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꽃」
춘향이
눈썹
너머
광한루 너머
다홍치마 빛으로
피는 꽃을 아시는가?
비 개인
아침 해에
가야금 소리로
피는 꽃을 아시는가?
무주 남원 석류꽃을…….
석류꽃은
영원으로
시집가는 꽃.
구름 너머 영원으로
시집가는 꽃.
우리는 뜨내기
나무 기러기.
소리도 없이
그 꽃가마
따르고 따르고 또 따르나니…….
- 『동천』(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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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작품에 앞서 서정주는 「석류개문(石榴開門)」이라는 시를 쓴 바가 있다. 가을에 열리는 석류를 두고 그는 이렇게 읊었었다. '어쩌자 가을 되어 문은 삐걱 여시나?/ 수두룩한 자네 딸, 잘 여무른 딸/ 상객(上客)이나 두루 한번 가 보라시나?/ 건넛말 징검다리밖엔 없는 나더러/ 무얼 타고 신행(新行)길은 따라가라나?' 여기에서 문의 이미지는 같은 시기에 씌어진 「꽃밭의 독백」과 「가을에」를 떠올려보면 뚜렷해진다. 사소에게 문을 열어줄 꽃이기에 당연히 석류꽃도 그 역할을 해줄 것이 아닌가? 뒷날 이 시에서 석류꽃을 '영원으로/ 시집가는 꽃'이라고 지칭한 것도 「석류개문」에서와 같은 까닭일 것임이 분명하다. 다만 석류꽃의 문을 통해 가는 그 길은 신행길이라는 이미지가 더해지고 있어 재미있다. 아마도 시인이 석류를 보면서 특별하게 시집가는 신부의 이미지를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듯 주변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위의 시의 의미가 뚜렷해지기는 하나, 작품 내적으로만 놓고 본다면 지나치게 말해서 미문으로만 만들어진 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가령 1연에서 춘향이를 언급한 것은 춘향전의 서사적 맥락과 딱히 관계가 없다. 보편적인 한국의 여인상으로서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채택되었을 뿐이다. 2연의 가야금도 마찬가지다. 나무 기러기 역시 근래에 많이 잊혀서 그렇지 혼례 장면의 전형적인 이미지 중의 하나이다. 이런 기발하지 않음 때문에 다소 안일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어쨌든 작품으로서 완성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고 또 2연의 '비 개인 아침 해에 가야금 소리로 피는 꽃을 아시는가'라는 구절은 나름대로 회자되는 문장이기도 하다.
공감이 가는 평이야요. 비 개인 아침 해에 가야금 소리로 피는 꽃을 아시는가/ 이 부분은 확실히 느낌이 오네요. 완성되어 있는 것과 별개로 기발하지 않아 충격은 없다는 것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