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지난달의 접시꽃과
새달의 국화 사이
물드는 대추나무 밑에
나는 서 있다.
바람이 육수(陸水)치듯 여기에 몰려와서
대추남ㄱ에 대추들이 흔들릴 만한 소리로
"나요, 나요. 나를 모르겠어요?" 한다.
"모르겠다. 얼굴이 안 보여서 잘 모르겠다."고
내가 대답했더니,
잠시 섭섭하다는 기척을 하고는
치달리어 해 가까이 날아올라서
희살짓는 구름 옆에서 주춤대다가
들이쉬는 그리운 심호흡처럼
그 열린 입 속으로 잦아들어 버린다.
"알겠다, 알겠다!"고
나는 대답하였다.
"애인이여, 네 화장(火葬)날에는
한줌 재흙으로 내 손 앞에 남던 애인이여!
눈 깜짝 사이 네 온몸의 피가 타서
굴뚝으로 날아올라 앉던 자리를!"
- 『신라초』(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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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시의 리듬에 익숙한 독자에게 위의 시와 같은 어투는 생경하게 느껴지기 쉬울 것이다. 이 무렵 서정주가 서구 시의 어투에 관심을 기울이곤 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거기서 오는 어색함이 아마 풀릴 것이다. 비슷한 시기 그가 '소네트 시작(試作)'이라는 부제가 붙은 「외할머니네 마당에 올라온 해일」이라는 작품을 쓴 사실을 서정주 전집을 읽어 본 독자라면 알 것이다. 그가 이후에 극시 형식을 빌려 산발적인 작품들을 남긴 사실도 함께 참조할 만하다. 이 작품 역시 표현 방식의 범주 확장을 나름대로 시도한 실험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 위의 시는 같은 시집에 실린 「기다림」을 알쏭달쏭하게 읽은 독자들에게 힌트가 되어 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대추나무'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의 내용을 겪은 화자의 후속적인 제스처에 대한 시가 곧 「기다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위의 시의 내용은 떠나간 연인이 바람이 되어 왔다가 구름 속으로 떠나간 것 같은 느낌을 서구적 전통의 어투로 그려본 것이다. 적어놓고 보니 굉장히 신파적으로 느껴지는데 작품을 읽어 보면 그런 느낌이 그나마 덜하다. 사랑 노래가 작품으로 승화되기가 생각보다 많이 어려움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막줄 ㄹㅇ
신라초.. 거를 타선이 없는 좋은 시로 꽉꽉 쟁여논 시집이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