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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어권 시집 두 권에 대한 감상문이다
트라클과
카프카
금속 같은 검은 하늘.
붉은 폭풍에 이리저리 나부끼는
저녁 굶주림에 미친 까마귀들,
공원 하늘에 슬프고 휑한 모습.
구름 속 햇살 한 줄기 동사하고,
그리고 사탄의 저주들 앞에서
그들은 빙빙 돌다가 내려앉는다,
일곱 숫자에 맞추어.
달콤하고 썩은 부패물 속에서
그들의 부리는 소리 없이 낫질한다.
묵묵히 가까운 곳에서 집들이 위협하고,
극장 안에는 흐르는 환한 빛.
교회, 다리 그리고 병원은
황혼 속에 섬뜩하게 보인다.
피로 물든 돛의 천이
운하에서 부풀어 오른다.
- <겨울의 황혼>, 민음사 『푸른 순간, 검은 예감』
트라클을 무엇으로 설명하면 좋을까
나는 트라클의 시집을 우연히 집었지만, 뜻밖에도 우연에 상응하는 환상적인 시집이었다
트라클 세계의 시선에는 무언가를 발견시키는 힘보다는 어떤 순간에 발견되는 은밀한 힘
일종의 부정적인 힘, 음적인 힘, 죽음의 힘이 실려있다
그건 다만 더는 거칠 것 없는 허무나 우울에 그침이 아니다. 그건 정지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이면에 있는 격렬한 약동이다
유령적인, 야화적인 도시 전경이야말로 트라클 세계관의 근저를 이루는 것일 텐데,
이건 어쩌면 상징주의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연보로 연결될지 모른다
그러나 상징주의(정확히 트라클은 표현주의지만) 라는 용어에 내포된 난해함처럼, 트라클의 시 대부분이 단상적인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어떤 시적인 의미, 시적인 확고함을 찾기는 힘들지 모른다
본질적으로 트라클의 세계는 삶과 죽음이 긴밀히 맞닿은,
그 간극으로부터 무한한 속살임이 피어나는 세계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가 기묘한 풍경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트라클의 문장은 다소 번잡스럽다
문장 구조가 복잡스럽다곤 할 수 없지만,
세계의 일면에 덕지덕지 붙은 유령적인 수식어들은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공간 곳곳에 숨어있는 역동성을 발견해낸다
그렇기에 트라클의 언어는 세계의 유령성을 관통하는,
아주 소란스러운 언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2
침대에서,
무릎을 약간 세우고,
주름진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어느 공공건물의
야외 계단 옆에
석상처럼 거대하게,
활기차게 움직이는 군중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군중과 멀리 떨어져서,
군중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먼 관계를 맺는다.
13
달빛 속에서 숲이 숨을 쉬듯이,
숲은 금방 오므라들어,
작고,
빽빽하다.
나무들은 높이 솟아 있다,
금방 숲은 넓어지고,
모든 산허리를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다가,
키 낮은 덤불이 된다,
더욱 작아진다,
희미한, 멀리 떨어진 빛이다.
-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
반면 카프카의 언어는 (산문으로 접한 독붕이들도 주지하고 있듯) 비교적 명료하다
특히 카프카가 자주 구사하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비해
평소에 쓰던 산문을 잘게 쪼갠 것 같은 시 속 문장들은 더욱 그러하다
권말 해설을 보면 카프카가 생각하던 시는 보다 '쉽고' '간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카프카의 '단상'과도 같은 시들은 그가 지어낸 '이야기'가 지닌 모호성에 비해 무척 간명하다
(하기야 소설에서 나타나는 카프카의 이미지도 잔혹토록 간명하지만)
그렇기에 트라클의 언어가 세계의 번잡스러움에 의해 벼려진 것이라면,
카프카의 언어는 세계의 고요를 통해 벼려진다
카프카의 시는 어떤 격정적인 정서나 소란스러움 없이 전체적으로 조곤조곤한 어조다
다만 그것은 한없는 침묵이 아닌, 고요에 의해 한없이 뚜렷해지는 의식에 의한 혼잣말이다
조용한 세계 중간에서 툭, 불거져 나오는 것
독서실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순식간에 독서실 전체로 튀어나가듯
카프카의 말도 고요한 외부로부터 내면의 말들이 툭 툭 튀어나오는 것이다
다만 평소 소설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강렬함에 비해
시에 그려진 이미지들은 보다 슴슴한 편이다
한편 금방 흘러갈듯한 단상들도 많지만
비교적 뚜렷하고 우화적인 시도 제법 존재하는 편이다
이런 양가성에 의해, 카프카의 시는 카프카와 카프카가 아닌 것을 오가는 매력이 있다
고요와
고요로부터의 말 사이에 가로놓인 것
그것이 다른 '누구'도, 다른 '어느 것'도 아닌 '카프카'의 '시'다
두 사람은 같은 모어를 썼고 출생연도도 비슷한 편이지만 두 사람이 특별히 엮인 부분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길이라 부른 망설임>에선 카프카의 시가 독어권의 자장권에(역자는 카프카가 특히 횔덜린을 잇는다고 말한다) 있다고 표현하지만, 거기에 트라클의 세계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미지수다
다만 두 사람 모두 독일어를 모어로 사용하지만 모국어(오스트리아/체코)는 아니라는 점, 비교적 일찍 요절했다는 점, 그러면서도 독어권은 물론이고 문학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아주 약간이나마 평행하는 부분이 있다
둘을 동시에 읽은 건 순전히 우연이지만, 한 청년이 군대에 징용된 뒤 세계의 처참함에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같은 언어를 쓰던 다른 청년은 아버지의 권압에 못 이겨 평범한 회사원으로 악착 같이 글을 쓰다가 신경쇠약으로 죽었다는 것(정확히는 카프카의 대표작들은 트라클이 죽었던 시기 즈음이나 이후에 지어졌다). 이 기묘한 두 삶이 비슷한 시기에 평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트라클의 소란, 카프카의 고요 또는 트라클과 카프카의 기묘한 삶, 두 삶의 혼재가 곧 그들의 시 세계 자체라고 할 수 있지 않을런지.
독창적인 감상 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