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서론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더 이상 카를 마르크스의 경구가 과제를 던지는 대상은 철학에 한정되지 않는다. 아니, 우리 시대엔 오히려 이 과제가 예술의 것에 가까워졌다. 예술은 세계를 반영할 수밖에 없고, 나아가 세계의 변화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경제 위기를 맞이한 90년대 중후반의 재페니메이션이 드러내는 세계와 2020년대의 재페니메이션이 드러내는 세계는 같을 수 없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우리는 각 시대의 예술이 은근히 바라고 촉구하는 세계의 변화 양상이 다르다는 사실에도 동의하게 된다. 2022년 방영된 메카물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 의 1화는 90년대를 대표하는 메카물 <신세기 에반게리온> 의 1화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마무리된다. '에반게리온에 타서 세계를 구하라' 고 명령하는 아버지의 준엄함에 상응할 만한 것은 <수성의 마녀> 에서는 서두에 드러나지 않는다. 2022년의 메카물에서는, "하지만 저도 여자인걸요?" 라고 묻는 주인공에게 "수성은 보수적인가봐? 여기선 별일 아니야. 잘 부탁해, 신랑님." 라고 말하는 히로인만이 드러날 뿐이다. 거시적인 세계의 변화보다는, 보다 미시적인 세계의 변화가 작품의 서두에 선 것이다. 그러나 <수성의 마녀> 가 총체적인 세계의 변화 같은 거시적인 문제에 무관심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인데, 아닌게 아니라 <수성의 마녀> 는 백합물로 시작해 세계를 지키고 변혁해가는 메카물로서의 가능성을 열어나간다.
내가 틀렸을지도 모르겠지만, 21세기에서는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진보 정치계가 중앙 권력의 획득과 총체적 변화보다는 인종, 성소수자 등의 문제에 주목하는 빈도가 이전보다 넘어졌다는 것은 아마도 사실인 것 같다. 정치계의 화두와는 별개로, 우리 대부분은 이런 총체적이지 않고 미시적인 것으로 보이는 가치들은 이전의 진보 정치계가 다뤘던 것들과 비교했을 때 덜 중요한 것으로 흔히 여긴다. 그러나 분명 이러한 가치들이 보다 총체적이고, 하부구조적인 가치들과 연결되어 모든 사람이 공감할 만한 본질적인 것을 꿰뚫는 순간이 있다.
1. 금기들
<내 최애는 악역 영애> 는 여성향 미연시 게임에 히로인으로 전생한 레이 테일러의 이야기를 다룬 라이트노벨 원작의 로맨스 코미디 만화다. 그런데 레이 테일러가 전생 이전부터 좋아했던 대상은 미연시 게임의 공략 대상인 남성 캐릭터들이 아니라, (원래 게임의 내용대로라면) 여주인공의 활약과 혁명으로 인해 몰락하게 되는 악역 영애 클레어 프랑소아였다. 이제 레이 테일러는 머지않아 평민들이 일으킬 혁명에 휘말리게 될 클레어 프랑소아를 구해내야만 한다.
https://youtu.be/u9q3j8PLRCU?si=

[내 최애는 악역 영애]매주 일요일 밤 25시! 애니맥스에서 만나요🙌무사히 클레어의 메이드가 된 레이는 선배 메이드인 레네 오르소와 함께 클레어의 시중을 들었다. 그렇게 레이는 최애와의 이세계 메이드 생활을 만끽했지만, 그녀는 여성향 게임의 히로인이었다. 제1 왕자인 로드 바우어...
youtu.be
그러나 분명 만화의 초반부는(물론 예시로 올린 애니 클립의 경우 보다 코믹한 면이 과장되어 연출된 점은 있지만) 게임 내용 상으로는 필연적으로 벌어질 혁명 같은 것에는 그리 관심이 없는 듯하다. 시종일관 클레어에게 달라붙는 레이의 모습이 코믹하게 그려지고, 모든 것이 큰 긴장감 없이 다만 평화롭고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런 가벼운 평화 속에서 거의 처음으로 클레어와 레이가 진지한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이 동성애자에 대한 클레어의(어쩌면 독자의) 편견을 깨는 장면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의 세계는 평화롭지만, 분명 시민들은 혁명을 일으킬 것이고 모두가 휩쓸릴 운명이다. 평민들의 혁명은 세계를 바꿀 것이고, 클레어 역시 단두대에 오를 운명이지만, 레이는 이 운명을 바꾸고자 한다. 그러나 이 운명을, 혁명을 맞이할 세계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내는 그 시작점은 레이의 금기된(것으로 여겨지는) 사랑에 있다. 결국 클레어의 마음을 얻는 것과 세계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작품 속에서 병행되어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어서 만화는 혁명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향해감과 동시에 동성애, 트렌스젠더 등 사소한 것으로 여겨진 금기들을 다뤄나간다. 이 사건들은 클레어의 레이에 대한 마음을 미묘하게 움직이면서, 혁명의 흐름 역시 조금 다른 곳으로 옮겨둔다. 보다 개인적인, 그리고 사소한 것으로 여겨졌던 가치들이 보다 총체적인 것들을 꿰뚫어 낸 것이다.
2. 불합리가 또다른 불합리를 깨닫게 할 때
결국 금기의 사랑을 관철하는 것이 세계의 변화와 연결된다는 관점으로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중반부를 지날 때 꽤 재밌는 장면들이 나온다. 초반부만 해도 신분이나 정치 제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레이가 "평민인 이상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라는 대사를 내뱉는다던가, 클레어가 평민들의 삶과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던가 하는 장면들이다. 앞의 장면은 레이가 클레어와의 사랑을 모종의 이유로 방해받게 되었을 때, 뒤의 장면은 클레어가 레이의 고향에서 모종의 사건들을 겪은 후 평민들의 현실을 알게 되었을 때를 그리고 있다. 그러니까 레이는 클레어에 대한 사랑을 방해받아 거의 처음으로 정치 제도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되었고, 클레어 역시 레이와 가까워지며 제도의 모순을 처음으로 깨닫고 있다. 그녀들 각자가 느끼고 있는 미시적인 불합리들이 보다 거시적인 불합리에 대한 각성을 불러오는 순간이다. 나아가서, 이 각성은 (클레어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이상론에서 현실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각성이다. 여러 불합리들이 그녀들 안에서 보다 구체적인 형체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세계의 구조적인 것들, 하지만 지극히 사적으로 여겨지고 또 사소한 것으로만 보이는 불합리들은 사실 더 총체적인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 현실에서도, 세계가 더욱 복합적이고 더 연결될수록, 이 그림은 더 명확해지고 있다. 21세기 각기 다른 분야의 진보 단체들의 연대는 우연은 아니었을테다. 분명, 미시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지점일지라도 어떤 작은 지점에서 불합리를 느끼는 것(레이의 경우에는 동성애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되겠다)은 또 다른 세계의 불합리의 깨달음으로 연결되기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연결과 흐름들이 모여 구체적인 불합리와 대안의 형체가 되고, 부딫힐 수 있게 된다. 결국 거대해보이던 세계도 또다른 대안적 세계로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3. 나가며
라이트노벨 원작의 만화 <내 최애는 악역 영애> 는 라이트노벨 연재 분량의 2/5 정도가 발간되었다. 아직 발간되지 않은 라이트노벨 원작에서는 혁명 이후의, 더 커다란 세계와 마주하게 되는 레이와 클레어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나 이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은 여전히 서로의 안녕이다. 만화의 시작점을 돌이켜본다면 이는 분명 금기된 안녕이다. 이는 거대한 세계에 비하면 아주 작은 금기인듯 하지만, 그 정도 작은 틈이면 세계를 비집고 들어가 바꾸기엔 충분할지도 모른다.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 에 동의하는 이라면, 새로운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구조 아래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대안을 상상하는 것이 예술의 과제라는 것에도 쉽게 동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현재의 금기에 대한 작은 대안, 아주 작을지라도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백합은 충분히 세상을 바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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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갤은 매번 눈팅만 하다가 처음 글 써봐요..!
워낙 똑똑한 분들이 많아서 뭔가 글쓰기 조심스러웠는데,
가볍게 뭔가 써봐도 괜찮겠다 싶어서 남겨봅니다!!
뭔가 리뷰하는 작품이 겹치면 안될 것 같아서 제일 안하실 것 같은걸로 해봤는데
쓰고나니 먼가 별로네요 쩝
만화 리뷰 대회라 라노벨 분량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말하려는 바가 애매해진 것도 같고
암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지 비비기로 세카이를 구원한다라..
북극곰 없앴으면 세상을 바꾸긴 했네
좋아하는 작품 나와서 반갑네
와타오시 재밌는 작품이죠 히히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