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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재밌었다
너무 길어서 쉬어가며 읽기는 했으나 별 무리 없이 씹어삼킬 수 있었다고 느낀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글은 난해하기로 유명하고, 나 또한 인터넷에서 주워읽은 하스미의 짤막한 영화론들은 모두 아주 어렵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쉬어가며 읽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닥 쉽게 읽은 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온당한 지적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어렵지 않았다고 느낀다
책이 아주 재밌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비평, 사상, 이론이기에 앞서 하나의 이야기다
하스미는 소설을 써서 미시마 유키오 상을 받은 이력도 있는데 확실히 글빨이 좋다. 그냥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다
이 책은 범용함이 지배하는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언제 시작된건지 밝힌다
그것은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 막심 뒤 캉의 젊은 시절에 이미 시작되었다
막심은 독붕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름은 들어보았을 작가, 근대 소설의 시초,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친구이다
아니... 이렇게 시작하면 끝이 없겠다. 막심의 범용함에 대해서는 책에서 끈질기고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므로 더 쓸 이유가 없다
범용함에 대해선 부르주아적인 것, 대중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 모두가 아는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는 저널리즘과 같은 것 등을 말할 수 있겠는데
어떻게 써도 설명이 부족하겠다. 책을 읽는 수 밖에 없다
또 책에는 범용한 막심에 대비되는 우둔한 플로베르가 제시되고 있는데
그러나 범용한 예술가와 우둔한 예술가 사이에는, 시대에 대한 거리 감각 외에 결정적인 차이는 없다. 물론 막심과 플로베르 사이에 명백한 재능의 차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범용함은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우둔한 플로베르라 할지라도 범용함에서 온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 자신이 범용하다는 자각에 몸서리칠 수 밖에 없었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나 자신이 범용하다는 사실은 물론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것이 아니라
내가 범용하다는 말은 곧 내가 부르주아적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나는 부르주아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경제적 풍요로움을 체험해본 일이 없고 끈끈한 내적 친밀감으로 서로를 보듬어주는 계급적 동지들을 가져본 일도 없다. 나는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부르주아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공산당 선언을 깊이 공감하며 읽었단 말이다!!!
그러나 하스미 시게히코가 펼치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나는 내가 범용하다는 사실을, 즉 부르주아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너도 그렇다
그렇다. 나는, 우리는, 모두 막심 뒤 캉이다
이 시대는 모두가 범용하게, 부르주아적으로 된 시대다
책 말미에 다다르자 그제서야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 이 떠올랐다
이 책은 그야말로 근대문학의 기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돈이 생기면 얼른 사야겠다. 다시 한 번 읽고 싶다.
서평 감사하네