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속뜻이 대체 뭔지 쉽게 알 수 없다.

하지만 난 내 눈알이 읽고 있는 글이 남의 핸드폰 노트 앱 속 횡성수설이 아닌 것 하나만으로도 즐거웠다.

참고로 이제부터 읽을 글은 횡설수설 맞음 ㅈㅅ


이야기는 두명의 시인이 길거리 디스 배틀을 하며 시작된다.

붉은 머리의 루시안 그레고리 vs 주인공 가브리엘 사임

주제: '시란 몰까?'

루시안은 주장한다, 제멋대로이고 무질서한 세상, 이 아나키를 그대로 무질서하게 담아낸 게 옳게된 시라며.

가브리엘은 거기에, 인간은 무질서한 세상 속 쌓아올린 질서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고로 시 또한 규칙을 따라 써져야 하는게 맞다고 맞받아친다.

체스터튼은 크리스천이니, 루시퍼를 연상시키는 루시안과 천사의 이름을 가진 가브리엘 중 누구의 말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지 알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가브리엘은 말빨로 루시안을 내려 찍으며 디스전을 종료시킨다.

그렇게 치열한 전투가 끝난 후, 루시안은 가브리엘을 '아나키스트 비밀 모임'에 데려간다.

세계관 속, 그리고 체스터튼이 살고 있던 당시 사회 속 아나키스트란 현재의 테러리스트라고 봐도 무관하다. 다이너마이트 암살에 미친 사람들임.

오늘 이 아나키스트들은 새로운 '목요일'을 뽑는 투표를 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체계적인게 웃기다. 아나키스트들인데

아무튼 알고보니 이들 사이엔 직책이 존재했고, 그 중 고위 간부 일곱명은 요일 이름 하나씩을 부여받게 된다. 당연히, '일요일'이 최고 머리임.

루시안 그레고리는 차세대 목요일이 되기 위해 동료 아나키스트들 앞에 나서서 자기 pr 연설을 선보이지만,

갑자기 가브리엘이 끼어든다. 가브리엘은 화려한 언변으로 아나키스트 형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형님들의 무지막지한 지지를 받으며 가브리엘은 간부, '목요일' 이 되고 만다.

아나키스트와는 반대되는 신념을 가진 가브리엘이 대체 왜 간부자리를 차지한 걸까?


사실 가브리엘은 아나키스트들을 잡기 위해 특별히 고용된 비밀 경찰이었다.

비밀 경찰 가브리엘은 하룻밤만에 아나키스트 고위 간부가 되어 간부 티파티에 초대를 받게 된다.

그렇게 참석하게 된 티파티에서 모든 요일들을 만나게 된다.

지나가듯 봤을 땐 평범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나키스트 답게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그런 묘한 인간들이었다.

월요일은 미남 같아 보이나, 얼굴의 반은 웃고, 반은 웃지 않는 기묘한 미소를 가지고 있다.

화요일은 이들 중 가장 대놓고 아나키스트처럼 생겼는데, 마치 짐승이 양복을 입고 있는 것 같아 보일 만큼 털보였다. 털 속에 박힌 두 눈은 얼핏 보면 스카이 테리어를 연상시켰다.

수요일은 인상이 진한 미남이었는데 너무 진한 나머지 저기 페르시아 그림에서 볼 법한 무지막지한 약탈자를 연상시켰다.

금요일은 이 자리에서 당장 숨이 멎어도 이상하지 않을, 창백한 안색의 뚱뚱하고 늙은 교수였다. Worms 교수(지렁이 교수) 라 불린다.

토요일은 Dr. Bull(불도그 의사선생), 젊은 의사 청년이다. 젊고 깔끔해 보여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나, 눈매를 완전히 감추는 새까만 설글라스 때문에 어쩐지 기이하고 무시무시해 보인다.

일요일은 거대하다. 인간답지 않은 거구의 사내다. 위압감이 장난 아니게 뿜어져 나온다.

역시 아나키스트들. 죄다 미친 사람들처럼 생겼다고 가브리엘은 생각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니,

짜잔-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들이 사실 가브리엘처럼 비밀경찰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의사 청년은 선글라스만 치워내도 선량한 눈매의 순박한 청년이 되었고,

금요일, 다 죽어가는 지렁이 교수는 사실 실리콘 인형탈을 쓴 배우 출신 경찰이었다.

'뭐야, 우리 적이 아니라 아군이었어?'

서로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 여섯명의 비밀경찰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안도감과 함께 혼란을 느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일요일'이란 남자를 찾아야 이 수수께끼가 풀리겠다고.


몇가지 명확한 주제들이 눈에 띈다.

그 중 하나는, 아나키즘에 대해 체스터튼이 가진 생각들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당시 아나키즘이란 현재의 테러범과 동급의 위1상을 가진 자들이라,

아마도 체스터튼은 아나키스트들과 그들의 사상에 위협을 느꼈던 것 같다.

다른 주제는 편견, 고정관념이다.

이 두가지 주제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다뤄진다.

가브리엘은 [아나키스트 = 멀쩡한 신사일 리 없음] 이란 공식을 머릿속에 두고 사람들을 관찰한다.

양복을 잘 갖춰 입었으면, 존중받는 직업이나 높은 사회계층에 속해 있다면,

당연히 정상적인 사고방식의 사람들이겠거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색안경 때문에 티파티에서도 참석자들이 같은 비밀경찰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함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나키스트가 멀끔할 리가 없으니까.

이런 주인공의 고정관념이 벗겨져가는 과정에서 우린 -진짜 아나키스트-들에 대해 경고하는 체스터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You've got that eternal idiotic idea that if anarchy came it would come from the poor. Why would it? The poor have been rebels, but they have never been anarchists; they have more interest than anyone else in there being some decent government. The poor man really has a stake in the country. The rich man hasn't; he can go away to New Guinea in a yacht. The poor have sometimes objected to being governed badly; the rich have always objected to being governed at all. Aristocrats were always anarchists..."

"When duty and religion are really destroyed, it will be by the rich."


더 깊게 들어가자면,

체스터튼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는 한가지 주제가 있다. 주제라기 보단, 위로라고 할까... 체스터튼의 깨달음이라고 할까...

좌절하지 마라, 네가 보는 혼란은 그저 세상의 뒷머리일 뿐이니.

뭐 이런 느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느꼈다.


아나키스트 간부 티파티부터 '일요일'을 마침내 다시 마주하기까지의 여정이 이 책의 대부분이다.

가브리엘의 이상한 모험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루시안 그레고리가 초반에 주장했듯, 세상은 괴기하고 무질서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초반에 나왔던 '시란 몰까' 논쟁처럼, 이 무질서에 반론이라도 하는 것 처럼,

체스터튼은 주인공의 이상한 모험 속에 존재하는 어떤 규칙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아까 나열했던 요일들을 다시 보면 성경의 천지창조를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생김새나 이름으로

(반으로 갈라진 얼굴/빛과 어둠 - 월요일, '스카이' 테리어/하늘 - 화요일, 물고기랑 새한테 먹히는 지렁이(?) - 금요일),

혹은 작 중 행적으로

(수요일 - 푸르른 풀밭에서 정체 밝혀짐, 토요일 - 불도그 의사, 이름도 성격도 개(착한개)).

아나키스트같아 보였던 저 자들은 사실 비밀 경찰들이었고,

미친사람들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이야기 속의 규칙을 따라 내내 신의 창조를 표현하던 자들이었던 것이었다.


처음 루시안과 가브리엘의 디스전처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내가 혼란에 취한 아나키스트가 될 건지, 혹은 그 속의 아름다운 규칙이란 본질을 볼 건지.

마찬가지로 '일요일'이란 남자를 마주했을때,

그를 보며 세상의 혼란이란 뒷면만을 바라보며 선과 악을 논할건지,

아니면 그 앞면을 보며 혼란 속의 고요와 평화를 볼 건지.

혹은 '일요일'을 상징하는 앞면만을 바라보며 '당신이 어둠을 알아? 불행과 절망을 알기는 하냐고' 란 물음을 던지기만 할건지,

아니면 태양에도 뒷면이 있다는 걸, 일요일은 이 모든 걸, 행복이든 절망이든, 다 겪어 봤다는 걸 알아볼 건지.

두가지의 상반되는 시선들을 보여준다.


데미안의 싱클레어는 부모님이 만들어 준 알을 깨고 우리집 울타리 밖의 세상으로 나아간다.

알 속의 세상은 안정적이고, 따뜻하다. 부모님을 통해 알게 된 신/종교는 절대적이고 의롭다.

하지만 알 밖을 보면, 세상은 엉망이고, 날카롭다. 신의 정의로움과 선함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게다가 내 본성은 저 혼란에 휘말리고 싶어한다.

체스터튼이 몇살에 이 글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추측으론 자신의 알을 깨는 과정에서 느낀 혼란스러움, 믿음에 대한 의심/질문들을 이 이야기를 통해 풀어나가고 싶은 것 같다.

종교적 방황 끝 이게 체스터튼이 내린 결론이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But when I saw him from behind I was certain he was an animal, and when I saw him in front I knew he was a god."

"When I see the horrible back, I am sure the noble face is but a mask. When I see the face but for an instant, I know the back is only a jest. Bad is so bad, that we cannot but think good an accident; good is so good, that we feel certain that evil could be explained."

"We see everything from behind, and it looks brutal. That is not a tree, but the back of a tree. That is not a cloud, but the back of a cloud. Cannot you see that everything is stooping and hiding a face? If we could only get round in front-"


체스터튼을 읽게 된 계기는 정말로 가벼웠다.

도서관에서 빌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안빌린 책 - The Floating Admi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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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tection Club' 회원들이 릴레이 소설 형식으로 써서 출판한 추리소설임.

(추리소설 황금기엔 the Detection Club 이란 영국 추리소설가들의 소모임이 있었다고 한다. 먹고 마시며 서로 조언하고 잡담하는 그런 귀여운 모임이라고 함.

거물들 많음: 크리스티, 도로시 세이어즈, 존 딕슨 카, 앤소니 버클리, 체스터튼 등등)

책 표지에 체스터튼 써져 있는 걸 보고 갑자기 저 사람 책이 읽고 싶어져서 그날밤 바로 읽기 시작했음.

추리소설일 줄 알았는데 머리 쪼개지는 줄

찾아보니까 체스터튼은 추리소설로도 유명하지만, 종교적, 특히 가톨릭 서적 쪽의 거물인 것 같다. 알았으면... 선뜻 읽진 않았을 듯

이해를 못한 부분이 많다. 이해했다고 생각한 부분들도 사실 확실하지 않다. 너무 어려움

제목도 이해를 못함. '목요일이었던 남자 - 악몽' 이런 제목이 왜 붙여졌는지 모르겠음.

'목요일이 된 남자 - 모험기' 이러면 이해가 가겠는데.

주석본도 있다고 하니 관심있는 독붕이들은 그냥 처음부터 주석본을 읽기 바란다.

저는 재독은 안할 것 같으니 만약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자세한 독후감을 적어주세요..


근데 책 속의 종교적/철학적 의미, 숨겨진 뜻을 찾아내려 하지 않더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릴때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한다는 걸 몰라도 재밌게 읽었듯,

체스터튼이 그리는 으스스한 런던, 상황들, 괴상한 모험, 재치 있는 표현력, 웃김과 진지함을 넘나드는 완급조절,

이런 것들만 보더라도 충분히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결론: 이 사람도 참 글을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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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 What is it Good for?

Ian Morris


일부러 이런 건 아닌데

'목요일이었던 남자'와 (애매하게)키워드를 공유한다. 이 책 또한 안티 아나키즘 책이다.


역사책이다. 아주 옛날부터 현재까지를 다루는 '총균쇠'(안읽어봄) 같은 방식으로 쓰여졌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안 모리스는 인류의 역사 중 전쟁에 집중하는 책을 썼다.

정확히는, '전쟁은 인류를 발전시켰어. 나쁘지 않아, 오히려 좋아'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 온 인류의 역사를 저 말 하나에 욱여넣는 책이다.


모리스의 주장은 이렇다.

1. 인간에겐 주체할 수 없는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다.

2. 인간의 타고난 폭력성은 외압/더 큰 폭력으로만 다스려진다.

3. 때문에 인간이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선 리바이어던(토마스 홉스) 즉, 강력한 국가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4. 리바이어던이 형성되기 위해선 "효율적인 전쟁"이 있어야 한다.

5. 개 쎈 리바이어던 너무 좋아^^


모리스는 전쟁을 두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효율적인 전쟁과 비효율적인 전쟁으로.

효율적 전쟁은 거대 리바이어던이 전쟁을 통해 주변 소규모 국가/집단들을 집어 삼기는 걸 성공했을 때를 일컫는 말이다.

비효율적 전쟁은 거 거대 리바이어던이란 골리앗에게 소규모 나라들이 사정없이 돌팔매질을 해 정신을 못차리게 만들었을 때를 말한다.

효율적 전쟁은 발전을, 비효율적 전쟁은 퇴보를 낳는다.

좀 더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효율적인 전쟁은 이안 모리스의 주장 '전쟁은 이로워, 우릴 성장시키거든' 에 도움이 되는 전쟁들인거고,

모리스의 주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전쟁들은 걍 비효율적이라 부르는 거임.

그리고 "효율적 전쟁"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합체" 과정이 다른 말로 뭐임?

노예제도, 불평등, 집단 학살, 강간, 억압, 레츠고 ㅅㅂ

예 전쟁 참으로 이롭습니다.


사실 초반은 괜찮았다. 책의 초반은 이안 모리스가 본인의 고고학 배경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역사 강의 시간이었다.

솔직히 기억에 남은 건 하나도 없지만, 읽으면서, 흥미롭네, 이 아저씨 고고학 오타쿠네, 팩트만 말하는 것 같으니까 믿음직스럽네, 이러면서 읽긴 했다.

모리스는 초반에 계속해서 강조한다. '전쟁은 이득임' 이 주장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거라는 걸 본인은 인지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 책은 전쟁이 불러오는 부정적인 상황들/감정들/죽음들 - 나무들을 보기 위해 쓰여진 게 아니라,

아주 멀리 떨어져서 인류가 써 온 긴 역사를 뒤돌아 볼 때서야 보이는 숲을 살피기 위해 쓰여졌다고.

하이머딩거 포지션을 자처하시다니. 일단 오케이란 말이죠.

근데 가면 갈수록 제국주의, 특히나 서양의 식민주의를 정당화를 넘어 미화를 하려는 좆같음이 느껴졌다.

심지어 이 크고 멋진 리바이어던에 순순히 굽히고 들어가지 않는 작은 국가들이 어리석다는 식으로 글을 쓴다.

모리스는 나무와 숲 비유를 하며 '니들이 큰그림 못보는 거 가지고 나한테 화내지 마셈' 이라 말한다.

근데 책을 읽다 보면 지배당한 이들의 입장을 보는 건 나무고 지배하는 이들의 입장을 보는 건 숲이라 말하는 것만 같아진다.


이 책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한없이 글이 길어지고 만다.

딴거 필요 없고 그냥 마지막 챕터만 보면 된다.

이안 모리스의 결론은: 무결점이란 건 아니지만 어쨌건 공정한 미국이란 리바이어던이 다음 몇십년간 굳건히 최정상의 자리를 혼자 독식해야 한다.

언제까지?

특이점까지.

ㅋㅋ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완벽히 관리해 줄 날이 올 거라고 결론을 내린다.

"인터넷 텔레파시" 가 우릴 완벽한 유토피아에서 살 수 있게 해줄거라고 말한다.

진짜로 정확히 이 단어들을 사용한다: 인터넷 텔레파시

그냥 웃김

웰컴 빅 브라더

왜 그냥 80억 인간들 손에 손잡고 로보토미 받자고 하시지 특이점까지 왜 기다림?


인류의 역사엔 언제나 전쟁이 함께 해 왔다.

전쟁이 없는 현재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최선인지 아닌지 절대로 알 수 없다.

전쟁은 이득인가?

그래서 이 질문엔 정답이 있을 수가 없다.

우리가 수많은 전쟁들을 되돌아 볼 때 배워야 할 것은,

피할 수 있는 전쟁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어야 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쟁 그 자체에 위대함을 부여할 게 아니라.

약한 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강한 자들을 더 배불리는 짓에서,

결국 강한 자들끼리 살아남아 쟁취해낸 평화가, 진정한 평화라 부를 수 있던가?


이 책은 전쟁의 긍정적인 면을 보기 위해 쓰여진 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류의 발전이 전부 전쟁 하나만을 통해서 이뤄졌다는 주장의 근거들이 너무 빈약했을 뿐더러,

전쟁의 끔찍함을 뚫고 도달한 현재가 어떤 값을 치르고 얻어졌는지에 대한 언급을 필사적으로 피한다(해도 축소한다).

다들 안다. 가끔 인류는 전쟁을 겪은 뒤 더 빨리 현대를 향해 가속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내린 결론이다.

전쟁은 이롭지 않다는 걸.

이안 모리스는 이 대세에 맞선 외로운 싸움을 하는 힙스터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뭐 계속 힙스터로 살면 될 것 같다.

귀가 심각하게 얇은 나조차도 설득하지 못하셨으니


누굴 위한 책인가 - 문명 지배 승리를 즐기는 사람



이상 7월 결산입니다.

여덟살때부터 숙제를 미루던 화려한 경력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