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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다
감상을 쓸까 말까 하다가 알라딘 중고 서점에 4만원에 올려져 있는 걸 보고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공짜로 봤지롱 메롱~
감상을 쓸지 말지 망설인 이유는
어차피 앞으로 폰타네 감상을 쓸 때마다 이 책을 읽고 얻은 지식과 감상을 바탕으로 쓸 테니 굳이 안 써도 되지 않을까
라는 게으르고 안일한 생각 때문이었다
글을 쓰면서 오히려 생각이 정리가 된다는 사실을 이미 몸으로 느껴 알고 있었는데도...
책의 내용을 적당히 요약하면
독일 사실주의의 문학사적 의의와 일반적인 인식, 폰타네의 개인사로 보는 폰타네의 정치적 입장 변화 양상, 폰타네의 시적 사실주의에 대한 분석과 옹호 등으로 볼 수 있겠다
독일 사실주의는 문학사적으로 별로 높이 쳐주지 않는 사조라고 한다
동시대에 프랑스에는 플로베르가 있었는데
여기는 폰타네...
흠... 좀 그렇긴 하다 나도 폰타네를 좋아하지만서도
괴테와 만 사이의 어중간한 시대라는 느낌이다 (물론 괴테와 만은 읽어본 적 없다)
독일 사실주의, 나아가 폰타네의 시적 사실주의를 쳐주지 않는 이유는, 치열하게 노동자의 삶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 즉 리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에는 조이스가 율리시즈를 쓸 때에 주인공이 집의 담을 넘어 들어가는 장면을 쓰기 위해 실제 배경으로 삼은 건물의 담을 넘을 수 있는지 진지하게 문의하고 알아봤다는 일화도 소개되어 있는데, 그 정도로 이 시기엔 리얼을 굉장히 중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폰타네는, 모든 작품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추를 가리고 미를 강조한다
아름답고 깨끗한 장면이 부자연스럽게 이어져서, 독자는 그 사이에 감춰진 추악함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폰타네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추를 구태여 표현하지 않는 것은 맞다. 잘 읽지 않으면 잘 놓친다. 나는 폰타네를 읽기 쉽다고 했었는데, 분명 읽기 쉬운 문장을 구사하는 건 맞지만, 반어적인 맥락과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강조하는 능글맞은 묘사들은, 처음이라면 놓칠만할 것 같다. 그런데 독붕이들이라면 금방 캐치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렇게까지 어려운 스킬을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돌아와서
폰타네가 프롤레타리아에게 무관심했다는 억까는, 폰타네가 수구 꼴통 보수 언론에서 편집을 맡아 일했던 경험이나, 프로이센뽕을 들이켠 기고문들 등 때문에 더 강해졌는데
한편 폰타네는 1848년 독일 혁명때 직접 총을 들고 참가했을 정도로, 수구 꼴통이라고 보기 힘든 행보를 보이기도 했으며
걍 나중에 변절한 거 아니냐? 라고 하기에도, 어떤 편지에선 귀족을 욕했다가, 어떤 편지에선 귀족을 숭상했다가
여기선 비스마르크를 깠다가 저기선 찬양했다가
정치적으로 갈피를 잡기 힘든 모습을 오랫동안 보였었고
그래서 후대의 연구자들도 이랬다 저랬다 헷갈렸는데
일단 보수 언론 건에 대해, 저자는 먹고 살려고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고 말한다
약제사의 아들이었던 폰타네는 가업을 이으라는 아버지의 강권을 못 이겨 약제사가 되긴 하지만
결국 뿌리치고 나와 종군 기자로 활약하고
아마 저 보수 언론이라는 게 정부 어용지였던 모양인데 (책에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모르겠음) 하여튼 정부 일 때문에 영국에 몇 년 간 파견 나가기도 하고
그러는 와중에 르포, 기사, 예술 평론 같은 걸 열심히 써내다가
그러다 60세가 되어 상당히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베를린 예술원 제1서기직을 버리고 전업작가로 변신한다
에피 브리스트 전까지는 거의 안 팔리는 작가였다고 함
폰타네는 사실주의라는 시대 정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것이야말로 예술이라는 데에 동의하지만
그 사실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라는 부분에 있어서 본인만의 원칙이 있었다
사실주의 작품들이 현실의 추에 너무 집중하고 미를 거의 표현하지 않는 풍조가 있어, 그에 반발하여 현실의 미를 더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거의 현실 왜곡에 가까운 묘사도 나온 적이 있긴 하다. '얽힘 설킴' 의 한 장면, 남자 주인공이 평화롭고 여유로운 프롤레타리아들의 점심 시간을 보며 마음을 굳히는 장면이 그런 묘사의 예시로 나타나있다. 이 시대는 산업 혁명의 한복판이다. 현실의 프롤레타리아들은 점심으로 63g의 소시지를 배급받고 혹사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사실주의라는 놈이 이런 걸 쓰고 있으니 후대 평론가들이 좀 빡칠만한 것 같다
근데 어쨌든 폰타네가 이런 현실을 아예 모르고 이런 걸 쓴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얽힘 설킴' 과 '쉬티네' 에는, 내가 위에 쓴 것처럼 고단한 노동자의 삶이 은근 슬쩍 스리 슬쩍 다 묘사되어있다. 다만 그들은 그 고통에 집어삼켜지지 않는다. 그러한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강인함, 솔직함, 순수함, 이런 것들이 이들의 미덕으로 제시된다
또 폰타네는 진짜 귀족과 벼락 부자인 부르주아를 대비하여 교양이 없는 빈자리를 허세로 채우는 부르주아를 비판하는데
즉 부르주아를 까기 위해 귀족이든 노동자든 가리지 않고 찬양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폰타네의 시대엔 보불전쟁 배상금으로 벼락 부자가 된 소시민 계층이 확 늘어났다. 폰타네가 비판하는 것은 바로 이 계층이다
이 부르주아라는 놈들은 교양도 없고 솔직함도 없고 배금주의로 가득찬 아주 쓰레기같은 놈들이다 이거다. 이걸 '제니 트라이벨 부인' 에서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번역이 엄...
두서는 없었지만 앞의 두 가지 주제는 적당히 끝낸 것 같고 그럼 폰타네의 시적 사실주의에 대해 조금 쓰고 마치겠다
이 부분도 앞에서 적당히 말하긴 했는데 조금 보충하겠다
폰타네의 작품들은 갑작스럽게, 개연성 없이, 카타르시스 없이, 그냥 화해하고 혹은 결혼하고 혹은 죽으면서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이것도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도 미를 중시한 사실주의라는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능하다고 한다
실제 내가 좋아하는 마틸데 뫼링이나 에피 브리스트같은 작품도 저런 식으로, 뭔가 결정타가 없는 채로 끝나고 있다
그런데 작품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내게는 전혀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이것 자체가 폰타네의 스타일이라고 받아들여서 그런가?
에피 브리스트의 마지막 대사처럼, "그거야말로 진짜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품 상에선 조금 다양하게 표현되는데 이 경우 나는 '그것'을 삶이라는 뜻으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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