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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대체로 당시 귀족들의 폭력에 저항하여 자유를 쟁취하고자 하는 숭고한 시민정신을 그립니다. 하지만 '두 도시 이야기'에서는 그러한 고상한 시민정신 따위를 엿보기는 어렵습니다.기요틴이 마실 적포도주를 생산하는 자들의 잔인함은, 일제치하 당시 일본군이 보인 광기, 세계대전에서 자행된 나치의 횡포 그 자체와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집니다. 충동적이고, 나약한 존재 즉, 깨지기 쉬운 유리조각 같은 인간의 본성은 악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배자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이들의 염원은, 자유에 상충되는 제멋대로의 방종을 자유로 착각하여 자행된 혁명으로 인해, 거의 항상 그들의 굴레를 더욱 옥죌 뿐인 사기꾼들에게 자신들을 넘겨주는 만큼 자유로부터 더욱더 멀어지게 합니다.


언니와 오빠와 아버지가 귀족들의 손에 도륙당했기에 불타오른 복수심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 평등, 박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살인을 저지르는 드파르주 부인의 모습은 혁명 전의 귀족들과 똑같아 보입니다. 대의라는 명분 이면에 드리워진 피의 그림자는 하얗게 짙어집니다. 이처럼 귀족에서 시민으로 이동하는 권력의 양상을 찬찬히 살펴보면, 변증법의 정반합이라는 개념이 모순되는 것이라고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正을 상징했던 귀족과 反의 표상인 시민의 모습이 합으로 나아가지 않고, 완벽히 똑같은 종류와 세기의 힘으로 충돌하여 정체되었다가 소멸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궁핍한 시민, 그들을 끝까지 억제하던 귀족의 처지를 정반대로 뒤바꾸어버린 혁명의 속사정, 그리고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폭풍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은채로 서로를 아끼는 인간의 모습과 사랑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이의 모습은, 전형적인 극적 효과를 위한 대비이지만 여전히 이 효과는 강력하여 폐부를 깊숙이 찌릅니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그저 ‘하나의 사건’ 속에서 숨을 쉬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그리고 사랑하고 위로하고 걱정하고 불안에 떠는 개개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역사는 그저 사건의 연속으로 우리에게 인식되지만 그 안에 생생히 살아있던 개인의 모습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일상에 갇혀 사는 현대인에게 아니 우리에게, 온갖 에너지로 가득 차 요동치던 시대는 경이롭고,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사랑은 참으로 숭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