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이후 톨스토이가 순수 예술에 엄청난 회의를 느꼈다는 것,
그래서 그 이후의 작품들은 도덕적 교훈이 짙게 남아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나 카레니나가 준 여운 때문에, 그 이후의 작품들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읽는 당시나 덮을 때까지는 큰 감흥이 없었는데, 오히려 책을 덮고 난 이후에 계속 맴도는 여운이 짙었다. 톨스토이 작품의 특징이기도 한 듯)
이반 일리치의 죽음 뿐만 아니라, 무도회가 끝난 뒤, 위조 쿠폰, 크로이체르 소나타, 악마, 신부 세르게이 등을 읽고나서 내가 느낀 바는
1) 도덕적 교훈이 짙다고 하지만, 사실 안나 카레니나와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지도 미지수이다. 톨스토이는 원래 자신의 생각을 어느 정도 명시적으로 피력했던 것 같고, 따라서 후기의 작품들은 단지 그 명시적인 정도만 강해진 것 같다.
2) 톨스토이의 도덕적 교훈은 본인의 욕망에 대한 이해에 기초에 있기 때문에, 후기 작들에서도 그러한 심리에 대한 묘사가 잘 살아 있는 것 같다. 특히 '악마'가 그러하다.
3)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생각보다 인상 깊지 않았다. 주인공의 독백조가 엄청난 설교로 밖에 들리지 않으며, 소나타와 살인으로 이어지는 장면 역시 좀 인위적으로 느껴졌다.
4) 개인적으로 위조 쿠폰은 1부에서 악의 연쇄들은 톨스토이의 힘을 잘 보여주는 지점이었던 것 같다. 2부에서 선의 확산은 글쎄..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이나 희망은 아닐지...
5) 후기 단편들에 크게 가치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또 여유 있을 때 가볍게 읽는 것으로서는 여전히 괜찮은 작품들이라 생각한다.
이제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남겨둔 상태인데, 분량이 살벌해서 아직 시작할 엄두를 못내는 중...
나는 님이 언급한 단편들 대부분 걸작이라 생각하는데 크로이체르 소나타의 장광설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극에 달한 끝에 반쯤 미친 소리를 진지하게 늘어놓는 데 그 재미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