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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을 한 몇 안 되는 책이다. 사실 초등학교 때 읽어서 줄거리만 알지 새로 읽는거나 다름 없다. 판본은 시공사에서 나온 권진아 번역.
사람의 기질을 예리하게 엿보는 책을 좋아해서 이 책을 다시 읽게 됐다. 어려서 읽었을 때 기억으로는 어렴풋이 '돼지들이 나빴지'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나서 읽어보니 모든 동물 개별마다 어떤 인간 캐릭터를 묘사한지 재밌게 느낌이 와서 좋았다.
내가 어떤 캐릭터랑 어울리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었다.
가장 안타까운 캐릭터는 숫말 복서. 맹목적인 믿음속에 빠져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지만 도살장에 팔려가며 버림받는다.
그토록 스스로를 혹사하며 헌신했지만 진실을 알아차릴만큼 영리하지 못했기에 어쩌면 행복한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극혐했던 캐릭터는 돼지들을 제외한다면 설탕에 미쳐있는 암말 몰리.
또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알려준다. 돼지들의 교묘한 말에 속고 또 속는 동물들을 보며, 가엾다기 보다는 답답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물론 우리들의 모습도 그러하다.
인간의 횡포에 저항해서 반란을 일으켰던 돼지들이 권력을 잡자 그 인간들과 똑같이 변했다.
반란은 함께 일으켰지만 그 의도가 모든 동물의 자유가 아니라 돼지들의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설령 그 당시에는 순수한 의도였다 하더라도 권력을 쥐고나서 돌변하는 일은 흔하다.
부조리에 저항했다는 것이 곧 정의는 아니다. 인간 존스의 적이었다고 해서 동물들의 편이 아니다.
'존스가 돌아오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요?' 라는 스퀼러의 말에 입을 다무는 동물들. 대중들은 이분법적인 사고를 좋아한다.
'어쨌든 인간의 적인 돼지들이 일을하니 옳겠지.'
숫자에도 쉽게 속는다. 스퀼러가 줄줄이 읊어대는 무의미한 통계자료에 설득 당한다. 정부에서 통계자료에 공을 들이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즉흥적으로 쓰다보니 두서없는 일기느낌인데 다시 읽으면서 확실히 마음에 새겼던 것은 특히 권력자들의 말을 절대로 덥석덥석 믿지 않아야 하며
그들이 우리를 위해 좋은 정치를 펼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우리의 눈치를 보게해서 능동적으로 이득을 당겨와야 한다.
나폴레옹이 사나운 개들을 키워 권력을 독점했는데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소수가 가질 수 있는 권력의 양을 제한하는 브레이크가 튼튼하게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이상적인 나의 바람이다. 오웰도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대중들은 속고 또 속으며 소수의 권력자들이 독점하는 세상 속에 살아갈 것이다.
이 상황이지만 나 자신을 위해 하나라도 더 배우고 깨우쳐서 덜 속아가며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속으로는 경멸하지만 온 몸을 바쳐 불의에 저항하고자 하는 용기가 내게는 없다. 동물농장의 벤저민 영감처럼.
잘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