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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애를 주제로 한 책과 영화 드라마는 차고넘친다.
하도 넘치니 차별화를 주겠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한 작품 또한 많다.
하지만 이 책만큼 기막히게 콩가루 집안이란 말을 제대로 표현한 작품은 보지못했다.
천명관 이 양반... 고래 읽을 때도 알아봤지만 재미와 흡입력 하나는 진짜 일품이다.
우리 집안도 그리 화목한 집안은 아니다. 내 어린시절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외도 폭행 도박 빚쟁이 알콜중독 같은 지저분한 단어들이었다.
그럼에도 이제 서른이 넘어 고추를 긁적이며 책을 읽는 나는 작중 어머니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오함마의 모습에 킬킬대며 형과 다투던 추억을 회상한다.
제법 쓸만한 사회의 부품이 된 현 나의 제1목표는 단란한 가정 갖기이다. 시발 여친 사귀고싶다. 어릴적의 불행은 현재의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지못했는데, 어째서 그러한가를 생각해보면 그 끝날줄 모르던 불행들 속 촉촉했던 몇개의 기억들 덕분일 것이다.
어머니는 퍽하면 취해 집기를 부수고 우릴 괴롭혔지만 끝내 나와 형을 끌어안았다. 형과도 미친듯이 싸웠지만 어렵고 무서운 일에는 먼저 앞장섰다. 아비는 역시 용서가 안됐지만 가장 큰 피해자였던 우리 엄마는 이미 용서한듯 하다. 터무니없는 죄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아마 내가 모르는 두사람의 아름답던 기억 덕분일듯하다.
작품 내 피조차 제대로 섞이지않은 이 콩가루집안은 서로 증오하지만 서로를 보듬었던 역사 또한 분명히 있었다.
세월이 지나 갚지못한 고마움은 자격지심이라는 정제 과정을 거치며 미움이 되었고, 미움만 간직한 채 중년의 나이에 다시 늙은 어미의 품에서 다시 만난다.
눈에만 띄이면 서로 원수라도 된듯 헐뜯고 미워하면서도, 가족의 불행 앞에선 제 손이 쥔 모든걸 내던져 도운 이유는 역시 서로를 보듬었던 그 역사 덕분이리라.
실패하고 비루하게 내던져진 못난 세 남매는 서로를 보듬은 끝에 다시 패배했던 전장으로 나아한다. 나아간 계기가 상황에 치어서든, 제버릇 못고쳐서든 뭐건 뭐그리 중요할까. 분명한 건 그들이 완전히 쓰러지지않게 지지하고 나아가도록 등을 떠밀어준건 가족이었다.
작중 빌라앞 낡은 쇼파 앉은 할머니들의 뒷담화는 인생에서 뒤떨어지고 실패한 사람들을 비웃는 사회의 그것과 닮았다. 그럼에도 이 가족은 삐걱되고 넘어지고 빌빌 길지언정 다시 한번 사회로 나간다. 다시 도전하는 원동력은 역시 가족이다. 낡은 쇼파에 안주해 제 허물을 외면하고 뒷담화하며 죽어가는것보다는 훨씬 아름다워보인다. 내 눈에 이 작품은 가족에 대한 찬가이며 실패한 인간들에 대한 응원가로 들렸다
가볍게 쓰려던 감상문이 밤기운에 센치해져서 괜히 장황해졌다. 암튼 뭐 재밌게 읽었다. 동명의 영화도 있던데 내일은 그거나 봐야겠음.
하도 넘치니 차별화를 주겠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한 작품 또한 많다.
하지만 이 책만큼 기막히게 콩가루 집안이란 말을 제대로 표현한 작품은 보지못했다.
천명관 이 양반... 고래 읽을 때도 알아봤지만 재미와 흡입력 하나는 진짜 일품이다.
우리 집안도 그리 화목한 집안은 아니다. 내 어린시절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외도 폭행 도박 빚쟁이 알콜중독 같은 지저분한 단어들이었다.
그럼에도 이제 서른이 넘어 고추를 긁적이며 책을 읽는 나는 작중 어머니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오함마의 모습에 킬킬대며 형과 다투던 추억을 회상한다.
제법 쓸만한 사회의 부품이 된 현 나의 제1목표는 단란한 가정 갖기이다. 시발 여친 사귀고싶다. 어릴적의 불행은 현재의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지못했는데, 어째서 그러한가를 생각해보면 그 끝날줄 모르던 불행들 속 촉촉했던 몇개의 기억들 덕분일 것이다.
어머니는 퍽하면 취해 집기를 부수고 우릴 괴롭혔지만 끝내 나와 형을 끌어안았다. 형과도 미친듯이 싸웠지만 어렵고 무서운 일에는 먼저 앞장섰다. 아비는 역시 용서가 안됐지만 가장 큰 피해자였던 우리 엄마는 이미 용서한듯 하다. 터무니없는 죄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아마 내가 모르는 두사람의 아름답던 기억 덕분일듯하다.
작품 내 피조차 제대로 섞이지않은 이 콩가루집안은 서로 증오하지만 서로를 보듬었던 역사 또한 분명히 있었다.
세월이 지나 갚지못한 고마움은 자격지심이라는 정제 과정을 거치며 미움이 되었고, 미움만 간직한 채 중년의 나이에 다시 늙은 어미의 품에서 다시 만난다.
눈에만 띄이면 서로 원수라도 된듯 헐뜯고 미워하면서도, 가족의 불행 앞에선 제 손이 쥔 모든걸 내던져 도운 이유는 역시 서로를 보듬었던 그 역사 덕분이리라.
실패하고 비루하게 내던져진 못난 세 남매는 서로를 보듬은 끝에 다시 패배했던 전장으로 나아한다. 나아간 계기가 상황에 치어서든, 제버릇 못고쳐서든 뭐건 뭐그리 중요할까. 분명한 건 그들이 완전히 쓰러지지않게 지지하고 나아가도록 등을 떠밀어준건 가족이었다.
작중 빌라앞 낡은 쇼파 앉은 할머니들의 뒷담화는 인생에서 뒤떨어지고 실패한 사람들을 비웃는 사회의 그것과 닮았다. 그럼에도 이 가족은 삐걱되고 넘어지고 빌빌 길지언정 다시 한번 사회로 나간다. 다시 도전하는 원동력은 역시 가족이다. 낡은 쇼파에 안주해 제 허물을 외면하고 뒷담화하며 죽어가는것보다는 훨씬 아름다워보인다. 내 눈에 이 작품은 가족에 대한 찬가이며 실패한 인간들에 대한 응원가로 들렸다
가볍게 쓰려던 감상문이 밤기운에 센치해져서 괜히 장황해졌다. 암튼 뭐 재밌게 읽었다. 동명의 영화도 있던데 내일은 그거나 봐야겠음.
이 글을 읽는 내가 감동 받아서 눈시울이 붉어지네. 잘 읽었습니다. 나도 나중에 이거 읽어봐야 겠음
천명관이 확실히 양아치 묘사에는 발군의 능력을 보인다나
고령화 가족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이 감상문 또한 탁월하네 ㅠㅠ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이 하나 생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