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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글 제발 책글써 병신들아)
(당연하지만 스포함유)
식물들의 사생활에는 두 형제가 나와. 기현과 우현. 성의 없으면서도 둘이 형제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네이밍이야.
기현은 화자이자 동생이고 우현은 형이자 사건의 중심인물이야. 처음에는 우현이 화목한 과정을 짓밟는 작은 파괴자로 비쳐줘. 그것은 현재를 조명하면서부터 소설을 시작하기 때문이야. 그러다가 나중에 와서는 우현은 정말 어찌할 수 없는, 불쌍한 피해자의 모습으로 작아지게 되지.
반면에 기현은 커다란 의무를 이행하는 숭고한 무언가에서 비참한 채무자로 변하게 돼. 형의 다리를 절단한 가해자로 바뀌게 되는거지. 그렇지만 소설은 기현에게 변호할 시간을 충분히 줘. 애초에 기현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기현이 행동은 지극히 감정적인 사랑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청춘의 한 얼굴이며 형에게 가해지는 비참한 재난은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사고지.
둘은 서로 다르면서 같은 하나의 짐승이야. 서로의 꼬리를 물어뜯는 우로보르스지. 몸과 정신이 망가진 기현은 가만히 있으면 발작을 일으켜. 버둥거리면서 옷을 찢고 몸을 할퀴다가 미친 듯이 딸치면서 정액을 사방에 뿌리지. 그런 다음에는 기절해. 기현은 그런 우현을 지켜보면서 그가 회복하기를 간절하게 바라지. 그가 다시 사진을 찍으면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어.
어머니는 기현의 발작을 달래기 위해서 일정 주기마다 기현을 업고 홍등가를 방문해. 노모가 다리가 없는, 다 큰 아들을 등에 업고 홍등가로 가서 돈을 주고 여자에게 맡긴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비참한 모습이야. 기현은 어쩌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되고, 이를 보다못한 기현은 이 일은 내가 하겠다고 자처해. 어머니와 다른 방식으로, 형을 모텔에 안치하고 창녀들을 차에 태우고 운반하는 역할을 하지.
기현의 발작은 가족의 입장에서는 차마 두고보기 힘든 모습이야. 총명하며 미래가 유망했던 형이니까 더욱 그랬지. 기현 또한 자신의 안에 있는 더러운 욕망, 더러운 찌꺼기, 망가진 몸과 정신에 갇힌 자신의 영혼이 구제받기를 간절히 원하지.
다른 인물들도 충분히 매력적이야. 조용하면서도 병풍처럼 보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강한 존재감을 내뿜는 아버지와 비밀을 숨긴 어머니. 거기에 오랫동안 잊었던 우현과 기현의 첫사랑과 1인 흥신소를 운영하던 기현에게 거금의 액수를 빌미로 수상한 일을 시키는 정체불명의 인물까지. 이 소설은 정교한 구조로 짜여져 있어. 상징적인 장치와 소설의 주제와 인물들의 연결, 거기에 독자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끌고나가는 서사까지 있지. 작가는 그걸 아주 잘 이용하고 있어.
그렇다고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야. 이 소설의 페이스를 늦추는 것은 문장이야. 이승우의 문장은 건조하면서도 치밀하고, 그러면서도 끈질긴 부분이 있어. 논리적이면서도 단정적이야.
나는 그녀가 단순하고, 단순한 만큼 맹하고, 단순하고 맹한 만큼 겁이 많고, 단순하고 맹하고 겁이 많은 만큼 순종적일 거라고 단정했고,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이승우, 식물들의 사생활, 문학동네, p.18>
이런 식이지.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든 문장 중 하나야. 하나의 인물을 설명하면서 덧씌우는 문장이 인상적이지. 이러한 작가의 특징은 소설의 호흡을 조절할 때 아주 용이해. 작중에서 인물들이 망설이며 머뭇거리는 순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 작가는 진부하며 쓰잘데기 없는 묘사를 늘어놓거나 인물을 괜히 툭툭 건드려서 쓸데없이 서성거리게 만들거나 이상한 회상으로 빠지지.
이승우에게 있어서 소설의 장면을 늦추는건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더라.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속도감을 늦추는 데 거부감이 드는 사람은 쉽게 읽기 힘들거라고 생각해.
이제 소설의 핵심으로 넘어갈게. 이 소설은 파괴에서 시작해서 재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야. 거기에는 식물이 들어가 있지.
모든 나무들은 좌절된 사랑의 화신이다.
책의 뒤표지에 써진 문구야. 씨발 존나 구려. 이 문장 자체가 구리다는게 아니라, 뒷표지에 인용할 문장으로서 앞뒤 잘라먹고 집어넣으니까 존나 병신같애.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수많은 신화, 특히 그리스 신화를 보면 꽃이나 나무에 대한 에피소드로 죽은 사람이 식물로 변하거나 살아있는 사람이 사랑을 거부(아폴론과 다프네 이야기)하면서 나무로 변하는 것을 인용하면서 표현하는 문장이야.
식물이라는 소재를 하면 가장 먼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떠올라.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읽지 않았지만 그의 단편 내 여자의 열매와 3권의 장편(흰, 소년이 온다, 희랍어 시간)을 읽었던 것을 바탕으로 추측하자면 한강이 생각하는 식물의 이미지는 정적이라고 생각해. 동물과 달리 움직이지 않는 존재. 이파리를 뜯어도, 줄기를 칼로 긁어도 발성기관이 없고 근육이 없어서 소리를 지르지도, 찡그리지도, 몸을 비틀지도 못하는, 그렇기에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로 인식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한강에게 있어서 식물은 가장 온화하면서도 가해자가 될 수 없는 위치에 서있다고 생각하는게 아닐까.
반면에 이승우에게 있어서 식물은 역동적인 존재야. 식물은 겉보기에는 가만히 있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여. 그렇지만 모든 생물들이 그렇듯이 식물 또한 생체활동을 하는 존재잖아? 씨앗이 발아하고 손가락보다 작은 줄기는 성인의 키의 몇 배나 될 정도로 자라지. 봄이 되면 이파리와 꽃을 피우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면 꽃은 열매로, 이파리는 붉은 낙엽으로 변색되지. 또한 뿌리는 어떻고. 식물의 뿌리는 보이지 않는 저 밑으로 쭈욱 뻗어나가지. 이승우에게 있어서 식물은 가장 활력적인 존재인거야. 식물은 조용히 그곳에 서있지. 그렇기에 식물은 그 땅의 역사를 스스로 기록하며 증명할 수 있어. 이승우에게 있어서 식물은 가장 조용하게 자기주장을 내비치는 존재인 거지. 그와 동시에 어떤 지점의 방향성이고.
소설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식물은 소나무에 얽힌 때죽나무야. 이는 굳어버린, 움직일 수 없는 욕망의 정체야. 기현은 우현을 휠체어에 태우고 왕릉이 있는 공원으로 가. 정상적인 상태의 우현은 기현에게 때죽나무를 소개시켜주지. 소나무에 얽혀있는 여자의 나신과도 같은 매끄러운 피부의 때죽나무. 우현은 기현에게 나무를 설명하면서 한탄하지.
"내 몸 속의 이 치욕을, 이 슬픔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
여기서의 식물은 우현이 동경하는 대상이야. 자신의 발작은 불구가 되어버린 정신의 영향이지. 정신은 결국 육체에서 영향을 받고. 이러한 뒤틀림 속에서 기현은 나무를 보면서 동경하게 돼.
그 다음에 등장한 식물은 야자나무야. 이 야자나무는 어머니의 사랑의 흔적이지. 두 사람은 아주 짧은 사랑을 나누고 파멸에 이르게 돼. 그렇지만 그 둘이 사랑을 하면서 심었던, 바닷가로 떠밀려온 야자나무를 시간이 지나 우람하게 자란 것이지. 토양과 기후에 자신을 맞추고 성장한 나무를 고난을 이겨낸 증명인 셈이야. 나는 여기서 신화적인, 더 나아가면 종교적인 느낌을 받았어. 어머니가 과거에 연인과 도피한 곳은 유토피아이고 그들의 흔적으로 자란 야자나무와 우현이 소개했던, 소나무와 정사를 이루듯이 엉켜있는 때죽나무는 욕망의 현현이지. 그렇지만 식물의 형태로 나타난 정사는 동물의 형태가 가지고 있는 추잡함은 없어. 숭고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이지. 그건 인간이 이룰 수 없는 유토피아적인 무언가를 떠올리게 해. 결국 그들의 사랑은 야자나무를 남긴 채 파멸되었지.
이 소설은 파괴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니야. 파괴에서 재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지. 그런 점에서 결말 부분이 아쉬웠어. 칼로 배를 열어서 뒤틀린 내장을 재배치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봉합을 엉성하게 했다는 느낌이야.
가정의 화합이 싸구려 가족시트콤에서 보던 장면처럼 이루어지거든. 서로 공간을 두며 개인의 영역을 고수하던 가족을 기현이 나서서 화합시키거든.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미 독자들은 소설의 끝무렵에서 가족들이 화합되는걸 느낄 수 있는데. 기현은 그냥 관찰자로 있으면 안됐던 걸까. 그는 필요한 순간에만 나왔어도 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소설 속의 인물이 작가의 도구나 장치로서 구동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기현이 나서서 중재한 것은, 그의 성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런 점에서 납득이 가지만, 초반의 어두우면서도 망가졌고, 중후반에 이어졌던 잔잔하면서도 신화적인 소설의 분위기가 아쉬웠어.
소설의 화자인 기현은 재미있는 캐릭터인데, 그는 파이터야. 주먹을 써. 그러니까 일반적인 소설에서 예민하고 섬세하면서도 어둠이 있는 애들한테서 흔히 보이는 문학적 클리셰로 커다란 충격 앞에 놓인 주인공은 으허허헝ㅠㅠ하면서 무너지거나 나는 다크하다... 운명의 데스티니.... 이딴식으로 짜지는데, 얘는 그런게 없지.
아 지금 쳐야 하나요? 싶을 때 펀치를 날려. 원펀맨도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얘가 그러기에는 감정적이라서 그건 안되더라. 존나 막 패. 그렇다고 망나니 타입은 아니야. 주먹을 써야 할 때 잘 쓰는 놈이야.
화자인 기현을 제외하고도 소설의 모든 인물들이 인상적이며 낭비 없이 배치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어. 매력적이고, 각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있지.
뭐, 사실 이건 흔히 ‘기성’작가라고 자처할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어야 할 스킬이 아닐까 생각해. 반대로 말하자면, 단편은 잘쓰지만 장편은 그저그런 작가들은 반푼이란 뜻이야. 체호프나 레이먼드 카버처럼 단편에 뜻을 둔 작가가 아니라면 말이지. 국내 작가들 이야기야. 단편으로 등단해서 오랫동안 갈고닦은 단편은 괜찮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지만 장편으로 가면 무너지는 작가들이 정말 많더라.
재미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지만 이 책으로 이승우라는 작가를 제대로 알기에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승우의 대표적인 생의이면과 근작인 사랑의생애를 읽어볼 생각이야.
그건 그렇고 이 작가는 제목을 잘 짓는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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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글인데 독갤 개판이고 당장 책안읽고 겜만 처해서 이전글 올려본다.
이승우의 작품중에서 생의이면이 원탑이고 그 다음으로 지상의노래, 사랑의 생애, 에리직톤의 초상이 각각 취향에 따라서 읽을만하다고 생각한다.
재미는 식물들의 사생활이 좋은데 퀄은 아쉬움.
단편으로는 오래된 일기가 가장 감명깊었다.
모두 이승우 읽고 광명찾자.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한글에 저장해서 복붙했더니 생긴듯. 수정함.
왜 제목은 생의 이면이면서 글은 식물들의 사생활이냐
??? 저랑 다른 제목보신듯^^
이승우 개 허접. 혼자 땅굴 파고 땅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의 소설. 왜 이런 작가를 좋아함?
내가 찐따라서 혼자 땅굴 파고 땅속으로 들어가는 소설을 미친듯이 좋아한다 나쁜놈아
그리고 나의 우상한테 허접이란 말 쓰지마라. 집 찾아간다.
난 너가 나의 우상 이문열을 대차게 깐걸기억한다. - dc App
그럼 내 집으로 찾아오셈. 방패들고 기다리겠음.
아니 나도 이한마디만하고 감 "이승우 허접스레기 관념과잉 한물간주제만다루는 2류작가" - dc App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사상이 어떤 거라고 봄?
사상을 담는 것은 철학이고, 좋은 문학은 현상을 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은 그저 현실의 그림자로서 과장되고 뒤틀린 모습을 비추는 동굴의 벽이고 그렇기에 나는 문학을 읽을 때 어떤 사상을 찾으려고 하지 않음.
문학에도 사상을 들어가기 마련이고 1984처럼 그게 주가 되는 문학도 있는데 굳이 안 찾는다고? 뭐 안 찾는거야 어쩔 수 없는데 난 '캐릭터가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보여지는 사상에서는 캐릭터가 도구로 쓰여지는 걸 구태여 지적할 필요가 있나' 하는 게 떠올라서 물어본 거. 오전에 한번 얘기했던 주젠데
그 주제가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자나 탐구자도 아니고 걍 스타일로 받아들이셈
걍 그런 거임 사상이 주가 되는 소설이 있으면 캐릭터가 먹히는 건 당연한데(당연할 수밖에 없을 위압적인 사상인데) "캐릭터가 도구로 쓰이는 게 아쉽다"는 공허하지 않나 그런. 너의 접근법이나 스타일이 틀렸다 문제다 그런 거 아니고, 왠지 사상이 그래도 좀 무게 있는 소설 아닌가 싶어서 그랬음.
그러면 너가 그런 방식으로 정리해서 글쓰면 괜찮을듯. 난 한계가 있다.
원래 댓글로 깝죽거리는 건 쉬워 글 써서 본격적으로 나서는 게 어렵지 ㅋㅋㅋㅋㅋ
인정. 그래서 책 읽어도 독후감 어지간하면 안쓰게 됨
본인쟝은 하수라서 스토리가 막 끌고 가줘야 읽는데, 이 책은 엄마가 형 데리고 사창가 다니는 설정이나, 형 다치게 된 얘기가 넘 기가 막혀서 엄청 재밌었음. 반면 에리직톤은 움.. 힘듦.
아마 그런점에서 이승우 소설중에서 가장 흡입력이 좋지 않았나 싶음ㅋㅋ. 에리직톤은 처녀작인거 감안해야됨. 나도 힘들게 읽음
175님이 내가 말하고 싶은 걸 정확히 말했네. 이승우는 관념과잉, 한물간 주제만 다루는 2류 작가. 정답 정답 !
이승우는 관념과잉이다 못해, 막 한창 땅속 관념으로 막 들어갈 때는 한말 또하고 반복 오짐. 소설이란 게 간결성이 없음. 한 말 다르게 또 하고 또함.
소설에 왜 간결성이 있어야 하냐? 잃시찾은 그럼 쓰레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