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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정도면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시리즈의 애독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을 제외한 <고전예술 편>, <모더니즘 편>, <인상주의 편>을 모두 읽었고, 아직 읽지 않은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도 조만간 읽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간 순서를 보면 <인상주의 편>보다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이 앞서 있다. 미술사에 대해 아주 기초적인 지식만을 가진 사람이라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인상주의 이후에 발생했다는 점은 알 것이다. 이런 독특한 발간 순서에 대한 의문은 저자의 서문에서 해소된다. 저자는 원래 <인상주의 편>을 제외한 나머지 세 편만으로 시리즈를 완성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인상주의는 <모더니즘 편>과 <고전예술 편>의 앞뒤로 짤막하게 서술하기에는 그 무게와 중요도가 너무 컸다. 그래서 뒤늦게 <인상주의 편>을 따로 써낸 것이다.


사실 이 서문에는 저자가 인상주의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는지가 암시되어 있다. 저자가 보기에 인상주의는 아카데믹한 고전예술로부터 자유분방한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끈끈한 논리적 흐름의 일부다. 저자는 인상주의를 고전예술과 모더니즘을 잇는 일종의 가교로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1. 고전미술의 두 안티테제: 사실주의와 라파엘 전파


인상주의라는 사조는 어떠한 맥락에서 생겨난 걸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고전미술이라는 시원까지 한없이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미술은 진공 속에서 탄생하는 게 아니라 미술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미술의 모범은 한 마디로 ‘아름다운 가상’을 화폭에 옮기는 것이었다. 고전주의 화가들은 ‘아름다움’을 위해 미의 규범으로 통하는 고대 그리스의 조형을 베껴 그리기도 하고, 인물의 신체를 그릴 때 완벽한 미를 구현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가상’적인 움직임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한 고전주의 미술은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했고, 형식 중에서는 형태보다 색채가 중요했다. 이런 ‘형식에 대한 내용의 우위’와 ‘색채에 대한 형태의 우위‘는 고전미술의 대표적 특징이다.


19세기, 아카데미의 미술은 고전주의적 기치에 따라 ‘아름다운 가상’이라는 틀에 박힌 규범을 거듭 반복할 뿐인 매너리즘 상태에 봉착해 있었다. 이러한 고전미술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바로 사실주의다. 사실주의의 기치는 ‘추한 현실’을 그리자는 것으로, 고전미술의 ‘아름다운 가상’의 실로 완벽한 안티테제라 할 법하다. 사실주의 화가들이 그리려고 한 것은 ‘현실’이었다. 숭고하고 아름다운 고전주의 회화와 달리 그들은 여기, 지금, 눈에 보이는 진짜 현실을 화폭에 담으려고 했다. 그렇게 옮겨 담은 현실은 고전미술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추한’ 것이었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현실이란 화가의 눈으로 번역된 현실이다. 그렇기에 화가 개인의 사상과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어 정치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러시아의 경우, 사실주의의 높은 정치성은 러시아 특유의 높은 민중성과 결합하여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낳았다. 하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특징인 ‘당성’은 고전주의적 이상미 개념(‘아름다운 가상’)과 진배없어 결국 사실주의의 핵심적 기치인 ‘현실’을 도외시하는 이율배반을 저지르고 만다.


라파엘 전파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사실주의 운동과 달리 영국에서 발발한 미술사조다. 그들은 고전주의를 폐기하려 했던 사실주의자들과 다르게 고전주의를 쇄신하려고 했다. 고전주의 회화는 이상미를 구현하기 위해 실제를 의도적으로 부풀리거나 축소했다.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은 이러한 가상성 대신 사진을 동원해 그것을 베껴 그리거나 실제 사물을 보고 따라 그리곤 했는데, 이러한 사실적 묘사를 ‘자연주의’적 묘사라고 한다.


또한, 그들은 고전주의 회화의 한정된 주제를 넘어 풍부한 알레고리를 작품 속에 포함시켰다. 사실 이 점이 라파엘 전파가 모더니티에 영향을 미친 가장 주된 의의다. 고전미술의 시대가 저물고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내용은 형식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는데, 라파엘 전파의 경우는 이러한 경향을 역행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알레고리를 통해 내용을 풍요롭게 한 것은 현대미술의 상징주의적 경향과 궤를 같이한다.




2.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추한 현실’을 그린다는 사실주의의 기치는 다시 말해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그린다는 말과 같다. 마네는 자신을 평생 사실주의자라고 주장했지만, 미술사가 사이에선 인상주의의 포문을 연 화가로 여겨진다. 일반인에게도 마네는 인상주의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주의의 전형인 쿠르베의 작품과 마네의 작품을 연달아 놓고 보면 두 그림은 너무나도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네가 자신을 시종 사실주의자라고 주장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자연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화폭에 담으려 했다. 마네에게 사실주의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형태가 확고한 고전주의 회화는 마네가 보기에 눈에 보이는 진짜 현실과 달랐다. 실제 우리 눈에 비치는 것은 고전주의 회화처럼 모든 요소가 분명하고 뚜렷하게 나타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평면과도 같은 화면이다. 마네의 그림은 언뜻 보기에 평면적이고 비사실적으로 느껴지지만, 그 전체를 조망하는 순간 현실과의 놀라운 유사성을 느낄 수 있다. 이를 깨닫지 못한 동시대 비평가들은 마네를 조롱하고 비판했지만, 에밀 졸라와 같은 선구안을 가진 일부는 그의 그림의 역설적 사실성을 읽어내고는 그를 옹호했다.


이런 마네의 시도에 동감한 여러 예술가가 모여 탄생한 것이 바로 인상주의 운동이다. 그들은 마네와 같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화폭에 옮기려고 했다. 따라서 이들의 그림도 마네의 그림처럼 평면성을 띠고 형태가 불분명했다. 저자는 특히 형태의 이러한 불분명함을 두고 “물그림자처럼 흩어진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인상주의자들이 색을 바라보는 방식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인상주의자들은 고유색의 존재를 부정했다. 사물에 할당된 색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색은 사물에 반사된 빛이 눈에 어떻게 들어왔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즉 그들에게 색이란 빛이다. 그들 눈에 비치는 건 색의 배열이 아니라 빛의 향연이다. 요컨대 형태든 색이든 중요치 않은 것이다. 빛의 향연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형태가 어떻든 중요치 않다. 색도 존재하지 않으니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망막에 맺히는 빛의 양상이 어떠한가다. 대부분의 인상주의 회화가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나는 것은 그들이 색이 아닌 빛을 묘사하려 했기 때문이다.


인상주의는 ‘지각’을 강조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어떻게 보이느냐(how)’지 ‘어떤 것이 보이느냐(what)’가 아니었다. 여기서 중대한 변동이 하나 일어난다. 형식에 대한 내용의 우위라는 고전주의의 절대 규범이 와해되고 형식이 왕좌에 올라선 것이다.




3. 신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인상주의는 동시적 대비의 보색 효과를 활용해 화면 위에 빛을 구현하려고 했다. 그러나 빛을 그리는 데 있어 인상주의의 방법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물감의 성질과 빛의 성질 간의 근본적인 차이가 그것이다. 화가가 사용하는 물감의 경우 색을 덧대면 덧댈수록 어두워진다. 이를 감산혼합이라 한다. 반면 빛은 혼합될수록 밝아진다. 이를 가산혼합이라 한다. 물감과 빛의 이러한 근본적 차이를 극복하여 물감으로 가산혼합을 구현하려는 시도가 바로 신인상주의다.


가산혼합을 구현하기 위해 신인상주의가 내세운 방법은 분할주의(점묘법)다. 분할주의는 문자 그대로 색을 몇 가지의 원색으로 분할한다. 그리고 분할된 원색의 색점이 서로 접하지 않도록 캔버스에 찍는다. 이렇게 하면 색은 화면 자체에서는 혼합되지 않고 분리된 채 머무르지만, 보는 사람의 눈 속에서는 혼합되어 원색으로부터 파생한 다양한 색채를 감각할 수 있게 된다.


인상주의로부터 파생되었음에도 신인상주의의 화면에서는 인상주의 특유의 생동감을 찾아볼 수 없다. 그 화면은 어딘가 차갑고 비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이는 신인상주의가 색채의 분할주의뿐 아니라 화면 구성에 있어서도 분할주의를 도입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인상주의는 회화를 분할주의라는 광학이론 하에 복속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이성적 경향은 비단 신인상주의만의 특징이 아니다. 내용이 아닌 형식에 주안점을 둔 사실주의, 인상주의 모두 과학적∙이성적 경향을 띤다.


신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의 이론적 바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둘 모두 원색의 색점을 병치함으로써 현실을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려고 했다. 하지만 신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의 화폭을 나란히 놓고 보면 차이가 현격함을 알 수 있다. 후기 인상주의의 화면이 비할 데 없이 강렬하기 때문이다. 신인상주의가 원색의 스트로크를 병치한 까닭은 감상자의 머릿속에서 색이 혼합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선 색점은 자연히 조그맣고 눈에 띄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후기 인상주의의 색점은 굵고 두껍다. 심지어 윤곽선까지 표현된 작품도 있다. 이는 당대 유입된 일본 목판화들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우키요에로 대표되는 일본 목판화는 색채에서는 강한 원색성을 띄며 형태에서는 임의적으로 축소∙확대되어 있다. 후기 인상주의자들은 대개 일본 회화의 열렬한 숭배자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작품에도 일본 목판화의 특징을 조금씩 첨가했던 것이다.


사실 현대 과학으로 검증한 결과 신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가 숭배한 분할주의 광학 이론은 사실과 다르다. 색점과 색점을 나란히 병치한다고 실제로 가산혼합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신인상주의는 실패한 기획이다. 하지만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가교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들은 톡톡한 역할을 수행했다. 바로 사용되는 물감의 수를 대폭 줄여 높은 원색성을 드러냈다는 점이 그렇다. 후기 인상주의에서 나타난 높은 표현성도 이러한 원색성의 연장이다. 후술하겠지만 원색성은 모더니즘의 색의 해방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4. 모더니즘을 향하여: 상징주의, 세잔의 종합주의


형식을 중시하는 인상주의와 파생 사조들이 활발히 전개되던 가운데, 추세를 거스르는 듯 보이는 상징주의 운동도 은밀히 진행되고 있었다. 먼저 상징주의는 하나의 사조라기보다 소수의 화가의 파편적 움직임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 또한 진공으로부터 태어난 것은 아니리라. 상징을 적극 활용하던 상징주의 이전 사조에는 라파엘 전파가 있다. 저자는 상징주의를 라파엘 전파의 자식이라고 여긴다.


상징주의에선 형식보다 내용이 앞선다.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가 가시적 세계를 ‘더욱 잘’ 재현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면, 상징주의는 상징을 도입하여 ‘비가시적인 관념을 가시화’하는 데 노력을 쏟았다. 비가시적인 관념을 가시화한다는 목적은 사물과 그 의미의 관계를 자의적으로 만든다. 즉 더 이상 사과는 사과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사과는 선악과를 연상시켜 선악, 수치, 앎 따위와 연결된다. 또한, 가시적 세계의 재현에 초점을 두지 않는 태도는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으면서도 무언가를 ‘의미’하려는 현대 추상화의 단초가 된다.


한편, 세잔은 인상주의를 극복하려고 했다. 그가 보기에 인상주의는 크나큰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형태가 “마치 물그림자”처럼 무너진다는 것이다. 인상주의는 색을 빛으로 파악했기에 빛의 형상만 잘 구현할 수 있다면 형태가 와해되는 것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더 높은 현실성을 구현한다면 괜찮겠지만, 세잔은 인상주의의 방식이 현실적인 지각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현실의 사물은 인상주의의 화면에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더 강고하고 튼튼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세잔이 도입한 것은 과거 고전주의 예술의 튼튼한 형태감이었다. 세잔은 이처럼 인상주의와 고전주의를 종합하는 종합주의를 선보였다.


그러나 세잔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세잔의 화면은 인상주의보다 훨씬 강렬했다. 색채는 원색성을 띄며, 사물의 재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사물은 왜곡되어 나타난다. 이는 마티스의 야수주의를 연상시킨다. 표현주의적 경향의 세잔의 화면은 이미 현대미술의 색의 해방에 가까워 있다.


또한, 그는 고전주의적 형태감을 넘어 자신만의 독특한 형태감각을 구축했다. 세잔이 보기에 원근법은 자연을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다.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우리의 시선은 눈에 들어오는 모든 요소를 공평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다. 우리의 시선은 한 곳에만 머무를 수 있으며,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를 화폭에 담기 위해 세잔은 한 장면을 그릴 때에도 그 안에 다수의 시점을 도입한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마치 깨진 유리창처럼 분산되어 있다. 이는 마치 우리가 하나의 사물을 지각할 때 발생하는 다수의 시선들에 맺힌 상들을 한 곳에 종합한 듯한 인상이다. 육체의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그의 독특한 형태감을 ‘체험된 원근법’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화면은 자연히 피카소의 그것을 닮았다. 세잔의 이러한 시도는 현대미술의 입체주의적 경향과 긴밀히 맞닿아 있다.




5. 모더니즘을 향하여: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회화 분야에서 인상주의가 활발히 진행되던 즈음 건축과 공예 분야에서는 윌리엄 모리스를 주축으로 ‘예술과 공예 운동’이 일어났다. 윌리엄 모리스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자였다. 그는 자본주의와 영합한 산업화가 공예와 건축 분야에도 그 마수를 뻗어 예술을 타락시킨다고 생각했다. 산업화로 인한 공장식 생산은 뛰어난 효율을 보여주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은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한 땀 한 땀 만드는 장인의 방식, 즉 고전주의적 방식으로 이를 타개해 나가려 했다.


아르누보 운동은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과 공예 운동’의 준칙을 그대로 계승한다. 1) 인공이 아닌 자연을 묘사한다. 2) 순수예술과 실용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이들 모두 ‘예술과 공예 운동’의 캐치프레이즈다. 다만 아르누보는 고전주의와 역사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함으로써 드러내 놓고 모던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아르데코 또한 아르누보와 유사하지만, 신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의 관계처럼 보다 급진화된 양상을 보인다. 아르누보에 비해 아르데코는 추상성이 높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을 유일한 모티프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적이지 않다. 이러한 자연미에 대한 추구가 인공미에 대한 추구로 전환할 때 건축과 공예는 모더니즘에 들어서게 된다.


‘보이는 대로’ 그리겠다는 인상주의의 기획은 가시적 세계의 재현을 포기하는 상징주의로, 색과 형의 해방에 다다른 세잔으로, 자연미 대신 인공미를 추구하는 아르누보와 아르데코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각각에 이름을 붙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상징주의는 추상화 경향, 세잔은 표현주의 및 입체주의 경향, 아르누보와 아르데코는 기계화 경향. 이들 모두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경향이다. 모더니즘 예술은 그 급진성으로 인해 인상주의 같은 과거의 사조와는 아예 무관한 것으로, 단절된 것으로 느끼기 쉽다. 하지만 인상주의의 내부를 잘 들여다보면 현대미술의 전조와 징후가 곳곳에 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술은 역시 진공 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미술은 역사 속에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