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력이 달려서 세상이 부조리한 건 맞다 까진 알겠는데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해를 못하겠음 그냥 정신승리하면서 잘 살자라고 읽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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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2026-07-17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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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1.240)2024-08-19 16:54
카뮈가 다른 실존철학자들하고 다른 점은 세상=부조리를 인정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부조리란 세계를 이성적으로 보는 자만이 느끼는 기이한 어긋남이며 "세계는 이러 저러(정의, 도덕, 종교, 과학, 논리 등)해야함에도 왜 그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있는자에게 세계는 사유와 결과가 다른 부조리로 드러나며 사실상 세계 이전적 상태에는 부조리도 조리도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세계가 이리도 괴로운데 어째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이미 "세계가 부조리하다"라는 선입견이 존재함으로 사실상 약한 논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실상 자신에 세계에 빠져서 자살을 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논리에 빠져서 그것에 패배하는 것으로 카뮈에게 있어 이렇게 비참한 삶은 없습니다.
パルメニデス(eagle4273)2024-08-1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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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1.240)2024-08-19 16:54
그렇다면 세계가 나의 표상 내부로 해석할 수 없는 그야말로 이해불가능적 거리가 있다고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그것은 그야말로 내가 세계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파악 가능'에 머물수도 '파악 불가능'에 머물수도 없는 그야말로 부조리적 상태가 됩니다. 그 때 인간은 시지프적 상태가 됩니다. 압도적 무의미 상태에 있으나 끊임 없이 돌을 굴러 올리는 상태(매일 밥을 먹거나, 관계적 고통에 시달리는 등의 사태)에 있게 됩니다. 이 상태에 오면 더 이상 "~하게 사는 것이 좋다" 혹은 "~하게 사는 것은 좋지 않다"등의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됩니다. 그 감히 압도적 깊이와 무의미 앞에서 무너지는 존재는 시지프가 될 수 없습니다.
パルメニデス(eagle4273)2024-08-19 16:40
그 때 좌절하지 않고 신이 준 형벌로 나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압도적 무의미의 형벌 앞에 땀을 흘리면서도 돌을 굴러 올리는 시지프가 존재할 뿐입니다. 물론 여기서 카뮈는 "시지프와 같이 살아야 한다" 같은 의견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카뮈가 이야기하는 것은 시지프가 그런 삶을 묵묵히 살아갈 때, 오직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웃고 있는 시지프를 상상할 수 있다"라는 사실 뿐입니다. 웃고 있는 시지프란 무엇이냐? 삶을 비관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는 시지프에게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미소지을 수 있는 영웅적 삶을 우리가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이 가능해진 인간에 대하여 카뮈는 '부조리 인간'이라는 수식어를 부여합니다.
パルメニデス(eagle4273)2024-08-19 16:43
따라서 카뮈는 세계가 부조리하다고 한 것도 아니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설명한 사람도 아닙니다. 물론 카뮈의 실존주의는 받아들이기가 상당히 힘이 듭니다. 동시대 가장 뛰어난 실존주의자중에 한 명이었던 사르트르는 이러한 무의미적 세계 안에서 마르크스주의적인 역사를 등에 업고 정치적 행위와 그러한 것을 행할 자유를 이야기했습니다. 즉 압도적 무의미성 앞에 자유가 선고 되었으니 자유는 기존에 이야기되어 왔던 것처럼 축복도 아니고 오히려 저주에 가깝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인간은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정치적 실천인 '앙가주망'을 해야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르트르는 그러한 방식으로 무의미를 견뎌나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パルメニデス(eagle4273)2024-08-19 16:54
실존주의의 아버지인 키르케고르 역시 압도적 무의미성, 이건 셸링의 영향입니다만 깊은 심연, 근저 앞에 인간은 이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간극 앞에 진정 절대자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직접 신과 만나는 방법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째됐든 이러한 식으로 실존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무의미성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카뮈는 그러한 수단을 지니는 것 자체가 무의미를 견딜 수 없는 자들의 말로로 보고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카뮈적 저항이란 '전긍정'의 저항이며 이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며 물론 단순한 정신승리도 아닙니다. 따라서 카뮈야말로 정신승리하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パルメニデス(eagle4273)2024-08-1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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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상상이 안 되니 아직도 정신승리라고 밖에 생각이 안 드네요... 다른 작품들도 읽으면서 고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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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가 다른 실존철학자들하고 다른 점은 세상=부조리를 인정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부조리란 세계를 이성적으로 보는 자만이 느끼는 기이한 어긋남이며 "세계는 이러 저러(정의, 도덕, 종교, 과학, 논리 등)해야함에도 왜 그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있는자에게 세계는 사유와 결과가 다른 부조리로 드러나며 사실상 세계 이전적 상태에는 부조리도 조리도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세계가 이리도 괴로운데 어째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이미 "세계가 부조리하다"라는 선입견이 존재함으로 사실상 약한 논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실상 자신에 세계에 빠져서 자살을 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논리에 빠져서 그것에 패배하는 것으로 카뮈에게 있어 이렇게 비참한 삶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계가 나의 표상 내부로 해석할 수 없는 그야말로 이해불가능적 거리가 있다고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그것은 그야말로 내가 세계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파악 가능'에 머물수도 '파악 불가능'에 머물수도 없는 그야말로 부조리적 상태가 됩니다. 그 때 인간은 시지프적 상태가 됩니다. 압도적 무의미 상태에 있으나 끊임 없이 돌을 굴러 올리는 상태(매일 밥을 먹거나, 관계적 고통에 시달리는 등의 사태)에 있게 됩니다. 이 상태에 오면 더 이상 "~하게 사는 것이 좋다" 혹은 "~하게 사는 것은 좋지 않다"등의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됩니다. 그 감히 압도적 깊이와 무의미 앞에서 무너지는 존재는 시지프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때 좌절하지 않고 신이 준 형벌로 나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압도적 무의미의 형벌 앞에 땀을 흘리면서도 돌을 굴러 올리는 시지프가 존재할 뿐입니다. 물론 여기서 카뮈는 "시지프와 같이 살아야 한다" 같은 의견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카뮈가 이야기하는 것은 시지프가 그런 삶을 묵묵히 살아갈 때, 오직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웃고 있는 시지프를 상상할 수 있다"라는 사실 뿐입니다. 웃고 있는 시지프란 무엇이냐? 삶을 비관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는 시지프에게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미소지을 수 있는 영웅적 삶을 우리가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이 가능해진 인간에 대하여 카뮈는 '부조리 인간'이라는 수식어를 부여합니다.
따라서 카뮈는 세계가 부조리하다고 한 것도 아니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설명한 사람도 아닙니다. 물론 카뮈의 실존주의는 받아들이기가 상당히 힘이 듭니다. 동시대 가장 뛰어난 실존주의자중에 한 명이었던 사르트르는 이러한 무의미적 세계 안에서 마르크스주의적인 역사를 등에 업고 정치적 행위와 그러한 것을 행할 자유를 이야기했습니다. 즉 압도적 무의미성 앞에 자유가 선고 되었으니 자유는 기존에 이야기되어 왔던 것처럼 축복도 아니고 오히려 저주에 가깝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인간은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정치적 실천인 '앙가주망'을 해야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르트르는 그러한 방식으로 무의미를 견뎌나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실존주의의 아버지인 키르케고르 역시 압도적 무의미성, 이건 셸링의 영향입니다만 깊은 심연, 근저 앞에 인간은 이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간극 앞에 진정 절대자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직접 신과 만나는 방법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째됐든 이러한 식으로 실존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무의미성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카뮈는 그러한 수단을 지니는 것 자체가 무의미를 견딜 수 없는 자들의 말로로 보고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카뮈적 저항이란 '전긍정'의 저항이며 이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며 물론 단순한 정신승리도 아닙니다. 따라서 카뮈야말로 정신승리하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상상이 안 되니 아직도 정신승리라고 밖에 생각이 안 드네요... 다른 작품들도 읽으면서 고찰해보겠습니다.
응원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