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가서」



  백일홍꽃 망울만한 백일홍 꽃빛 구름이

  하늘에 가 열려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1·4 후퇴 때 나는 진주 가서 보았다.


  암수의 느티나무가 오백년을 의 안 상하고

  사는 것을 보았는가.


  1·4 후퇴 때 나는 진주 가서 보았다.


  기생이 청강(淸江)의 신이 되어 정말로 살고 계시는 것을

  보았는가.


  1·4 후퇴 때 나는 진주 가서 보았다.


  그의 가진 것에다 살을 비비면 병이 낫는다고,

  아직도 귀때기가 새파란 새댁이 논개의 강물에다 두 손을 적시고 있는 것을

  시인 설창수(薛昌洙)가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어서 보았다.



- 『신라초』(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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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감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듯한 현대 시에서는 거의 찾기 어렵게 되었지만, 과거 근대 시를 읽다 보면 후렴이 사용된 시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 근대 시에서 후렴이 사용된 데에는 서구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되지만 민요의 전통도 있고 해서 빠르게 수용이 이루어졌다. 가령 변영로의 「논개」나 정지용의 「향수」는 후렴이 성공적으로 사용된 대표적 작품에 해당한다. 상대적 후배인 서정주의 시에는 후렴이 지닐 수 있는 전형화의 느낌을 비튼 경우가 종종 보인다. 기존 형식을 새롭게 변용하기 위한 목적이 엿보인다. 가령 『질마재 신화』의 2부에 실린 월령가풍의 시들을 보면 「매화」나 「유두날」 같이 전형적인 후렴을 쓴 경우도 있지만 「단오 노래」처럼 그것을 약간 바꾼 작품도 보인다.


위의 시 역시 세 번 후렴을 사용하고 마지막 연을 세 번째 대목의 부연으로 처리해 후렴이 줄 수 있는 정형시의 느낌을 비껴나도록 했다. 이 시는 곧장 알 수 있다시피 힘든 상황 속에서도 아름다운 것은 남아 있고 또 그것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을 노래한다. 그 점에서 이전의 「밀어」, 「목화」 또는 「국화 옆에서」와 같은 주제를 공유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1·4 후퇴'를 터놓고 주제로 씀으로서 강한 실감을 준다. 이러한 실재감의 충격 기법은 서정주의 후기 시에서 워낙 많이 사용되어서 위와 같은 시를 처음 접했을 때의 감흥을 약화시킨 감도 없지는 않다. 큰 어려움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접할 수 있다는 깨달음에 대한 경험은 뒷날 『팔할이 바람』에 실린 「전주 풍류 일 년간」 같은 시에서도 언급된 바가 있다. 따라서 위의 시에서 나타난 간증 비슷한 감개는 과장이나 거짓말은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